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10강으로 구성된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다. 주로 언론사 입사 준비생들이 듣는다. 매시간 그들은 눈을 반짝인다. 죄짓는 기분이다. 장광설로 순진한 청년들의 푼돈을 뜯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강의를 꿈꿔보는데, 첫 시간 글쓰기 주제는 정해져 있다. ‘내 생애 가장 슬픈 날’. 글쓰기는 자아의 표현, 특히 타자에 감응하는 자아의 표현이다. 기자가 되겠다는 이들이 어떤 상실에 감응하는지 알고 싶었다. 글쓰기의 근본을 다지는 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 믿어본다.
그런데 매 강좌에서 예외 없는 일이 반복된다. ‘생애 가장 슬픈 날’에 대한 그들의 글 열 편 가운데 서너 편은 가족 붕괴와 관련 있다. 부모의 이혼, 엄마 또는 아빠의 우울·폭력·가출·실직·사고사·과로사, 심지어 부모의 자살 또는 자살 시도에 관한 글을 적어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그들의 글은 (가족 바깥의) 타자로 열리는 바 없이, 오직 자신의 고립으로 침잠한다.
지난 3년6개월 동안 이 강좌를 거쳐간 이는 약 800명인데, 절대다수는 이른바 명문대를 포함한 ‘인(in) 서울’ 대학 출신이고,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면) 대부분 중간층 이상 가정에서 자랐다. 그들의 글을 통해 나는 (실직 등) 경제적 측면은 물론 (우울·자살 등) 심리적 측면에서 붕괴하는 한국 중산층을 본다. 또한 자신을 지켜줄 안전망이 사라져 고독하고 불안하고 슬픈 중산층의 아이들을 본다. 하물며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의 고립감은 더 할 것이다.
물론 부모의 억압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동서고금의 누구나 겪는 일이다. 원래 그 나이의 슬픔이란 게 부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부모의 ‘부재’가 주는 트라우마가 이처럼 빈번하고 중첩하며 보편적인 세대가 과거 어느 때에 있었는지 의문이다.
역사책에서 읽은 바를 떠올리자면, 원시공동체, (주인과 노예가 함께 살았던) 노예제, 대가족, 그리고 핵가족에 이르기까지 가족제도의 변화는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와 맞물리며 그것을 표상한다. 그리고 이제 1인 가구의 시대다.
그것이 슬프고 애잔하다 하여 가족 복원을 처방으로 제시하는 것은 퇴행일 뿐이다. 화목한 부부, 함께 저녁 먹는 가족, 인자한 부모,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 등은 ‘정상 가족’ 신화를 맹신하는 이데올로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독립적 개인들이 개방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게 돕는 사회경제 제도, 즉 ‘혼자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위로와 응원의 제도다.
버려져 슬프다는 기자 지망생들의 글에 대한 나의 품평은 대개 이렇다. -축하한다. 토익 950점 이상의 스펙을 갖췄다.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 글쓰기는 원래 고립된 자의 자기 처방이다. 온실에서 평탄하게 살아온 이들에 비해 더 빨리 더 좋은 기자가 될 것이다.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 삶을 살았으니, 그것을 이웃·타자·사회·세계와 연결하면 되겠다…. 물론 기자 지망생들에게나 통하는 장광설이다. 고립을 생산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인텔리겐치아다. 나머지는 고립과 함께 죽음에 가까워진다.
이 2017년 대선 의제로 제시한 기본소득은 고립된 여러 국민들에게 보내는 위안이다. 중산층의 이데올로기인 ‘정상 가족’이 붕괴하는 현실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위로다. 그런 위로를 여러 대선 후보들로부터도 받고 싶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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