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물어보셨다. “같은 학교라도… 니는 안 되겠재?”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도 물어보셨다. “같은 고향이라도… 니는 안 되겠재?”
뭐가 안 된단 걸까. 정치인이나 관료가 안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왜 안 된단 걸까. 한겨레 기자라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걸까. 왜 그러고 사는지 어미로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보수 정치관료가 되는 입신양명이 개인·가족·지역의 목표인 그 동네에서 1980년대를 보낸 이후, 보수주의는 일생의 화두가 됐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에게 보수주의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핵심 고리다. 특히 도덕·전통·책임의 보수주의가 아니라 권력·출세·지배를 향한 보수주의만 횡행하는 한국의 현실이 살아온 내내 거슬렸다.
운세가 그런 것인지, 어른이 된 뒤에도 보수주의 주변을 얼쩡거리게 됐다. 2000년대 초반,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과 한국미래연합(박근혜 대통령이 만들었던 군소 정당)을 담당했다. 2000년대 중반, 학술기자를 맡았는데, ‘뉴라이트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어지간한 뉴라이트 책은 다 읽어야 했다. 2000년대 후반,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석사 논문을 썼는데, 학문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잡문의 주제는 보수언론과 뉴라이트 운동의 관계였다.
그런저러해서 성기고 거칠게 적어둔, 1987년 이후 한국 보수주의 운동의 주요 기록이 있어 여기에 적어본다.
1987년 10월 (해방 정국 이후) 첫 재야 우익 단체인 ‘자유민주총연맹’이 등장했다. 이전까진 ‘반공연맹’ 등 관변 단체가 전부였다. 1988년 양동안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이 땅에 우익은 죽었는가”라고 격분하는 등 ‘우파 결집 격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9년 10월 반공주의 언론인과 정치인이 모여 ‘자유지성 300인회’를 만들었다. 우익 사상운동의 효시다.
1992년 9월 이 창간됐다. 본격적인 반공 우익 매체였다. 1994년 자유민주총연맹 등 80여 개 보수단체가 모여 ‘자유민주민족회의’를 출범시켰다. 보수단체의 연합체가 처음 등장했다. 1995년 는 1년여간 ‘우남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라는 연재 기사를 게재했다. ‘이승만 건국론’이 대중화된 계기였다. 1999년 전향 주사파인 김영환 등이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전향 운동권이 보수운동의 전면에 등장했다.
2000년 ‘자유시민연대’가 출범했다. 자유주의를 보수가 끌어안았다. 2004년 11월 가 ‘뉴라이트’에 대한 연재 기사를 시작했고, 와 가 뒤를 따랐다. 처음엔 자유주의에 착안했지만 결국 반공주의로 귀결됐다. 2005년 내내 교과서포럼·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우익 단체들이 양산됐다. 그리고 2007년 이명박 정부, 2012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그것은 ‘대응운동’이었다. 6월항쟁, 문민정부 출범, 김대중·노무현 정부 출범 등 정치적 격변마다 우익 사회운동은 몸집을 불렸다. 이제 ‘(우익) 대응운동’은 물경 사반세기에 걸친 순환을 끝내고 있다. 1987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반공이 곧 보수이며, 반공 말고는 보수를 설명할 도리가 없는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이에 대한 ‘(진보) 대응운동’이 없을 리 없다. 그것은 다시 사상과 역사에 대한 도모가 될 것이다.
그것이 또 다른 ‘대응운동’에 머무르지 않기를, 대응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종합 운동’으로 진화하기를, 그리하여 보수를 참칭하는 지배 욕망의 괴물들이 세상 이치를 어지럽힐 기회를 제공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역사학자들이 준비하는 (가칭)의 윤곽과 대강을 단독으로 보도한다. 어쩌면 십수 년이 걸릴 새로운 사회운동이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깊이깊이 비감한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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