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할배들의 연말은 분주합니다. 무려 72시간 동안 송년회를 열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올 한 해 송전탑 건설과 맞서 싸운 경남 밀양과 청도의 할매·할배 23명이 전국을 돌며 ‘연대’를 위한 송년회를 시작했습니다. 12월15일 아침 일찍 밀양을 출발한 할매·할배들은 부당해고에 맞서 200일 가까이 굴뚝 농성하며 싸우고 있는 구미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을 만나고,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강원도 골프장 건설 반대 싸움을 하는 주민들과 연말 잔치를 벌입니다. 곧이어 노조파괴에 맞서 써우는 충북 유성기업 노동자들,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부당해고에 맞서 한 달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경기도 과천 코오롱 노동자들도 만납니다. 경기도 안산 세월호 분향소,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도 밀양과 청도 할매·할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년회의 마지막은 10조원에 팔린 서울 삼성동을 떠나는 한국전력의 전남 나주 본사 앞에서 열립니다. 할매·할배들의 뜨거운 연말을 이 함께 따라가 봤습니다.
12월15일 오전 10시, 경남 밀양과 청도에서 온 할매·할배 23명(밀양 19명, 청도 4명)과 활동가 15명을 태운 버스가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남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할매·할배들은 철재 장애물로 막혀 있는 남문 앞에 서서 45m 높이의 굴뚝 위를 올려다 봅니다. 굴뚝 위에는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대책위원회 대표가 서 있습니다. 차 대표는 회사의 분할 매각에 반대하며 지난 5월 경북 구미 공장의 굴뚝에 올랐다. 이날은 차 대표가 고공농성을 한 지, 203일째입니다. ▶관련기사 보기
사실, 어제(12월14일)는 차 대표의 생일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은 미리 준비해 간 케이크를 꺼내들었습니다. 매서운 바람에 케이크 위 촛불은 붙이는 족족 꺼집니다. 그러나 바람과 상관없이 굴뚝 아래에서는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힘 내이소. 할매들이 죽을 때까지 함께 할게예. 사랑합니다.”
할매들이 손을 흔들며 응원하자, 굴뚝 위 차 대표도 손을 흔듭니다. 굴뚝의 끝과 끝 사이에서 머리 위 하트도 주고받았습니다. 케이크는 차 대표의 점심 식사와 함께 굴뚝 위로 전달됐습니다.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같이 힘내서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할매·할배들은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차린 점심상을 나눠 먹고 또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날 할매·할배들은 송년회를 기념하고자 땅 위에 있는 스타케미칼과 최근 구미공단 구조고도화 계획을 막아낸 KEC 노동자들에게 빨간 목도리를 나눠줬습니다. 깊은 포옹을 마친 뒤, 이들은 다시 3시간 넘는 거리의 골프장 건설 반대 싸움을 하는 주민들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날 아침 8시 밀양을 출발해 오전에 구미를 거쳐 강원도로 향하는 이들의 송년회는 말 그대로 ‘길 위의 송년회’입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은 힘들다 할만한데 그런 말은 꺼내시니 않습니다. 어르신들의 송년회는 계속됩니다.
▶ 보다 자세한 내용은 12월22일 발행하는 제1042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구미=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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