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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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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라, 심연을 보라, 불안에 지지 말라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들이 만난 글쓰기의 세계와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
등록 2014-10-25 16:53 수정 2020-05-03 04:27
자신이 품은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손바닥문학상을 통해 이야기의 손바닥을 활짝 편 수상자들. 그들에게 물었다. 나의 글쓰기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글쓰기의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_편집자


〈한겨레21〉에 실린 손바닥문학상 수상자 신수원의 ‘오리 날다’, 김민의 ‘총각슈퍼 올림’, 윤성훈의 ‘황구’.

〈한겨레21〉에 실린 손바닥문학상 수상자 신수원의 ‘오리 날다’, 김민의 ‘총각슈퍼 올림’, 윤성훈의 ‘황구’.

나도 세상도 조금은 달라지는 즐거운 경험

손바닥문학상을 받은 뒤 정말 많은 사람이 물었다. 어떻게 그런 내용을 생각했느냐고. 사실 그들이 궁금한 것은 내용보다 소설의 발상인 것 같았다.

고공에 단신으로 오른 이유와 구호는 장기적인 싸움의 시간만큼 반복되어 익히 알려져 있었다. 정당성도 알겠고 외로움도 이해되었고 간혹 그 처연함에 목메기도 했다. 저러다 사람이 죽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클 때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라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의 구호보다 그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그의 일상을 알기는 하늘 높이 있는 거리만큼이나 의외로 어려웠다. 이제껏 많은 시간 그리 많은 사람이 오가고 취재도 했을 텐데 알 길이 없다는 게 새삼 놀랍고 이상했다. 직접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회 닿을 때마다 찾아가고 그와 가까운 동료들의 주위를 서성였다. 그러나 정작 절박한 당위를 가볍게 여기는 생뚱맞고 속 편한 소리라고 할까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날, 모인 사람에 비해 너무 큰 스피커 울림이 여름 땡볕보다 슬프다고 느끼며 돌아오기만 반복했다.

궁금증은 더했고 상상하게 되었다. 높은 곳에 혼자 있는 그가 생을 저버릴지 모르는 이유는 관철되지 않는 사회적 요구 때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할 거리조차 못 되고 이야기되지 않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모욕이나 쌓이는 수치심 때문은 아닐까. 그가 담담히 감당하는 소외된 하루를 상상해 쓰고 싶어졌다.

누구나 한번은 서울 광화문에 갔을 것이다. 촛불을 들거나 때마다 분향이나 위로를 위해, 아니면 그저 지나듯 조용한 자기 방식의 응원을 건네기 위해. 지역적인 거리가 있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마음과 시선을 전남 진도 팽목항이나 경기도 안산에 두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아픈 의문이 답을 찾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다면, 그것이 사소하더라도 멈추지 말고 답을 상상해보기를 권한다. 그다음 다른 이의 은유나 목소리에 기대지 말고 직접 표현하고 기록하길 바란다. 거기서 나도 세상도 조금은 달라지는 즐거운 경험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수원 제1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


끊임없이 써야 나올 수 있는 맨홀 같은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 등장하는 후배 수지는 선배를 향해 온갖 애교와 재롱을 부리지만 선배는 “아이고 의미 없다”는 한마디로 수지의 기를 꺾는다. 둘의 호흡이 재미나서 깔깔거리다가도 잠시 뒤 서늘해진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인생은 어디 지점에선 ‘아이고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허다하지 않은가.

만사가 대체로 의미 없는 내게도 약한 고리가 있다. 송두리째 빠져드는 매혹적인 글을 읽게 되면 이 작가는 누구인가, 왜 이리도 잘 쓰는가, 곧장 질투심의 맨홀에 빠지고 만다. 내 글은 부끄럽고, 남의 글은 부럽기만 한 지병을 남몰래 앓아온 셈이다. 글을 쓰는 나만의 비법을 말해달라는 제안은 그래서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나야말로 비법을 전수받고 싶은 사람이니까. 무엇을 읽고 쓰기를 좋아했을까, 처음엔 무슨 마음을 먹었던 걸까, 뒤돌아보게는 되었다.

소설 읽기와 쓰기를 사모하는 까닭에 내 글쓰기는 대체로 소설 주변을 맴돈다. 늘 사람과 사물의 이면이 궁금해서 누군가 말해주는 “그 사람이 그랬대”라는 한 줄 뒤에는 얼마나 커다란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을까 상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의 서사와 맥락이 궁금해지니 오래도록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없었다. 그가 속한 전경과 배경, 그가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써보자 마음먹었다. 내 일상이 그와 연결돼 있다는 환상은 분명 착각이지만, 고민이 깊어질수록 행복해지는 까닭에 자꾸만 자판을 두드려 그를 불러내고 싶어졌다. 그러니, 무조건 쓰고 볼 일이다.

조르조 아감벤은 작가라면 무릇 “펜을 현재의 암흑에 담그며 써내려갈 수 있는 자”라고 했다. 어둠의 심연을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려는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 좋은 글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매일 심연을 들여다보며 쓰는 일은 때론 버겁지만, 경험하고 나면 쓰기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맨홀도 결국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빠져나오는 수밖엔 없다는 건데, 음….김민 제4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


갈 수 없었던 세계가 그곳에

손바닥문학상에 투고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때 떨리는 마음으로 공모 마감날에 제출했던 ‘황구’라는 글을 쓰기 위해 애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료 수집을 위해 여름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되지 않던 카페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몇 잔의 커피를 마셨는지. 그러나 무엇보다 글쓰기를 힘들게 했던 것은, 저런 과정들과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나누는 등의 단순히 글 쓰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내가 몸으로 직접 체험해 각인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쓴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과연 내 글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치열하고 그럼으로써 한없이 아픈 현실의 삶을 내가 거짓과 무감각의 세계로 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바닥문학상이라는 주제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괴롭혔다. 결과론적이지만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황구’는 세상으로 나가버렸다.

그 뒤 나의 글쓰기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고 그들의 경험과 고통, 즐거움이 내 속에 들어와 온전히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세계, 나의 세계가 만나 비록 좋은 글이 아니더라도 더욱 풍부한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점차 가지게 되었다.

부디 글쓰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내면의 불안에 지지 말기를. 그래서 볼 수 없었던, 갈 수 없었던 세계를 만날 기회를 꼭 가질 수 있도록 손바닥문학상 지원자분들에게 부탁드린다. 윤성훈 제4회 손바닥문학상 가작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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