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주술 그리고 역술.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늘 따라다니던 의혹의 한 측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증언이 나왔다. 김 여사가 자신과 윤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에 처할 때마다 거취 등에 대한 조언을 구해왔다는 명리학자의 증언이다. 명리학자 류아무개씨는 김 여사가 공적인 결정과 관련해 “조언을 구하는 명리학자나 무속인이 분야별로 7~8명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는 특히 ‘명품백 수수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잇따라 터진 2023년 12월 이 명리학자에게 연락해 다짜고짜 “저 감옥 가나요?”라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한겨레21이 명리학자 류씨를 만난 건 2024년 11월13일 서울 강남의 ‘○○학술원’에서다. 명리학계에서는 워낙 저명한 곳이라 예약하기가 어려웠다. 데스크에서 접수를 확인하던 직원이 “생년월일, 생시를 먼저 적어달라”고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거쳐 곧 사주의 괘가 인쇄된 종이에 사주가 찍혀 나왔다. 상담실에선 유튜브 방송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류씨는 상담과 상담 사이 시간에 유튜브를 즐겨 보는 듯했다.
사주를 보러 온 것이 아님을 밝힌 뒤 명함을 건네고 진짜 방문 목적을 밝혔다. ‘김건희 여사가 선생님께 상담한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고 말했다. 류씨는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느냐”면서도 “공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김 여사가 의견을 물어왔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이 언제냐는 질문에 “2023년 12월 마지막으로 김 여사를 상담해줬다”고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장이 좀 시끄러웠다. (김건희 여사가) 감방 가니 안 가니, 그때 상담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류씨는 주로 대구·경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강남에 ‘○○학술원’을 열었고, 대중 강연, 지역 일간지 기고, 언론사나 보수 유튜버의 유튜브 방송 출연 등을 하며 정치인들의 사주풀이 등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류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예측, 박근혜 대통령 당선 예측, 안철수 대선 후보 사퇴 예측’ 등 “무수한 예측을 정확하게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류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 여사가 류씨에게 처음 연락한 시점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무렵이다. 2019년 7월 검찰총장이 된 윤 대통령은 이른바 ‘조국 사태’가 벌어지면서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이 갈등이 한창 이어지던 2019년 말 류씨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윤 대통령의 사주를 풀면서 “윤 총장이 대통령 사주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이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 전이었다. 이 영상을 본 김 여사가 류씨에게 먼저 연락해 “만날 수 없겠느냐”고 했고, 곧바로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에서 처음 만나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사주풀이를 해준 것을 시작으로 김 여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류씨는 말했다. 실제 이날 한겨레21과 만난 자리에서 류씨는 김 여사의 사주풀이를 보여주며 김 여사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 등을 정확히 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씨는 김 여사의 사주를 술술 풀어냈다. “김 여사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아서 영부인까지 올라간 거예요. 사주가 좋은 게 아니라, 그걸 착각하면 안 돼요. 오히려 김 여사는 판단력이 좀 떨어집니다. 정신세계가 상상력이 풍부한 약간 아동 같은 면이 있어요. 일반 사람이면 좋죠. 소탈하고 누구나 친해지고.” 류씨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김 여사 같은 사주는 자기를 띄워주는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에요. 원래 자기 콤플렉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를 푹 띄워주는 걸 더 좋아한다고 (김 여사가) 거기에 뭐 많이 넘어갔겠지.”
류씨는 이후 김 여사를 최소 5~6번 이상 상담해줬는데, 김 여사가 류씨에게 자동삭제 타이머가 설정된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해 질문했고, 류씨가 이에 대답해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2020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추윤 갈등’이 한창이던 무렵에는 “(김 여사가) 윤 총장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 물어, 천운이 좋으니까 살아난다”고 답했고, 윤 총장이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2021년 초에는 윤 총장이 대선에 출마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와 “당연히 나가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2021년 말 대선 전략을 두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갈등하다 이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잠행했을 무렵에는 “이준석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하길래 ‘하극상을 벌일 사람’이지만 슬슬 달래서 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김 여사가 류씨에게 조언을 구했던 시점은 윤 대통령 부부에게 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빗길들이었다. 특히 ‘추윤 갈등’은 검사 윤석열이 정치인 윤석열로 전환을 시작한 사건이었다. 추 장관이 2020년 1월2일 취임한 직후부터 검사장 간부 인사 등을 두고 갈등을 벌인 두 사람은 추 장관이 같은 해 11월24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정지 명령을 하고 징계를 청구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한다. 이 사건은 나중에 윤 총장이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계기가 됐다. 류씨는 윤 총장이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을 때 미래를 궁금해했던 김 여사에게 오히려 “윤 총장이 천운이 좋다”고 한 것이다.
김 여사와 류씨의 상담에서 가장 중요해 보이는 건 2023년 12월의 메시지다. 당시 김 여사에게는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2023년 11월27일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 보도를 통해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 명품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됐고, 보름 뒤인 12월14일에는 뉴스타파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당시 김 여사가 직접 증권사 직원과 통화해 주문하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여사가 류씨에게 자신의 거취에 대해 조언을 구한 것이다. 김 여사가 류씨에게 “저 감옥 가나요?”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류씨는 “은둔하면 된다. 당신도 많이 깨달아야 한다. 제발 좀 나서지 마라”라고 말하며 “위기인 것은 분명하나 아직 기운이 좋아 (감옥에) 가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김 여사는 류씨의 조언 때문인지 이후 실제로 153일 동안 공식 활동을 자제하기도 했다.
류씨는 김 여사가 공적인 문제나 결정과 관련해 “조언을 구하는 명리학자나 무속인이 나 외에도 더 있다고 안다. 분야별로 7~8명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풍수나 관상, 사주나 미래 예측 등 주술 분야별로 조언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류씨는 “김 여사가 대통령이 나아가려는 걸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라며 다만 “김 여사가 지혜롭지 못하고, 그래서 (본인 등에게) 의지하는데 (천공, 건진, 명태균씨 등) 취사선택을 잘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 초기 대통령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했던 한 인사도 한겨레21과 만나 “김 여사가 중요한 자리(인사)를 고려할 때 사주를 즐겨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여사가 대통령실 직원을 뽑을 때 이력서를 봤는데, 이력서에는 사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어 무당을 통해 사주를 본다는 말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국민의힘 출신 한 국회의원은 “캠프나 인수위원회 시절 그런 사람들의 조언을 들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굉장히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 국정 운영이 있었는데, 이번에 윤 대통령이 최소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이후 줄곧 역술인에게 의존해온 김 여사의 결정에 따라 진로 선택을 해왔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의 삶은 무속, 주술 그리고 역술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 여사 커리어의 출발점이 된 박사 논문 제목은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애니타’ 개발과 시장 적용을 중심으로’다. 김 여사가 박사과정 때 쓴 학술 논문은 총 세 편인데, 이 가운데 두 편이 ‘관상, 궁합, 운세’에 관한 것이다. 김 여사는 박사 논문에서 각각의 의미를 규정하기도 했다. 사주는 ‘자신의 길함과 흉함의 제시하는 방향을 미리 알고 이에 현명하게 대처해나가기 위한 것’, 궁합은 ‘두 가지 기운이 뭉쳐진 후에 서로 공유하는 느낌, 더 나아가 재운, 관운, 인연 수(사주)를 서로 공유하게 되는 부분이 발생되어지고 이러함에 있어서 서로 득이 되고 해가 되는 것을 미리 아는 것’, 관상은 ‘그 사람의 운명을 맞추며 장래 일을 예견코자 하는 것이 인상학 혹은 관상학이라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만남에도 무속은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동했다. 과거 윤석열 부부가 맺어진 과정을 잘 아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강원도 동해와 삼척을 본거지로 활동했던 ‘무정’이라는 도사가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을 이어준 것으로 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무정이 “젊은 검사가 착실한 사람이 있는데, 법무부 장관까지 갈 수 있는 관상”이라며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2022년 1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이른바 ‘7시간 통화’에서 직접 무정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김 여사는 무정에 대해 “진짜 스님은 아니고 아버지가 영은사 주지 스님이어서 애칭으로 스님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하며 무정을 ‘도사’라고 칭한다. 김 여사는 무정이 “너는 39살이 지나야 결혼이 된다. 특별한 사주라 그 전에 결혼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너는 석열이하고 맞는다, 너희들은 완전 반대다. 김건희가 완전 남자고 석열이는 완전 여자다”라고 결혼을 권했다고 설명한다. 이 대화에서 김 여사는 “내가 웬만한 무당보다 (점을) 잘 본다”며 이 기자에게 “내가 얼굴 보면 내가 정확히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손바닥에 ‘王’(임금 왕) 자를 쓰고 티브이(TV) 토론회에 등장한 이래 윤 대통령 부부는 끊임없이 무속, 주술 그리고 역술에 대한 질문과 의혹에 휩싸여왔다. 본인을 ‘천공’으로 칭하며 ‘정법시대’라는 유튜브를 하는 한 도사는 노스트라다무스급으로 윤석열 정부의 행보를 예측해 화제를 모았다. 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깊은 무속인으로 알려진 건진법사는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주변에 본인이 “왕의 자문을 하는 국사”라고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건진법사는 캠프 초창기 때 인재영입을 비롯해 메시지와 일정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풍수와 관상에 밝다는 백재권씨가 대통령실 이전에 앞서 현장을 둘러본 일도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인물인 명태균씨 역시 김 여사와 결정적 친분을 쌓게 된 계기는 이른바 ‘앉은뱅이 주술사’와 ‘장님 무사’ 발언과 같이 영적 대화와 꿈을 해몽하는 탁월한 능력이었다. 명씨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뒈진다”고 김 여사에게 설명했다는 말 역시 자신을 ‘예지력이 뛰어난 미륵보살’이라고 칭하며 나왔다.
종교를 믿거나 특정한 신앙이 깊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다수는 공적인 영역을 그런 ‘믿음’들로 수행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쯤은 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오히려 주술적 믿음과 분리한 채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사회의 사회적 합의에 속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종우 상지대 교수(한국 종교사 연구)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믿음은 인간이 가장 나약하고 힘든 부분일 때 위로가 되는 기능이고, 불안할 때 의지하는 것”이라며 “특히 믿음이 강한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위치에 가게 되면 공사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적 판단이나 결정을 해야 하는 대목에서 김 여사가 주술적 믿음에 의지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자기 욕망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크거나 공사 구분을 못할 만큼 거기에 심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21은 2024년 11월17일 류씨의 주장에 대해 대통령실에 확인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은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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