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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랑캐] 이명박이 불붙인 증오 정치, 악순환 어떻게 끊나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이 결정적 계기, 박근혜 탄핵으로 굳어진 ‘팬덤’의 대립… “시민이 중심 잡아야”
등록 2024-01-12 20:59 수정 2024-02-13 12:01
2008년 2월18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당선 인사차 청와대를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과 악수하고 있다. 1년 뒤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벌인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8년 2월18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당선 인사차 청와대를 방문한 이명박 당선인과 악수하고 있다. 1년 뒤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벌인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에서 ‘증오의 정치’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2009년 이명박 정부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그에 따른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그 전에도 1959년 이승만의 조봉암 ‘사법살인’이나 1970~19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의 김대중 살해 시도와 같은 증오의 정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독재자의 일방적인 정적 탄압이었다. 또 그 증오감이 지지자에게로 확산하거나 각 진영으로 갈려 다투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불붙인 증오의 정치는 그전과는 결이 달랐다.

촛불집회 보복 성격 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이 전 대통령은 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을까? 유력한 추정은 이 전 대통령의 집권 직후인 2008년 5월 벌어진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는 것이다. 석 달 동안 벌어진 촛불집회로 이명박 정부는 초기에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고, 미국 정부와 소고기 수입 협상을 다시 해야 했다. 동시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보복도 개시했다. 촛불집회의 배후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판단은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직전 대통령선거에서 대패한 진보 진영이 이 일을 계기로 다시 결집한 것은 사실이었다.

문재인 청와대의 이철희 전 정무수석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으로 전직 대통령을 공격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광우병 소고기 시위로 큰 어려움을 겪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돌파구로 삼았다. 이로 인해 리더를 잃은 민주당과 노무현 지지자들의 감정이 격화됐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벌인 보복은 대통령 기록물 유출 논란이었다. 2008년 6월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자신의 재임 동안 만든 대통령 기록물을 복사해서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로 가져간 일에 대한 수사였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까지의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기록물을 남겼고 관련 법률도 제정했으나, 자신의 선의에 발목 잡히고 말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복사해온 기록물을 모두 정부에 돌려주고 이 일을 끝내려 했다. 그러나 이 일은 이 전 대통령이 벌인 정치 보복의 시작일 뿐이었다.

2008년 7월 국세청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다. 이어 검찰은 그래 12월 이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구속했다.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을 거쳐 부인과 아들, 딸, 조카사위 등 가족으로 좁혀졌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30일 서울의 대검찰청에서 피의자로 조사받았다. 그리고 5월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이 사건은 검찰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고, 검찰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을 개혁하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정부 초기 ‘평검사와의 대화’에서부터 파탄이 났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 초기 ‘대선 자금 수사’로 개혁을 면제받고 기득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자신들을 개혁 대상으로 여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깊게 감추고 있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민주화 이후 대통령과 검찰은 공생관계였는데, 노 전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는 등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다. 이에 대해 검사들은 노 전 대통령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드렸고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 감정이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반영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2016년 12월10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2016년 12월10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근혜 탄핵, ‘태극기 집회’ 결집 불러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당시 한국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500만 명 이상이 직접 문상했고, 영결식장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통곡했다. 이 사건은 단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진보-보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거대한 분노와 원한을 만들었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가 된 직후부터 자신의 정당에서 배척받았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다수 야당의 탄핵을 당하는 등 끊임없는 고난을 겪었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슬픔과 분노는 더욱 컸다.

노무현 정부의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현대사에서 엄청난 정치적 비극이었다. 많은 사람이 패닉에 빠졌고 상처받았다. 지지자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까지도 책임자 가운데 누구도 사과하지 않음으로써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 볼 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비견할 만한 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처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전통적 보수 지지자의 분노와 원한을 만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단지 한 명의 보수 대통령이 아니라, 보수 진영의 대표자라고 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고 후계자였다. 그래서 보수 지지자의 충격은 더 컸다. 그 충격으로 등장한 것이 ‘태극기 집회’였다.

시위와 집회는 오랫동안 진보 진영의 일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시작으로 1980~1990년대 대학생·노동자의 시위와 집회는 모두 진보 진영이 주도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2002년 효순·미선 참사 항의 집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집회 등 주요 시위·집회들은 모두 진보 진영의 몫이었다. 물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등장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의 대규모 시위·집회도 간간이 열렸으나, 진보 진영과는 비교하기 어려웠다.

‘시위·집회는 진보가 주도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바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위한 ‘태극기 집회’였다. 태극기 집회를 통해 보수 진영도 시위·집회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섰다. 최초의 태극기 집회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2016년 10월31일 제이티비시(JTBC) 방송사 앞에서 열렸다. 이 집회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에서 시작해 탄핵 무효 집회로 바뀌었다. 또 문재인 정부 시절엔 정부 퇴진 운동으로, 윤석열 정부 집권 뒤엔 정부 지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정치학)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일은 보수 진영으로서는 박정희의 경제성장과 근대화 신화를 잃은 일이었다. 또 노년층으로서는 촛불 혁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부정당한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보수 진영이 그동안 자신들이 해오지 않았던 시위·집회에 뛰어든 것이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다음날인 2017년 3월11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 일대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무효 집회를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다음날인 2017년 3월11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 일대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무효 집회를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못미’의 기억이 만든 팬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이 전 대통령도 무사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원한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촛불집회가 주도했지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은 검찰이 주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주로 뇌물죄로 처벌받았지만, 많은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중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그를 옹호하는 시위·집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 전 대통령 집권 뒤 민주당의 맹렬 지지자들은 ‘문빠’ 또는 ‘문팬’이란 이름으로 뭉쳤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태극기 부대’의 등장으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인사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옹호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진보 진영 안에서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문 정부를 비판한 진보 성향 언론사들도 문빠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나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경험한 팬덤이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나 증오를 키웠다. 그런데 이를 정치 지도자들이 해소하려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키우는 방향으로 갔다. 결과적으로 팬덤이 위험한 방향으로 갔다”고 말했다.

2019년엔 보수-진보 양 진영의 증오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에 따른 집회였다. 검찰 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서울 서초동 검찰청으로 몰려갔고, 조 전 장관 가족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몰려갔다. 같은 문제를 두고 양 진영이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형성된 증오의 정치가 새로운 구도를 형성했다.

이 수사를 주도한 윤 전 총장의 대통령 당선은 증오의 구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당선 직후 시작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다시 증오의 정치를 불붙였다. 이 대표를 “중범죄가 확정적인 후보”라고 비난했던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검경은 이 대표와 관련해 무려 10건의 수사를 벌였고, 현재 그중 3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카르텔’이나 ‘전체주의’, ‘반국가세력’과 같은 극단적 표현을 써가며 야당과 진보 세력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철희 전 수석은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 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실책을 했다. 그로 인해 지지기반이 좁아지니 이념을 앞세워 야당과 싸우고 있다. 이념주의자라기보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념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2023년 10월31일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아온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2023년 10월31일 시정 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아온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악수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온건한 다당제” 되면 바뀔까

이 대표에 대한 검경의 대대적인 수사는 이 대표의 2022년 5월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와 2022년 7월 당대표 출마를 불러왔다. 문빠와 마찬가지로 이재명을 지키겠다는 맹렬 지지자들인 ‘개딸’(개혁의 딸들)이 등장했다. 윤 정부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로 민주당 안에서 이 대표에 대한 견제나 비판이 억제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2024년 벽두, 이 대표가 자신을 증오하는 여당 성향 한 시민으로부터 흉기로 공격당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증오의 정치’는 달라질 수 있을까? 정상호 교수는 “증오 정치의 역사나 현재의 팬덤정치, 소셜미디어 상황은 바꾸기 쉽지 않다.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먼저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하고, 양당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 3~5당 정도의 온건 다당제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는 “시민들이 팬덤이나 소셜미디어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합의를 통해 문제를 풀도록 압박해야 한다. 선거제 개혁도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주도로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상황을 정치권에 맡겨둬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시사 오랑캐: 오랑캐처럼 자유로운 외부자의 눈으로 세상사를 봅니다. 4주에 한 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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