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김포의 서울 편입 정책에 대해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는 이렇게 말했다. 멀리는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임시행정수도’, 가까이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신행정수도’ 정책 이후 불문율과 같았던 서울과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한국 사회의 대원칙이 도전받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행정도시(세종시)를 백지화하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조차 균형발전이란 가치 자체는 부정하지 못했다.
균형발전은 헌법상 가치이기도 하다. 헌법 제122조는 ‘국가는 (…)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제123조 2항은 ‘국가는 지역 간의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 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균형발전 정책이 도전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7년 지역내총생산(GRDP), 2019년 총인구에서 수도권의 비중이 50%를 돌파한 일이었다. 두 가지 모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났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포기했고, 에스케이하이닉스 공장은 경기도 용인에, 이건희 기증관은 서울에 짓기로 결정했다. 모두 균형발전에 반대되는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김진애 전 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균형발전 정책을 문재인 정부는 ‘메가시티’와 ‘도시재생’ 정책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그런데 메가시티는 너무 늦게 나왔고, 도시재생은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은 한발 더 나아갔다. 서울을 더 확장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서울 확장 정책은 국민의힘 계열 경기도지사들이 제기해왔다. 2006년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는 서울과 경기, 인천을 묶는 ‘대수도론’을 제시했고, 2017년 남경필 당시 경기지사도 수도권을 묶는 ‘광역서울도’ 구성을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광역시와 광역도가 분리된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세종·충남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야 관계없이 나왔다.
그러나 김포의 서울 편입 주장은 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겉으로나마 서울보다 지방을 앞세워왔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를 되도록 유지하려 했고, 수도권 규제를 풀 때도 전국적인 규제 완화에 묻어가는 식이었다. 김포 서울 편입은 이런 관행을 무시하고 서울과 수도권을 전면에 내세우고, 지방도 원하면 해주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정치학)는 “차라리 정부·여당이 김포의 서울 편입이 아니라, 소멸하는 지방을 포기하고 다 서울로 와서 살자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고 총선에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게 더 솔직한 태도다”라고 말했다.
더 노골적인 것은 2023년 11월1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이 발표되기 이틀 전인 10월30일 김포의 서울 편입 방안이 나왔다는 점이다. 지방시대위원회는 균형발전과 분권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다. 그래서 이번 방안이 사실상 지역균형발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이번 발표에 4대 초광역권(메가시티)이나 광역 경제권 정책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사전에 여당에서 아무 이야기가 없다가 갑자기 김포의 서울 편입 이야기 나왔다. 앞으로 정부-여당이 정책을 조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방시대위의 계획 가운데 4대 초광역권은 광역 시-도를 통합한 것으로 이번에 나온 ‘ 서울 메가시티 ’ 나 문재인 정부 시절의 ‘ 부산 · 울산 · 경남 메가시티 ’ 와 비슷한 개념이다 . 4 대 초광역권은 충청권 , 광주 · 전남권 , 대구 · 경북권 , 부산 · 울산 · 경남권이다 .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한 지방시대위의 이런 발표는 김포의 서울 편입 이슈에 묻혀버렸다 .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균형발전보다 수도권 발전을 앞세우는 국민의힘의 생각을 잘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산·울산·경남에서 시작된 기존 ‘메가시티’는 블랙홀인 수도권과 경쟁하기 위해 지방의 광역 시-도를 통합해나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시범사업 격인 부·울·경 메가시티를 무산시키면서 사실상 중단됐다.
이관후 교수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메가시티 정책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시작한 첫 균형발전 정책이었다. 이번에 지방시대위가 이와 비슷한 것을 하자고 했는데, 여당에서 반대한 꼴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4대 초광역권 정책이나 문재인 정부의 메가시티 정책이 균형발전을 위해 타당한 것이냐는 의문도 나온다. 메가시티는 통상 인구 1천만 명 이상의 도시나 도시권을 말한다. 서울이나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도쿄 같은 도시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도시에서 메가시티는 발전 수단이 아니라 결과였다. 그런데 한국의 도시들은 광역시에서 광역도로 영역과 인구를 확대하고 연결성을 강화해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세종대 교수, 도시계획)은 “가장 이상적인 것은 독일처럼 중소 도시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역 사이의 격차가 작아야 한다. 한국에선 광역시 정도 규모로 발전시키는 것이 수도권과 경쟁도 가능하고 자생력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나온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도 지방에 ‘거점 도시’를 키우라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지방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균형발전 계획을 짜라는 것이다. 강력한 수도권의 흡인력에 맞서려면 지방에도 경쟁력 있는 대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수도권-지방의 균형발전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이민원 전 위원장은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 수도권과 지방에 동시에 투자하면 결과가 수도권으로 쏠린다. 메가시티 정책을 하더라도 지방부터 시작하고 그다음에 수도권에서 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에서 정책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이관후 교수는 “이제 서울의 발전 방안은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다. 서울은 인구의 지나친 집중으로 발전이 가로막혀 있다. 청년들이 서울에 와서 집도 못 사고,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은 한국의 미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김포 서울 편입에 쏟아진 관심을 지방 발전의 에너지로 삼으려 한다. 지방에 4개 정도의 광역 경제권을 만들어서 수도권 수준의 교통과 교육, 의료, 문화 인프라를 만들어나가겠다. 서울과 지방이 상생하고 상향 평준화할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