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은 때로 많은 사실을 드러낸다.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동남아시아 순방을 나가 공개한 사진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실은 2022년 11월12일(현지시각)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사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아동(14살)을 방문해 가족을 위로하고 아이를 안아주는 사진을 공개했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빈곤 포르노 화보를 찍었다”고 지적했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국위선양을 위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역대 대통령 영부인 중에 이렇게 미모가 아름다운 분이 있었느냐”고 두둔하고 나서는 등 정치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사진에 대해 “김 여사가 전날 헤브론의료원을 방문했을 때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동들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려 했지만 (아동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오지 못했다”며 “이 소식을 들은 김 여사가 캄보디아 측이 마련한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앙코르와트 사원 방문)에 참여하는 대신 이 아동의 집을 전격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여사의 일정은 취재를 허용하지 않은 비공개 행사였다. 대통령실이 따로 찍어 나중에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 여사는 아이를 안고 있거나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는 등 이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국외 순방 때마다 김 여사의 화려한 옷과 장신구 등이 도드라져 보이던 사진이 공개된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바로 ‘빈곤 포르노’ 논쟁에 직면했다. 사진이 공개되자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공적인사적모임’은 김 여사와 대통령실이 심장질환 아동의 가정에 불쑥 찾아간 것을 ‘빈곤 포르노’라 규정하고 11월15일부터 이를 규탄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빈곤 포르노’란 다른 사람의 곤궁하고 취약한 상태를 사진·그림·영상 등으로 자극적으로 묘사하고 동정심을 일으켜 금전적 이익과 사회적 존경심을 획득하기 위한 이기적 행위를 말한다. 11월17일 현재 1만 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했다.
국제구호 경험이 있는 한 사회복지사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5년 전만 해도 구호단체도 이런 형태의 사진을 썼지만 상대 국가의 이미지를 해칠 수 있고 인권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형태의 콘텐츠를 줄여온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거나 감수성이 낮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상을 초청한 캄보디아를 존중하는 사진도 아니었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에 아세안 플러스 회의를 주관하는 의장국인 캄보디아에 매우 중요한 외교적 기회였다. 얼마나 섬세하게 준비했겠나. 그런데 우리 영부인께서 이런저런 독자적인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사진이 나오게 된 전후 과정이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이번 일정이 원래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병원에서 아동을 만나지 못하자 “아동의 집을 전격 방문했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이를 위해 11월 12일과 13일 연속으로 캄보디아가 주최하는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에 모두 불참했다.
대통령 순방 일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먼저 외교부와 현지 문화원 등에서 올라온 보고를 토대로 일정을 짠다. 그리고 대통령실이 순방 전에 현지답사를 나가 대통령에게 적절한 일정인지 확인한다. 이때 논란이 될 수 있는 일정은 취소하거나 상대국과 조율하는 등 신중하게 결정한다. 이를 볼 때 김 여사가 하루 만에 예정된 일정을 바꿔 갑자기 다른 나라 아동의 집을 찾아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재 김 여사를 담당하는 대통령실 제2부속실이 없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내 제2부속실을 없앴고, 제1부속실이 김 여사 일정까지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부속실이 나선다면 상대국이나 실무자들은 이게 윤 대통령의 뜻인지 김 여사의 뜻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번 사진을 통해 김 여사가 정해진 일정도 쉽게 바꿀 만큼의 영향력도 가졌음을 확인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대통령실은 2022년 6월 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부인이 민간인 신분임에도 김 여사의 일정을 챙기도록 하고,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게 한 것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정확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유야무야 지나갔다.
국제구호활동을 홍보한 경험이 많은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배포한) 이 사진은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를 알고 대상을 섭외해야 하는데 현지 대사관은 그렇게까지 속속들이 사정을 알지 못한다”며 “캄보디아 입장에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일 텐데 이것을 비집고 들어가 아동의 집까지 찾아갈 만큼 (캄보디아 현지 사정을 사전에) 조사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선 이같이 일정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문이다.
또 사진 전문가인 정주하 전 백제예술대 교수는 김 여사 사진에 대해 “착한 퍼스트레이디(이미지)를 만들려고 하는 느낌이 완연하다”며 사진의 의도를 먼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 (사진) 포즈를 만들어놓은 다음에 그냥 사진사들이 셔터만 누른 것인지, 사진사들이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한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도 있다.” 김 여사는 아동의 집을 방문하기에 앞서 찾은 현지 병원에서 입원한 아이와 인사를 나눌 때 직접 손가락으로 카메라 쪽을 바라보라고 한 뒤 다시 주먹 악수를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문화전시기획사인 코바나콘텐츠의 대표를 지냈다.
대통령 외교에 관여한 경험이 많은 전 정부 관계자는 “국고를 들여 대통령 순방에 부인이 함께 나가는 것은 정상 배우자 행사 등 정상외교의 한 축을 맡으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거기서 대통령 부인이 개인 이미지만을 챙기고 왔다는 게 이번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국외 순방 때마다 외교 현안 보다 김 여사를 둘러싼 이야기가 부각되는 것에 부정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 여사의 일정 변경에 대해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나라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사 행보는 한국과 캄보디아 간에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국민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헌법학자들 “국힘, 사태 오판…한덕수가 헌법재판관 임명 가능”
미 국무부, ‘한동훈 사살 계획’ 출처 질문에 “인지 못 하고 있다”
‘윤 캠프’ 건진법사 폰 나왔다…공천 ‘기도비’ 1억 받은 혐의
미군 “우크라서 북한군 수백명 사상”…백악관 “수십명” 첫 공식 확인
유승민 “‘탄핵 반대 중진’ 비대위원장? 국힘 골로 간다”
김문수, “내란공범” 외친 시민 빤히 보면서 “경찰 불러”
국힘·윤석열의 탄핵심판 방해 ‘침대 축구’
‘윤석열 탄핵소추안’ 분량 줄이다…넘치는 죄과에 16쪽 늘어난 사연
[단독] 계엄 선포 순간, 국힘 텔레방에서만 ‘본회의장으로’ 외쳤다
1호 헌법연구관 “윤석열 만장일치 탄핵…박근혜보다 사유 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