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명함은 코팅되지 않았고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들었습니다.’
2022년 5월10일 아침 8시, 서울 마포구 대흥역 3번 출구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이숲 녹색당 예비후보(서울 마포구의원 출마)의 명함이 들렸다. 명함에는 위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명함은 다른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의 명함과 다르게 엷은 노란색이었다. 이숲 예비후보의 얼굴 사진은 다소 어둡게 인쇄됐다. 친환경 소재를 원료로 명함을 만들어서다.
‘쓰레기 없는 선거’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이숲 예비후보는 다른 녹색당 후보들과 함께 있는 물건을 재활용하거나 친환경 재질로 선거용품을 제작하자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그는 광목천과 폐현수막을 재활용해 만든 어깨띠를 두르고 친환경 명함을 배포한다. “어쨌든 후보를 알려야 할 거 아니냐, 당선되고 나서 고민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선거는 한 명한테라도 더 알리는 게 중요하니까…. 그래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5월19일부터는 추가 현수막(5개)과 공보물(2만여 장)을 제작해야 하는데, 이 예비후보는 고민이 깊다. 공직선거법이 제한하는 공보물 규격(길이 27㎝·너비 19㎝ 이내)과 분량(8면 이내)을 지킬 수밖에 없어서다. “(공보물을 중철 제본해서) 철심이 박혀 있으면 재활용이 어렵잖아요. 현수막도 무조건 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데 그 천도 사실은 폴리에스테르거든요. 다 쓰레기가 되는 거죠. 공직선거법이 환경친화적으로 개정되지 않는 한 한계가 있어요.”
녹색연합은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생산되는 벽보와 공보물, 현수막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2만8084tCO2e(이산화탄소 상당량)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플라스틱 일회용컵 5억4천만 개와 맞먹는 탄소배출량이다. 플라스틱 계열 화학섬유로 만들어지는 현수막, 투명 비닐에 담긴 공보물, 코팅돼 재활용이 어려운 명함 등은 오래 지적된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이 거대 정당으로는 처음 2022년 대선을 친환경 선거로 치르겠다고 밝혔지만, 그 문제의식은 선거 때만 잠깐 나왔을 뿐 제도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쟁적으로 후보를 알려야 하는 선거의 생리에다 국회가 공직선거법을 방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직선거법은 현수막의 무분별한 사용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개정돼왔다. 2005년과 2010년, 선거후보자 사무실에 걸리는 현수막 규격과 수량을 제한하는 규정이 차례로 삭제됐다. 2018년에는 읍·면·동 현수막 게시 수량이 2배로 늘었다. 그해 3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현수막 매수 제한을 완화해 선거운동의 자유를 확대하겠다”며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결과다.
2022년 3월 행정안전부는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에 처음으로 국비 1억5699만원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현장 활동가들은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 불과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폐현수막 재활용은 25%에 그쳤다.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소각됐다. 재활용 물품도 선풍기 커버, 청소 마대자루 정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인식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정해진 내용으로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폐현수막 재활용 25%2022년 5월2일 광주자원순환협의체와 광주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쓰레기를 생각하는 지선씨에게’ 토론회에는 광주에서 활동하는 기본소득당, 녹색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관계자들이 모여 ‘법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공통의 고민을 공유했다. “소수정당이다보니 언론 노출 기회가 적고 후보를 알릴 만한 수단은 현수막이나 공보물뿐이라 친환경 선거를 시도하기 어려워요. 공보물 일부를 온라인 홍보물로 전환하거나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어야 해요.”(박송희 정의당 광주시당기후정의 특별위원)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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