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왕산에 오르면 청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와대 코앞까지 차도 사람도 편히 오간다. 미리 신청하면 해설을 들으며 경내 관람도 할 수 있다. 이만하면 꽤 ‘열려’ 있는데 굳이 더 열어주겠다, 국민에게 돌려주겠다 하니, 그럼 그냥 국회처럼 일부 공간만 빼고 다 개방하면 되지 싶은데. 단 하루도 못있겠다니 말릴 도리는 없다. 다만 집무실과 관저 자리를 애초 계획과 다르게 바꾸면서 왜 자꾸 “원래 그곳(국방부 청사, 외교부 장관 공관)도 검토 대상이었다”고 하는지는 의아하다. 특히 거처는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지내겠다고 리모델링 비용 25억원까지 배정받아놓고는 갑자기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꿨다. 비가 샐 정도로 낡았다는 게 이유인데 그럼 리모델링해 쓰겠다고 할 땐 그걸 몰랐나. 말 바꾸기가 분명한데도 애초부터 다 알고 고려했던 ‘척’을 반복한다. 혹시 앞으로 국정에서도 그럴 일이 있다면 처음부터 모든 패를 같이 꺼내 보여주기 바란다. 함께 검토해드릴 수 있고, 무엇보다 나중에 뻔히 알고도 속아줘야 하는 이런 느낌 안 갖고 싶으니까.
당선자와 참모들은 ‘일 잘하는 척’을 하고 싶은가. 후보 시절에는 ‘척도 안 해’ 불편했는데 당선되고는 ‘척만 하니’ 영 부담스럽다. 국민의 뜻을 ‘아는 척’하는 것도 민망하다. 본인 주장을 하면 될 것을 말끝마다 국민을 판다. ‘윤심’에 제일 가깝다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그렇다.
국회의장의 중재로 양당이 합의해서 발표한 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국민이 큰 피해를 볼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그는 앞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통화하며 사실상 윤심의 ‘셔틀’ 역할을 맡겨, 의원총회에서 추인하고 공표된 합의안을 불과 사흘 만에 파기하게 했다. 국회는 다시 대치 국면에 빠져들었다. 공당의 의사결정 과정도 국회의 합의 정신도 깡그리 무시해버린 꼴이다. 당선자가 동의하지 않은 법안은 “입법 독주”이고, 어렵게 이룬 국회의 합의는 “국민의 우려”라는 이유를 갖다 붙여 이리 쉽게 저버려도 되는가.
더불어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강행할 명분을 또 얻었다. 합의안은 보완할 내용도 적잖은데, 국민의힘이 절차를 뒤엎는 바람에 내용 비판이 쑥 들어가 버렸다. 민주당은 대통령 복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당 복까지 차고 넘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은 2022년 6월1일 지방선거 때 이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한다. 검찰 수사권 문제가 헌법에서 정하는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인지도 의아하지만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한 방에 무력화하는 발상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럼 그때 집무실 이전도 같이 묻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국가 안위에 많은 우려가 있음에도 밀어붙이지 않았나.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절반이 넘는다는 사실을 어쩜 이리 쉽게 잊을까. 왜 이리 편의적일까. 얼렁뚱땅 가벼울까. 직접 통치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큰 착각이다. 역사는 이런 태도를 ‘연성 독재’라 불렀다. 윤 당선자가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썼던 표현이기도 하다. 욕하다 배웠나. 반대로 하려다 닮아버렸나. 아니면 지나치게 의식하다 회로가 탔는가.
총리부터 장관 후보자들까지 1기 내각을 보면 몇몇은 당선자가 지난 정권을 비판하며 내세운 ‘공정과 상식’의 기준에 심하게 반한다. 공직은커녕 지금 자리에 있어서도 안 될 정도다. 일부는 ‘수사선’에 올라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허술하게 검증해놓고는 “안배는 없다”느니 “능력 위주로 했다”느니 ‘잘 고른 척’을 한다.
떠나는 대통령의 충고를 새기길 바란다. “그냥 편하게 국민을 들먹이면 안 된다. 진짜 국민을 이야기하려면 정말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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