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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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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 블루칼라의 표심은 어디에?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된 정치 지형의 상관관계
등록 2022-03-12 15:54 수정 2022-03-13 02:52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신승한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중도층과 무당파의 공간이 좁았다. 유권자가 확 갈린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양극화된 것과 연관된다. 한국갤럽이 2022년 3월7일 실시한 조사에서 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비율은 43%, ‘잘못하고 있다’는 50%였다. 이 평가 결과가 그대로 대선 투표로 연결됐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총력전이 벌어졌던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자영업자는 떠났고 블루칼라는 남아

정치적 양극화 양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2차 노동시장으로 확연히 나뉜 이중 경제 구조와 그에 따른 극심한 이해관계 대립 양상이 드러난다. 먼저 소득이 낮을수록 보수 쪽에 기울어져 있다. 갤럽 3월7일 조사에서 생활수준별로 대통령 부정 평가 비율을 보면 ‘상 및 중상’은 49%, ‘중’은 48%였는데 ‘중하’는 56%, ‘하’는 57%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34~38%로 엇비슷했다. 갤럽은 계층별 대선 후보 지지율은 조사하지 않는다. 대신에 정당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중하’와 ‘하’ 계층에서 문 대통령 부정 평가 비율에 견줘 20%포인트가량 낮다. 저소득층 다수가 더불어민주당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들이 오롯이 국민의힘, 나아가 윤석열 당선자 지지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갤럽은 직업별 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하는데, 기능노무·서비스 종사자는 문 대통령 부정 평가 비율 48%보다 13%포인트, 사무·관리직(부정 평가 46%)은 8%포인트 윤석열 후보(현재 당선자) 지지율이 낮았다. 자영업자, 주부, 학생의 경우 지지율이 부정 평가 비율보다 4%포인트 이내로 낮았다. 자영업자와 20대 남성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확고한 불만세력인 반면 노동자는 블루칼라·화이트칼라 모두 유동적인 집단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중 다수가 저소득층으로 보인다. 그런데 2020년 4월 총선 당시 갤럽이 조사한 대통령 부정 평가 자료까지 보면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표심 변화 양상은 다르다. 당시 기능노무·서비스 종사자의 대통령 부정 평가와 2022년 3월7일 갤럽 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율의 격차는 1%포인트에 불과하다. 반면 사무·관리 종사자는 당시 부정 평가 비율(21%) 대비 17%포인트 높은 비율로 윤 후보를 지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형성된 강대한 민주당 지지 집단 가운데 자영업자는 대거 이탈했는데, 블루칼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가 남아 있다. 오히려 화이트칼라의 이탈이 이번 대선의 특징이다. 3월7일 갤럽 조사에서 사무직의 윤 당선자 지지율(38%)은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율(35%)보다 높다.

5명 미만 소사업체 비정규직 임금, 수년째 제자리걸음

2000년대 중후반 이후 민주당은 호남과 호남 출신의 수도권 중하위 계층 이주민이 중심인 정당에서 수도권 화이트칼라 정당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2013년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저소득층 집단에서 45.4%를 득표해 이회창 후보(35.1%)를 10%포인트 앞섰다. 중간소득층에선 비슷했고 고소득층에서는 소폭 열세였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저소득층 지지는 이전과 비슷했고 중간소득 지지가 크게 늘었다.

그런데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저소득층 지지율이 41.1%로, 박근혜 후보(57.8%)에게 16.7%포인트 뒤졌다. 또 자영업자가 대거 이탈했고 화이트칼라의 지지는 뚜렷해졌다. 민주당이 2010년대 중반까지 열세를 면치 못한 데는 전통적인 지지 집단 이탈이 있었다. 상황이 바뀐 건 2016년 총선을 전후해 자영업자와 중하위층이 다시 보수정당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다시 6년 만에 국민의힘으로 되돌아갔다.

이들이 스윙보터가 된 가장 큰 원인은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 속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추이를 살피면 대규모 사업체(종사자 수 300명 이상) 정규직 임금은 2007~2016년 연평균 3.2% 올랐다. 그런데 5명 미만이 일하는 소사업체 비정규직은 0.8% 오른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급여는 오히려 쪼그라든 셈이다. 2017~2020년 임금 상승률도 대규모 사업체 정규직은 1.8%, 소사업체 비정규직은 0.5%다. 시간당 임금은 모두 증가하는 추세였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임 상승에 대해 자본 투입을 늘리고 고용 시간을 줄여 적극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대규모 사업체 정규직에 견준 소사업체 비정규직의 임금총액 비율은 2007년 23.0%에서 2020년 18.4%로 하락했다.

기업 간 임금 격차도 벌어졌다. 오지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은 비금융업 기업을 대상으로 노동소득분배율(부가가치 대비 보수 비율) 추이를 분석했다. 분배율 상위 25% 기업의 경우 2000년 이후 계속 임직원 몫이 늘었다. 하지만 하위 25%는 줄곧 내려갔다. 또 종사자 100명 미만 중소기업의 분배율 감소가 확연했다. 선진국에 걸맞은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드는 대기업과 뒤처진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가 고스란히 임금 격차로 전이된 셈이다.

스페인·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따라가나

이러한 ‘이중 경제’ 구조의 문제는 경제정책에서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에게는 삶의 질을 높일 기회다. 하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과 소상공인에게는 별다른 이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임금총액이 줄게 된다. 윤석열 당선자가 자영업자를 겨냥해 내놓은 최저임금, 주 52시간 노동시간 관련 발언이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이외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한 나라는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다. 이들 나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핵심·정규직 노동자에게 관대하고, 주변부·비정규직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주며,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동자에게 빈약한 보조금을 주는 사회복지 체제를 갖고 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유독 낮기도 하다. 양극화된 정치 지형 속에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점도 같다. 이번 대선 결과가 한국이 일종의 남유럽형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징후로 읽히는 이유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조선비즈> 기자

*조귀동의 경제유표: 경제유표란 경제를 보면 표심, 민심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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