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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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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만 좇는 언론, 유권자는 ‘일진 놀이’

심상정·안철수·손학규·김동연은 ‘다른 정치’를 증명하라
등록 2021-12-10 18:41 수정 2021-12-11 00:21
전국 여성대회를 기념하는 깃발을 들어 보이는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공동취재사진

전국 여성대회를 기념하는 깃발을 들어 보이는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 공동취재사진

깜짝이야, 김고은인 줄 알았네. 어찌나 짧게 지나갔는지 텔레비전에 나온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순간 김고은으로 보였다. ‘2초 김고은’을 확인시키기 위한 뉴스 제작진의 속 깊은 의도인가. 심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만난 날에는 드물게 단독 꼭지로 다뤄졌다. 진보 진영 밖의 인사와 정책 공조 정도는 해줘야 조명받는 것이다. 방송과 신문 모두 인색하기 짝이 없다.

안 후보는 격세지감이겠다. ‘새정치’가 뭔지 10년도 지났으니 설명은 가능할 텐데, 정작 가장 필요한 이때 언론의 철저한 외면 속에 있다. 경마 중계식 지지율 보도에서나 이름을 걸칠 뿐이다. 그가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후보를 일일이 호명하며 청년의 미래를 위해 ‘연금 개혁에 나서자’고 외칠 때조차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별수 있나. 억울하면 연대해야지.

김동연, 손학규 후보도 심기일전해 부지런히 만나시라.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심상정-안철수가 머리 맞댄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도 좋고, ‘대장동·고발사주 쌍특검’도 좋다. 정책 연대나 정치 연합도 대환영이다. 독일식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 같은 정부 형태 전환 논의도 바람직하다.

결선투표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함께 다당제를 위한 최소한의 디딤돌이다. 만약 지난 총선에서 제대로 도입됐다면 양당이 차마 위성정당을 만들진 못했을 것이다. 이번 대선이 ‘저 후보 되는 거 보기 싫어 이 후보 찍는’ 우울하고 참담한 모습으로 진행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작 ‘정권 교대’ 하는 주제에 ‘정권 탈환’이니 ‘정권 보위’니 목소리 높이는 꼴을 그나마 덜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권력구조를 갖추는 일을 이미 기득권을 차지한 거대 양당이 알아서 해줄 리 만무하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이재명, 윤석열 관련 의혹 수사 상황은 민망할 지경으로 지지부진하다.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패자에 대한 수사만 급물살을 탈 게 뻔하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나는 게 K-수사 관료들이니까. 어정쩡한 시점에 어정쩡한 상태로 결론이 나면? 차라리 후보가 교체되면 다행이게. 그대로 대선이 진행되다간 대참사다. 승복도 어려워지고 새 정권의 인수인계도 곤란해진다. 우리 국민이 아무리 취미가 정치 걱정, 특기가 국난 극복이라지만 후보가 쇠고랑을 차거나 혹은 대통령으로 뽑히는 바람에 쇠고랑을 안 차게 되면 공동체 정서에 큰 상처를 남긴다. 이 문제는 대선 후보 등록 전에 결론 내는 게 옳다.

양당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이리 높은데도 양당의 선거대책위원회가 꾸려지자마자 무당층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형국이다.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만 좇고 판세를 분석하는 언론 보도 탓에 유권자까지 덩달아 ‘일진 놀이’에 포위된 듯하다. ‘얘 찍고 살래, 쟤 찍고 죽을래’ 같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심상정의 능력은 물론이고 안철수의 의지, 김동연의 희망, 손학규의 충정을 사람들은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당장의 지지율이 미미하니 세상에 별 영향이 없으리라 지레 외면한다. 약하면 모을 일이다. 그게 꼭 정치공학적 후보 단일화일 필요는 없다. ‘다른 정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가령 최근 언론의 잔인한 사생활 보도에 시달리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직을 그만둔 조동연 서경대 교수에게 “이렇게 된 이상 국방부로 가자”고 제안하는 건 어떤가. 경력으로나 경험으로나 그만한 국방 개혁의 적임자가 없다. 프레임으로 ‘짠 의제’ 말고 현실의 유권자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찐 의제’에 깊이 발을 담가보길 권한다. 단언컨대 새 길이 보일 것이다.

한 친구는 “살다 살다 내가 ‘핵규옹’과 ‘찰스’를 응원하는 날이 올지 몰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모두 별칭 또는 애칭이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칭호 아무나 얻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름값을 믿으시길.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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