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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부실수사를 부실수사하다

등록 2021-11-20 03:32 수정 2021-11-20 16:26
2021년 11월17일 군인권센터가 ‘공군 중사 성추행 사건 수사본부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2021년 11월17일 군인권센터가 ‘공군 중사 성추행 사건 수사본부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군이 공군 중사 성추행 사망사건을 은폐·축소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2021년 11월17일 군인권센터(센터)는 사실상 성추행 사건 수사지휘를 한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군법무관들의 대화를 공개했다. 녹취록은 공군 중사 성추행 사망사건을 수사 중이던 6월 중순 녹음됐다. 부실수사, 피해자 신상 유출로 공군본부 법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이후다. 피해 중사는 상관의 성폭력을 신고한 뒤 지속적인 회유와 협박, 2차 가해를 당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검사 ㄱ: 제가 구속시켜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어요. 범행 부인에, 피해자 회유 협박에, 2차 가해에 대체 왜 구속을 안 시킨 거예요? 구속시켰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선임 군검사: 실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겠지. 야, 우리도 나중에 나가면 다 그렇게 전관예우로 먹고살아야 되는 거야. 직접 불구속 지휘하는데 뭐 어쩌라고? (…) 입단속이나 잘해들.

녹취록엔 당시 성추행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전익수 법무실장(준장)이 가해자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직접 지휘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담겼다. ‘공군검찰지침’에 따르면 ‘모든 성범죄는 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죄질·합의 여부 등을 고려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될 때만 예외적으로 구속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는데도 “범행 부인에, 피해자 회유 협박에, 2차 가해”까지 한 가해자는 구속되지 않았다.

센터는 선임 군검사의 “전관예우” 발언에 주목했다. 가해자의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엔 해군본부 법무실장 출신인 김아무개 예비역 대령이 파트너 변호사로 있다. 김 변호사는 전익수 실장과 군법무관 동기이자 대학 선후배 사이로, 전 실장이 김 변호사를 고려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는 게 센터의 주장이다. 전 실장은 10월 국정감사에서 김 변호사와 사건 관련해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고 직접 수사를 지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초동 부실수사 책임자로 지목된 전 실장은 9월 불기소 처분됐다. 국방부 검찰단이 사건 보고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전 실장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인 것이다.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국방부는 ‘부실수사를 부실수사해’ 전 실장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전 실장은 “녹취록은 사실이 아니”라며 “피해 여군의 사진을 올리라고 지시한 사실이 없으며,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전 실장과 선임군검사로 언급된 전아무개 소령은 18일 군인권센터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군검사 ㄴ: 지금 압수수색까지 들어오고 난리가 났는데 어떡하라고요. 이러다 우리도 다 끌려가서 조사받아요.

선임 군검사: 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어차피 양 계장님(국방부 고등군사법원 재판연구부 군무원)이 다 알려줬고, 다 대비해놨는데 뭐가 문제인 거야?

녹취록엔 공군본부 법무실이 고등군사법원 소속 군무원에게서 압수수색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담겼다. 국방부 검찰단은 전 실장에게 수사 상황을 유출한 군무원 또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했다. 녹취록엔 전 실장이 군검사들에게 피해 중사의 사진을 올리라고 종용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당시는 사건이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첩된데다, 피내사자 신분이던 전 실장은 사건 관계 자료를 살필 권한과 이유가 없었다는 게 센터 주장이다.

사건 발생 뒤 준장으로 진급한 전익수 실장은 11월16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삼정검을 받았다. 삼정검 뒷면엔 ‘산천의 악한 것을 물리치라’는 뜻의 한자 ‘추산악’(推山惡)이 쓰여 있다. 군이 베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악’은 대중이 생각하는 ‘악’과 다른 것일까. 군을 통한 수사는 더는 믿을 수 없게 됐다. 전 실장이 실제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는지, 공군본부는 어떤 이유로 압수수색을 “다 대비”해야 했는지, 대비한 상세 내용은 무엇인지, 왜 피해자의 사진을 올리라고 했는지 특검을 통한 재수사가 필요하다.

장수경 <한겨레> 편집부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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