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권범철
2022년 대선까지 꽃길만 펼쳐져 있을 것 같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앞엔 ‘검찰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결과와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메시지·비전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몇 달째 1위를 유지하던 지지율도 정체 곡선을 그리고 있다. 또 국민의힘 입당 뒤 시너지보다는 파열음이 더 큰 상황이다. 민심은 냉정하다. 신선한 얼굴을 기대하지만, 어설픈 시행착오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윤석열의 정치’를 입증할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유년시절 윤 전 총장은 규칙을 우선시했다. “선생님이 (동대문운동장) 10바퀴를 돌라고 하면 이걸 힘들게 왜 돌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친구들은) 다 돌았다고 하고 가는데 석열이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 돌았다.”(<구수한 윤석열>, 2021년) 꼼수를 꺼리던 소년은 권력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검사로 자라났다. 수사 외압에는 윗선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았다. ‘정의’를 갈구하는 대중의 눈에 윤 전 총장은 ‘스타 검사’를 넘어 어느 정권에서나 박해받는 ‘희생자’로 각인됐다.
상명하복인 검찰조직에서 ‘모난 돌’을 자처하며 정치권력과 정면충돌해온 서사는 윤 전 총장을 공정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도 “적폐 수사에 이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까지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리지 않고 부패에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에두르지 않는 직설화법도 윤 전 총장의 장점이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 “(여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추진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다” 같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언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검찰 옷을 벗고 나와 여의도 무대에 오른 뒤엔 기존 ‘사이다 발언’을 더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여의도 무(無)경험’은 양날의 칼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 정서의 최대 수혜자이지만, 갑자기 정치 한복판에 불려 들어온 탓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최대 한계로 꼽힌다.
정치 메시지 또한 명료하지 않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현 정부에 각을 세우는 건 구체적이지만 나머지 분야는 아직 스스로 정리돼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본인만의 동력이 없다는 게 약점”이라고 짚었다. 검찰 특유의 ‘흑백 리더십’도 약점으로 꼽힌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윤 전 총장의 인기는 악의 무리를 쓸어내리는 통쾌함에서 비롯되지만 통합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정치는 51% 지지를 확보해도 나머지 49%를 존중하지 않으면 어렵다. 정치는 상대를 적으로 보면 안 되는 영역”이라고 짚었다.
여야의 가치 경쟁이 본격화되면, 필연적으로 사법적 정의와 맞닿아 있는 ‘윤석열식 공정’이 열세에 놓일 수 있다. 이재명 지사의 공정이 소수자·약자에게 동등한 경쟁 기회를 주는 사회구조 개혁의 문제라면, 윤 전 총장의 공정은 반칙 행위에 대한 처벌의 성격이 짙다.

높아진 정권교체의 열망은 윤 전 총장에게 큰 기회다. 집값 급등 등 부동산시장 불안으로 중도층은 정권교체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2021년 4·7 보궐선거에선 서울 25개 구 중 어느 곳도 민주당이 승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윤태곤 실장은 “정권교체 지수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윤 전 총장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로선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검찰 고발 사주’ 의혹 수사라는, 초대형 악재를 넘어서게 된다면 지지율에 날개를 달 수도 있다. 수사가 장기화되거나 강제수사를 통해서도 윤 전 총장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또 한번 정권에 의해 박해받는 이미지를 얻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 피의자로 입건된 윤 전 총장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면 회복 불가능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또 최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 치고 나온 홍준표 의원의 지지율로 범야권 대선 후보 경선 구도가 ‘윤석열-홍준표’ 2강 구도로 재편된 것도 윤 전 총장에게는 위협 요인이다.
윤 전 총장의 행보가 공개될수록 낮은 정책 이해도를 드러내는 발언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격한 표현 등으로 논란을 자초하는 것도 문제다. 대구를 방문해 “코로나 초기 확산이 대구 아닌 다른 지역이었으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하거나, 언론 인터뷰에서 주52시간 근무제의 탄력적 운용을 강조하려다가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해 오해를 사는 사례,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진 뒤 기자회견(9월8일)에서 격앙된 모습을 보여 ‘국민 앞에서 화내고 호통치느냐’는 비판을 받은 사례 등이 그것이다.
<한겨레>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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