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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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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5개월, 총론만 있고 각론은 없었다

권한 두고 법 해석 다른데다 검찰 반발 크고 자충수 연발… 법·철학 보완 시급
등록 2021-06-26 16:07 수정 2021-06-27 01:56
2021년 1월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공식 출범한 정부과천청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오른쪽 모임 왼쪽 둘째)과 김진욱(〃 왼쪽 첫째) 공수처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모임 오른쪽 첫째) 등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년 1월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공식 출범한 정부과천청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오른쪽 모임 왼쪽 둘째)과 김진욱(〃 왼쪽 첫째) 공수처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모임 오른쪽 첫째) 등이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단 몇 달 만에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역량을 제대로 갖추고 자리잡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나 과오도 있을 것입니다.”

2021년 6월17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수처장 취임 뒤 처음 언론과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그는 공수처가 지키려는 원칙과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수사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성윤 서울고검장 ‘특혜 조사’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공수처는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이하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제공하고 조서도 남기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지난 반년여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점차 헤매지 않고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공수처의 ‘미로 학습’ 시간이었다. 2021년 1월21일 공수처가 출범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판사, 검사, 경무관급 경찰에 대해서는 기소권도 갖는다. 1996년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제안한 지 25년 만에 첫발을 내디뎠다. 부패 척결과 검찰 개혁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의 산물이자, 기소다원주의로 변화하는 형사사법체계 대변혁의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순탄치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신생기관이 겪을 법한 시행착오, 그럼에도 비판받아야 할 과오 모두 공수처가 넘어야 할 산이다.

① 명쾌한 법률 부재

먼저 두드러진 건 공수처와 검찰의 갈등이다. 공수처와 검찰은 3월 현직 검사가 연루된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대립했다. 이 사건을 이첩받은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검찰로 재이첩하면서 ‘기소 여부는 우리가 판단할 테니 수사 후 다시 이첩해달라’고 하자, 검찰이 ‘우리는 공수처의 하청이 아니’라고 반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수처는 사건을 이첩했을 뿐 권한을 이첩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검찰의 반발은 거셌다. 대검은 공식 반대 입장을 냈고 수원지검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의 이규원 검사 등을 전격 기소했다.

갈등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공수처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실무상 마찰을 빚는 일이 너무 잦다. 검찰이 인지한 고위공직자 비위를 어느 시점에 공수처에 알려야 하느냐를 놓고 두 기관의 해석이 엇갈린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처럼 검찰이 공수처의 반발에도 기소를 감행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검찰은 ‘공수처 검사는 기소권 없는 사건에서 사법경찰관과 다름없기 때문에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영장청구권을 두고 두 기관이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면 피의자 인신 구속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수처법 최종안이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총론적인 논의만 있었을 뿐 각론적 고민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1 공수처법은 2019년 12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돼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초당적 협력을 얻는 과정에서 타협적 입법이 이뤄졌다’ ‘검찰 반발이 이 정도일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여러 회고적 비판이 나온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통상 규정이 모호하면 검·경은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해석, 운영해왔다. 법은 그 자체로 완결돼야 하는데 잘못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부실한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정웅석 서경대 교수(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는 “권한을 쪼개 갖는 여러 기관 사이에 다툼이 뻔히 예상됐음에도 실무상 혼란과 비효율을 전혀 구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성기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수사기관 권한 범위 문제는 법률로 명확히 해야 한다. 공수처법을 개정해서 완결을 기해야 한다”고 짚었다.

② 관계기관 협업 부재

그러나 당장의 법 개정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국회는 ‘애프터서비스’(사후관리)에 관심이 없다. 국회를 원망할 새도 없다. 공수처는 조직과 운영의 기틀을 갖추는 동시에 사건도 처리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6월17일 기준, 공수처에 접수된 고소·고발만 1570건이다. 공수처 정원은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으로 그 수가 다 채워져도 순천지청 규모밖에 안 된다. 검·경과 유기적인 협업이 필수인 이유다. 법 개정에 회의적인 이들도 기관 간 대화와 협의를 통해 원칙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공수처가 모델로 삼는 영국의 반부패수사기구 ‘중대부정수사처’(SFO)를 참고할 만하다. 영국에선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청이 맡고, 중대부정수사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는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나뉘었지만 경찰청장, 공수처장, 검찰청장은 정기회의를 열어 부패범죄 대책을 세우고 개별 사건을 배분한다고 한다. 사건 관할이 불분명하면 중대부정수사처와 검찰청의 공동심의위원회에서 조정한다.2 2017년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공수처 설치 권고안을 발표하며 수사기관이 수사권을 두고 충돌할 때는 조정기구를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물론 공수처도 검·경과 수사 실무를 협의하는 ‘3자 협의체’를 꾸렸다. 3월29일 첫 회의가 열렸는데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공수처는 이 협의체를 해양경찰, 국방부 검찰단까지 포함해 ‘5자 협의체’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공수처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검찰의 협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중재자 역할을 맡을 컨트롤타워도 찾기 어렵다. 보통 행정부처 사이에 권한 다툼이 벌어지면 국무조정실이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한다. 하지만 행정안전부의 경찰, 법무부의 검찰과 다르게 공수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이다.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만연한 상황에서 청와대나 국무총리, 법무부가 섣불리 나서기도 모호하다. 3월 법무부는 ‘특정 사안에 대한 이첩 여부와 범위는 공수처와 검찰이 협의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김지미 변호사는 “현재 부패 범죄 대응 기구에 대한 체계적인 설계가 없다. 공수처의 경우 조직과 규모를 줄인 채 덩그러니 만들어놓고 모든 게 해결되길 바라니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21년 6월17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6월17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이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현안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대안 기관으로서 철학 부재

공수처는 협의를 지속하는 동시에 그 권한을 스스로 확보해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헌법재판소 선례를 참고할 만하다. 1988년 헌법재판소도 출범 초기 좌충우돌을 겪었다. ‘헌법 개정자들은 재판소와 대법원의 권한을 모호하게 배분했고 대법원은 헌재가 많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헌재는 불명확한 부분을 하나둘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갔다’는 평가를 받는다.3

공수처는 잇단 자충수를 둬 구설을 자초했다. 세간의 관심 속에 공수처가 택한 1호 사건은 의아함을 자아냈다. 4월 공수처는 해직교사 특별채용 부당지시 의혹을 받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건에 사건번호 ‘2021년 공제1호’를 부여했다. 사법권력자의 부패범죄 수사라는 설립 의의에 어긋나는 결정이었고, 그 결정에 관한 여러 해석을 낳았다. 6월4일까지 ‘2021년 공제’로 시작하는 사건 번호를 부여해 수사에 착수한 사례는 모두 9건으로 알려졌다. 수사 여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 사건(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을 검찰에 이첩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니,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수가 검사 사건이었다.

“공수처 규모를 고려하면 큰 사건은 서너 달 정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납득할 만한 기준으로 사건을 선별해 (수사)할 수밖에 없다”고 김진욱 처장은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 착수 기준이 자의적이고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 단서가 있으면 수사해야 마땅하다. 정무적 판단에 따라 입건 시기를 뒤로 미루는 건 정치적 문법일 뿐 법치의 문법이 아니다. 그러나 수사 착수의 기준을 사건마다 설명할 필요는 없더라도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점은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어떻게 새로 정립해나갈지도 미지수다.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면서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는 공보 준칙도 마련해야 한다. 공수처는 4월 15명의 자문위원단을 꾸렸지만 일부 위원이 비공개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명단을 전부 공개하지는 않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에서 어떤 논의를 하는지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공수처는 기존 검·경 수사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가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고위공직자의 범죄 및 비리 행위를 감시하고 이를 척결함으로써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법 의안은 이렇게 공수처의 의의를 설명한다. 이제 막 첫발을 뗀 공수처가 이 의의를 실현해나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참고 문헌
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과 제도의 이해-각국의 검찰제도와 비교법적 관점에서>, 정웅석 지음, 박영사 펴냄, 2021
2. ‘외국 반부패 특별수사기관의 선진 수사제도 연구’, 김영중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2020
3.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이범준 지음, 궁리 펴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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