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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란 미명 아래 개발독재를 밀어붙인 정치권력과 재벌 사이의 끈끈한 유착 관계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특징인 ‘속도전’과 ‘모험 투자’를 가능하게 한 숨은 공신이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재벌의 성장 과정에선 나름의 ‘공식’이 발견되곤 한다. 일단 장사를 통해 밑천을 마련한 뒤, 그 자금을 바탕으로 기술을 배워오고 제품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치다가, 어느 시점에서 과감한 몰빵 투자로 주요 산업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강자의 지위로 오르는 것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이 걸어온 지난날을 돌아봐도 이런 공식은 얼추 들어맞는다. 시장에서 잡화를 내다팔거나(삼성·두산), 포목상(LG)을 하기도 했고, 쌀장사(현대)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 만석꾼의 집안에서 직물산업에 투자했던 사례(경방) 정도가 예외라면 예외일 수 있다. 속성상 상인자본주의에 더 근접해 있는 이런 역사 과정은 애초 자본 축적의 토대가 상대적으로 허약했던 식민지 경험국의 특성을 반영할 터이지만, 주로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에 뿌리를 둔 서구의 경험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실제로 산업화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물론이려니와, 후발 산업화 국가로 꼽히는 미국·독일·일본 등에선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과학자와 기술자가 ‘자본가’로 변신하는 사례가 흔했다. 철강과 화학, 전기, 자동차, 석유 등 당시 기준으로 새로운 산업 분야를 일궈낸 동력 역시 과학기술 지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게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도 재벌 가문의 3대 승계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미 창업가의 4세가 경영에 부분적으로나마 참여하는 기업도 있지만, 대표 재벌이라 할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에선 3대 승계가 가시권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분위기다. 이들 재벌가문의 3대 승계 작업을 지켜보는 세간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3대 승계를 위해 교묘하게 불법·탈법 행위를 수없이 일삼아왔음에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국민 감정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총수의 일방적 지배와 복종 등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재벌문화에서 3세들의 경영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설령 온갖 따가운 눈총을 이겨내고 이들이 마침내 권좌에 오른다 한들 우리 사회가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비즈니스 리스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서구 나라들에서 몇 대에 걸쳐 부가 승계될 수 있었던 데는,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팽창과 성장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역동성을 찾기 힘든 숙명에 맞닥뜨린 상태다.
우리 옛 속담에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과거엔 그만큼 세상이 역동적으로 변해왔고, 그 과정에서 신분과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작용했음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화제작 에서 지적했듯이, 세상은 어느새 견고한 ‘세습 자본주의’의 성채 안으로 빨려들고 있다. 정작 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채, 부의 세습 구조만 단단하게 굳어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성큼 다가온 재벌가 3대 승계는 과연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아니면 모두의 지혜를 모아 피해야 할 또 하나의 재앙일까.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 이번호에 이른바 ‘기레기’ 문제를 짚어본 이유입니다. 유가족들을 비롯해 언론을 바라보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에 귀기울였습니다. 특히 독자편집위원회의 질타는 의 보도 행태를 되짚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소홀했고, 기사를 쓰는 기자의 감정이 도드라졌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따끔한 지적이었습니다. 다만 은 세월호 참사에서 단순한 현장 중계보다는, 이번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는 데 상대적으로 비중을 두려 했다는 변명 아닌 변명도 드려봅니다. 앞으로 좀더 신뢰받는 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ahref>
산업화란 미명 아래 개발독재를 밀어붙인 정치권력과 재벌 사이의 끈끈한 유착 관계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특징인 ‘속도전’과 ‘모험 투자’를 가능하게 한 숨은 공신이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재벌의 성장 과정에선 나름의 ‘공식’이 발견되곤 한다. 일단 장사를 통해 밑천을 마련한 뒤, 그 자금을 바탕으로 기술을 배워오고 제품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치다가, 어느 시점에서 과감한 몰빵 투자로 주요 산업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강자의 지위로 오르는 것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이 걸어온 지난날을 돌아봐도 이런 공식은 얼추 들어맞는다. 시장에서 잡화를 내다팔거나(삼성·두산), 포목상(LG)을 하기도 했고, 쌀장사(현대)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 만석꾼의 집안에서 직물산업에 투자했던 사례(경방) 정도가 예외라면 예외일 수 있다. 속성상 상인자본주의에 더 근접해 있는 이런 역사 과정은 애초 자본 축적의 토대가 상대적으로 허약했던 식민지 경험국의 특성을 반영할 터이지만, 주로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에 뿌리를 둔 서구의 경험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실제로 산업화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물론이려니와, 후발 산업화 국가로 꼽히는 미국·독일·일본 등에선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과학자와 기술자가 ‘자본가’로 변신하는 사례가 흔했다. 철강과 화학, 전기, 자동차, 석유 등 당시 기준으로 새로운 산업 분야를 일궈낸 동력 역시 과학기술 지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게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도 재벌 가문의 3대 승계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미 창업가의 4세가 경영에 부분적으로나마 참여하는 기업도 있지만, 대표 재벌이라 할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에선 3대 승계가 가시권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분위기다. 이들 재벌가문의 3대 승계 작업을 지켜보는 세간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3대 승계를 위해 교묘하게 불법·탈법 행위를 수없이 일삼아왔음에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는 국민 감정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총수의 일방적 지배와 복종 등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재벌문화에서 3세들의 경영 능력을 제대로 검증해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설령 온갖 따가운 눈총을 이겨내고 이들이 마침내 권좌에 오른다 한들 우리 사회가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비즈니스 리스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서구 나라들에서 몇 대에 걸쳐 부가 승계될 수 있었던 데는, 자본주의의 거침없는 팽창과 성장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역동성을 찾기 힘든 숙명에 맞닥뜨린 상태다.
우리 옛 속담에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과거엔 그만큼 세상이 역동적으로 변해왔고, 그 과정에서 신분과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작용했음을 방증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화제작 에서 지적했듯이, 세상은 어느새 견고한 ‘세습 자본주의’의 성채 안으로 빨려들고 있다. 정작 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켜가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채, 부의 세습 구조만 단단하게 굳어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성큼 다가온 재벌가 3대 승계는 과연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아니면 모두의 지혜를 모아 피해야 할 또 하나의 재앙일까.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이 이번호에 이른바 ‘기레기’ 문제를 짚어본 이유입니다. 유가족들을 비롯해 언론을 바라보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에 귀기울였습니다. 특히 독자편집위원회의 질타는 의 보도 행태를 되짚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유가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소홀했고, 기사를 쓰는 기자의 감정이 도드라졌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따끔한 지적이었습니다. 다만 은 세월호 참사에서 단순한 현장 중계보다는, 이번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는 데 상대적으로 비중을 두려 했다는 변명 아닌 변명도 드려봅니다. 앞으로 좀더 신뢰받는 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ah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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