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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아직 둘로 나뉘어 있던 1983~84년. 서독에서는 약 20억마르크의 돈이 동독으로 넘어갔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우리돈 6천억원을 웃도는 큰돈이다.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은 과감한 투자이자 사실상 ‘퍼주기’였다. 당시 서독 총리는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연합(CDU)을 이끄는 헬무트 콜이었다. 1982년 사회민주당(SPD)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뒤, 전임 사민당 정부가 추진하던 동방정책 노선을 한층 더 밀고 나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동독 투자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 남부 바이에른주를 기반으로 한 CDU의 자매정당 기독사회연합(CSU)의 요제프 슈트라우스였다는 사실이다. 슈트라우스는 보수를 넘어 극우 성향의 행보로 유럽 정치 무대에서 악명을 떨치던 장본인이다.
서독의 동독 투자는 그 이전부터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동독 지역에 자리잡은 베를린에서 출발해 동·서독 국경을 넘어 북부 함부르크에 이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도 서독의 자금이다. 이런 방식으로, 동·서독의 각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속속 건설됐다. 1990년 통독 이후 동독 지역 재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느라 독일 경제가 한때 휘청이기도 했지만, 그나마 통일에 앞서 미리 이뤄졌던 투자가 그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단지 동·서독 경제협력과 교류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는 얘기를 꺼내려는 건 아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동독 지역 투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된 시기가 서독 경제가 위기를 겪던 1970년대 중반 무렵이라는 사실이다. 전후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1950~60년대 내내 고도성장하던 서독 경제는 70년대 들어 고도성장이 남긴 크나큰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위기에 빠져들었다. 고도성장 시기에 빠르게 부를 축적한 서독 자본은 더 이상 투자처가 없다며 아우성이었다. 냉혹한 자본의 입장에선, 새로운 ‘출구’가 필요했다. 그들은 동독 지역에서 그 작은 가능성을 찾아냈고, 훗날 마침내 통일이 찾아왔을 때 재건비용 절감이라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 것이다.
품격 있는 언어만 구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새해 벽두에 터져나온 ‘통일 대박’ 발언으로, 사회 전반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로서의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크게 치우쳤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른 한편에선 규제가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재계의 아우성이 해가 바뀌었건만 여전하다.
자본주의란 자본이 주인공이 되는 경제체제다. 경제란 돈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역설적이게도, 돈(자본)이 희귀할수록 돈이 더 대접받기 마련이다. 숱한 위기가 되풀이됐건만 자본주의가 여태껏 버텨온 비밀은, 성장 국면에서 축적된 자본이 철철 넘쳐나 쉽사리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할 때면 적당한 ‘출구’를 찾아낸 데 있다. 일종의 ‘낭비적 투자’를 통해 넘쳐나는 돈을 적절히 ‘바깥’으로 빼줌으로써 자본의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린 셈이다. 때론 그 출구가 무기 개발이나 전쟁이 되는 비극도 있었고, 우주개발 같은 거대 프로젝트가 된 적도 있다.
2014년. 섣부른 통일론과 구닥다리 위기론이 나란히 공존하는 한국 사회. 국가(정부)와 자본(재벌)은 과연 어떤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출구를 찾아낼 현명한 지혜를 갖고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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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아직 둘로 나뉘어 있던 1983~84년. 서독에서는 약 20억마르크의 돈이 동독으로 넘어갔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더라도 우리돈 6천억원을 웃도는 큰돈이다.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은 과감한 투자이자 사실상 ‘퍼주기’였다. 당시 서독 총리는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연합(CDU)을 이끄는 헬무트 콜이었다. 1982년 사회민주당(SPD)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뒤, 전임 사민당 정부가 추진하던 동방정책 노선을 한층 더 밀고 나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동독 투자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 남부 바이에른주를 기반으로 한 CDU의 자매정당 기독사회연합(CSU)의 요제프 슈트라우스였다는 사실이다. 슈트라우스는 보수를 넘어 극우 성향의 행보로 유럽 정치 무대에서 악명을 떨치던 장본인이다.
서독의 동독 투자는 그 이전부터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동독 지역에 자리잡은 베를린에서 출발해 동·서독 국경을 넘어 북부 함부르크에 이르는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도 서독의 자금이다. 이런 방식으로, 동·서독의 각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속속 건설됐다. 1990년 통독 이후 동독 지역 재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느라 독일 경제가 한때 휘청이기도 했지만, 그나마 통일에 앞서 미리 이뤄졌던 투자가 그 충격을 상당 부분 흡수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단지 동·서독 경제협력과 교류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는 얘기를 꺼내려는 건 아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동독 지역 투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게 된 시기가 서독 경제가 위기를 겪던 1970년대 중반 무렵이라는 사실이다. 전후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1950~60년대 내내 고도성장하던 서독 경제는 70년대 들어 고도성장이 남긴 크나큰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위기에 빠져들었다. 고도성장 시기에 빠르게 부를 축적한 서독 자본은 더 이상 투자처가 없다며 아우성이었다. 냉혹한 자본의 입장에선, 새로운 ‘출구’가 필요했다. 그들은 동독 지역에서 그 작은 가능성을 찾아냈고, 훗날 마침내 통일이 찾아왔을 때 재건비용 절감이라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 것이다.
품격 있는 언어만 구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서 새해 벽두에 터져나온 ‘통일 대박’ 발언으로, 사회 전반에 ‘통일’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로서의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에 크게 치우쳤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른 한편에선 규제가 투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재계의 아우성이 해가 바뀌었건만 여전하다.
자본주의란 자본이 주인공이 되는 경제체제다. 경제란 돈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역설적이게도, 돈(자본)이 희귀할수록 돈이 더 대접받기 마련이다. 숱한 위기가 되풀이됐건만 자본주의가 여태껏 버텨온 비밀은, 성장 국면에서 축적된 자본이 철철 넘쳐나 쉽사리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할 때면 적당한 ‘출구’를 찾아낸 데 있다. 일종의 ‘낭비적 투자’를 통해 넘쳐나는 돈을 적절히 ‘바깥’으로 빼줌으로써 자본의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린 셈이다. 때론 그 출구가 무기 개발이나 전쟁이 되는 비극도 있었고, 우주개발 같은 거대 프로젝트가 된 적도 있다.
2014년. 섣부른 통일론과 구닥다리 위기론이 나란히 공존하는 한국 사회. 국가(정부)와 자본(재벌)은 과연 어떤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출구를 찾아낼 현명한 지혜를 갖고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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