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기획·연출하며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트렌드를 주도한 쉬커(서극)가 필생의 과업으로 꼽은 작품은 였다. 중국, 나아가 동양의 온갖 사상과 기예를 망라한 를 영상으로 구현한다는 쉬커의 야망은 집요했다. (1983)이 실패작으로 끝난 뒤 등 중국 판타지의 영화화에 계속 도전했고, 마침내 (2001)을 다시 만들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저우싱츠(주성치)의 과 처럼 하나의 콘셉트에 집중하지 않는 한, 쉬커의 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애니메이션은 어떨까? 은 피터 잭슨의 영화로 나오기 전인 1978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의 열혈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1편으로 끝나버렸다. 이미지를 상상하며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도 아마 아이들용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만화는?
엄청난 제작비와 시간이 필요한 영화에 비하면, 만화는 거의 개인 작업에 가깝다. 만화의 위대한 점은 아무리 엄청난 이미지라도 만화가의 펜 하나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쉬커의 에 대한 기대는 접었지만, 만화로 각색된 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를 지경이다.
만화 중 최고의 히트작은 도리야마 아키라의 이다. 비록 등장인물 말고는 원작에 빚진 게 거의 없지만. 그 밖에 한국 만화로는 애니메이션 의 원작인 허영만의 , 고우영의 , 고진호의 , 손태규의 등이 있고, 일본에는 데즈카 오사무의 , 미네쿠라 가즈야의 , 중국에는 천웨이동의 등이 있다.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는 작품부터 현대나 가상의 시공간으로 옮겨 마음대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까지 다양하다.
를 원전으로 하는 수많은 만화들 중에서 단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을 꼽는다. 시리즈 등을 그린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1970년대부터 동서양의 다양한 신화와 종교, 민담 등을 버무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런 모로호시 다이지로에게 는 궁합이 딱 맞는 작품이자 쉬커와는 다른 의미에서 필생의 과업이 될 만하다. 7세기의 현장법사가 북인도에 가서 불전을 구해온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은 손오공 역시 당나라 초기에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모로호시는 역사적 사실을 끌어들이면서 를 완벽하게 뒤집어버린다. 현장과 손오공은 실재한 인물이지만, 그들의 세계는 요괴와 괴물들이 존재하고 갖가지 도술과 요력이 난무하는 초자연적인 시공이 된다. 그리고 제천대성이라는, 민중을 구원하는 동시에 도탄에 빠트리는 존재를 통해 ‘인간세계’의 근본적인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다. 1983년 연재를 시작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은 지금까지의 모든 를 굽어보게 만들 만한 작품이다.
하나를 더 꼽는다면, 모로호시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신화와 종교라는 면에서 못지않은 공력을 쌓아가고 있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도 흥미로운 각색이다. 종말의 신으로 손오공을 해석하는 의 세계관은 모로호시와 꽤나 닮아 있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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