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불어오던 하늬바람(지역에 따라 서풍 또는 북서풍을 말함)이 남서풍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서해 최북단 인천 백령도에 철새가 날아든다. 섬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남서풍이 거세게 불던 2022년 5월4일 오후, 백령도 하늬해변 나뭇가지에 두툼한 원추형 부리를 가진 콩새 무리가 날아들었다. 바람에 시달린 50여 마리 새들은 한동안 꼼짝 않고 ‘찌 찌’ 소리만 낸다. 온몸에 노란색이 선명한 꾀꼬리 10여 마리도 하루 전에 날아와 한참을 앉아 있다 갔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꾀꼬리는 육지로 날아가 여름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인천에서 뱃길로 191㎞, 북한 황해남도 장산곶과는 14㎞ 떨어진 백령도는 동아시아 철새의 이동 경로상 중요 지점이다. 중국과 한반도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에 위치해 서해를 건너는 새가 잠시 쉬는 중간기착지 구실을 한다. 새들은 섬 곳곳에 내려앉아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에너지를 보충한다.
섬 한가운데 있는 화동습지는 장다리물떼새와 뒷부리장다리물떼새, 청다리도요, 청머리오리 한 쌍과 무리에서 낙오한 것으로 보이는 고니 차지다. 습지 옆 폐염전에는 검은머리물떼새와 꼬마물떼새 번식이 한창이고 염전 둑에는 날랜 매가 앉아 있다. 남서쪽 바다로 열린 포구 쪽 숲에는 덩치 작은 산솔새와 쇠솔새, 노랑눈썹솔새와 솔새사촌이 나뭇잎 사이를 날며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숲 주변에는 갓 도착한 제비딱새와 쇠솔딱새, 흰눈썹황금새도 눈에 띈다. 번식을 위해 백령도를 찾은 노랑부리백로와 저어새는 물 댄 논을 찾아와 화려한 번식깃을 뽐내기도 한다.
5월2일부터 엿새 동안 백령도에서 126종의 새를 만났다. 남쪽 정부가 바뀌면서 남과 북은 기선 제압을 하려는 듯 날이 서 있지만, 남북을 넘나드는 이 땅의 새들은 철 따라 바람 따라 변함없이 오가고 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만난 새 52종을 화보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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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인천 옹진군)=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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