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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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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친구, 강

달리던 자전거에 눌려 죽은 멸종위기 표범장지뱀

조개와 물고기의 집단 폐사… 이들을 죽인 탐욕의 삽질
등록 2017-03-22 21:18 수정 2020-05-03 07:17
강이다!

강을 따라 걷다가 물놀이를 하다가 강물 위에 누워, 구름 따라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겨본다. 참갈겨니 여울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쫓다가 물총새 날아간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수달 발자국을 따라 걷다가 참길앞잡이 내려앉는 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간다. 그렇게 아이들은 강과 동무가 된다. 그곳이 강이다.(2011년 6월, 경북 예천 내성천)

생명의 눈으로, 참회의 기도로.

2008년 2월12일, 4대 종단 성직자들이 경기도 김포 애기봉을 출발하여 풍찬노숙, 강 순례에 나섰다. “생명의 눈으로, 참회의 기도로 100여 일 동안 생명의 근원인 강을 모시는” 길이었다.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 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을 천명하였고, 문수 스님은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는 유서를 낙동강 둑에 남겼지만 공사는 멈추지 않았고, 생명의 강은 파괴되었다.(2008년 3월, 낙동강 철새 도래지, 경북 구미 해평습지)

생명의 자궁을 들어내고 훈·포장을 수여하다.

한 뼘만큼의 강모래에 존재하는 생명의 수를 셀 수 있을까? 강변에서 갓 태어난 물새는 무엇이 키울까? 4억4300만m³의 모래를 강에서 파낸 4대강사업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는 1157명을 훈·포장했다. 대한민국의 법은 보호종 서식지를 훼손하면 처벌한다.(2015년 6월, 경북 예천 내성천 흰목물떼새 유조)

누구도 여울을 없애라고 하지 않았다.

수심이 얕을수록 산소가 풍부하다. 흐르는 물살과 바람에 의해 물속으로 산소가 공급된다. 반면 모래를 파낸 후 보로 막아 깊어지고 물갈이가 되지 않으면 산소 공급이 크게 악화돼 수질이 나빠진다. 2010년 4대강을 열흘 넘게 조사했던 독일 알폰스 헨리히프라이제 박사가 밝힌 견해의 일부다. 사업을 찬동한 전문가들이라고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2009년 8월, 보 예정지 답사 중 충남 공주 금강 고마나루)

탐욕의 삽질, 그들에게는 무간지옥!

준설을 위해 강에서 물을 빼자 조개들은 우왕좌왕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생명 살리기’라고 큰돈 들여 선전했지만 공사 중 물 빠진 강의 어패류를 잘 옮겨준 기록영상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폐사가 이어졌고, 2012년 금강 물고기 집단 폐사에 대해 민관공동조사단은 30만 마리의 사체 수거를 보고하였다. 녹조 창궐에 더해 ‘보’라는 감옥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곳, 지옥이 따로 없다.(2010년 10월, 경기 여주 남한강 강천보 현장 일대)

우리가 알던 강은 그곳에 없다.

습지는 대부분 소리 없이 사라졌다. 바위늪구비 파괴가 널리 알려진 것은 남한강교 덕분이었다. 표범장지뱀과 인사했던 경기도 여주 당산리 강변은 완전히 파괴한 지 넉 달 후 새 나무를 들였다. 보에 물을 채웠고 수위가 높아졌고 강이 죽은 듯 침묵을 이어가자, 경북 칠곡 하빈양수장 일대 등에서 녹조 덮은 수면 위로 버드나무 군락이 고사했다.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다.(2009년 8월, 보 예정지 답사 중 전남 나주 영산강 승촌보 예정지 하류)

표범장지뱀에게 ‘자전거길’은 몇 차선 고속도로쯤 될까.

멸종위기종 표범장지뱀이 달리던 자전거에 꼬리뼈가 눌려 죽었다. 산 밑을 따라 빈틈없이 길게 벽을 친 곳도 있다. 4대강사업은 강과 육지를 잇는 습지의 연속성을 계속 끊어내면서 1757km의 자전거길을 완성했고, 지천을 따라 확장 중이다. 육상동물의 생존 환경도 크게 악화됐다.(2013년 10월, 여주환경운동연합 경기 여주 남한강 모니터링 중)

토건자본은 이제 ‘4대강사업’이라는 1단 로켓을 분리했을 뿐이다.

굽이굽이 고운 모래밭을 펼쳤던 강변들과 그 강변에 새겨진 정서와 역사와 문화가 사라졌다. 대신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 태어났다. 4대강을 따라 전 국토의 23.5%가 개발권에 들고, 특별법이어서 수질과 생태를 보전하기 위해 제정된 법들을 무력화한다. 낙동강과 서낙동강 철새보호구역 사이의 에코델타시티 개발이 한 예다. 지천을 직강화하는 ‘고향의 강 살리기’ 사업과 상시 대기 중인 댐 사업은 또 어떤가?(2009년 8월 경북 상주 낙동강 중동교 일대, 아래 사진은 2013년 9월 낙동강 모니터링 중 같은 장소)

강이 해오던 일을 댐이 대신한다고?

백두대간 소백산을 중심으로 늘어선 고산준령의 남쪽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들이 모여 내성천을 이룬다. 늘 넉넉하고 힘차게 흘러 낙동강을 낳고 키웠는데, 그런 강에 낙동강 중·하류의 수질을 개선하는 물을 보낸다면서 1조원이 넘는 댐을 만들었다. 4대강사업 22조원에 포함된 사업이다. 영주댐은 2016년 시험 담수하자마자 녹조가 창궐했고, 담았던 물을 방류하면서는 강을 온통 탁하게 만들었다. 강을 맑게 하는 것은 강이지 댐이 아니다. 백해무익, 걷어내야 한다.(2011년 12월, 경북 예천 내성천)

사진·글 박용훈 사진가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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