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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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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손이라서 던진 주먹돌

등록 2024-07-26 19:21 수정 2024-08-07 16:55
태산아, 오래도록 너를 보았어. 나 어릴 적 소풍에서 보았던 코끼리가, 여자친구 손잡고 보았던 코끼리가, 아이를 목에 태우고 보았던 코끼리가 모두 너였으니까. 한 살 무렵부터 동물원에서 지낸 네게 콘크리트보다 낯선 건 밀림의 흙바닥일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네 울화통이 보이는 돌이 되어 날아간 건 아니었을까. 2006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태산아, 오래도록 너를 보았어. 나 어릴 적 소풍에서 보았던 코끼리가, 여자친구 손잡고 보았던 코끼리가, 아이를 목에 태우고 보았던 코끼리가 모두 너였으니까. 한 살 무렵부터 동물원에서 지낸 네게 콘크리트보다 낯선 건 밀림의 흙바닥일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네 울화통이 보이는 돌이 되어 날아간 건 아니었을까. 2006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 벌어진 사건을 분류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누구 사이에서 벌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첫째, 동물과 동물 사이.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이 터진다.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이 우여곡절 끝에 짝꿍을 만나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는 빅뉴스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아래 숱한 사건·사고가 쉴 틈 없이 일어난다. 둘째, 동물과 사람 사이. 잊을 만하면 터지고, 벌어지는 족족 화제가 된다. 셋째,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 모이는 그 어디에서도 사건이 빈발하는데 동물원이라고 예외일까. 의외로 많은 사건이 동물원 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다.

동물원이라는 구조와 외형을 만들고, 가둘 동물을 고르며, 어떻게 기를지,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오직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사람 사회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우리가 동물과 사람 사이에서 터진 일에 더 예민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벌어지지 않았어야 할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탓일지 모른다. 모름지기 동물원이라는 제도 및 시설은 ‘관람과 체험’이라는 일방적이고 소극적인 ‘반’ 접촉 이벤트를 추구하는 곳인데, 동물과 사람 사이에 사건이 벌어졌다면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2009년 가을,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벌어진 ‘코끼리 돌팔매질 사건’은 기상천외할 뿐만 아니라 신비롭고 잊기 어려운 사건이다. 어이없게도 뉴스를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노래 한 곡이 빠르게 흘러갔다. 아동문학가 강소천(1915∼1963)의 시에 가락을 붙인 〈코끼리〉였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흥에 취해 노래 부를 만한 사건이 아니었는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노래가 현실을 덮친 순간이었으니까. 코끼리가 주먹보다 큰 돌을 코로 주워 산책하던 중년 여성에게 던진(던졌다는)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경찰에 “돌이 코끼리 우리 쪽에서 날아왔고, 코끼리가 코를 감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기막힌 소식을 신문과 방송이 놓칠 리 없었다.

서른다섯 살 아시아 코끼리 ‘태산’이가 범인으로 몰렸다. 몸무게 3.5t에 하루에 95㎏을 먹어치우는 이 대식가는 1975년부터 동물원을 지켜온 터줏대감이었지만, 아내 태순이와 아들 코코를 차례로 잃은 뒤 스트레스성 노화를 겪고 있었다. 그게 ‘코로 돌을 던진’ 이유였을까. 그러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불행히도) 코끼리 우리는 콘크리트 바닥이어서 돌이 있을 리 없었다. 감시카메라에도 찍힌 게 없었다. 경찰은 수사를 끝냈고, 피해자는 처벌의사를 거뒀다. 태산이는 ‘그 바닥’에서 2년을 더 살다 죽었다. 밀림 속 코끼리 수명의 절반이었다.

태산이는 죄가 드러나지 않아 안도했을까, 누명이 억울했을까. 이 불가사의한 사건의 비밀스러운 전말을 손이라 불리던 그의 코, 아니 코라 불리던 그의 손은 알겠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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