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짝 풍짝, 풍짜자 풍짝.” 아코디언이 뿜어내는 흥겨운 가락과 정겨운 선율이 도심 거리를 적신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상가 건물 2층의 ‘은빛사랑채’라는 노인주야간보호센터에 이른다. 머리가 새하얗게 물든 40여 명의 어르신이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노래 솜씨를 뽐내며 박수를 친다.
이곳에서 연주회 겸 노래자랑을 이끈 고양시대화노인종합복지관 아코디언 봉사단 정희준 단장은 81살이다. 아코디언 강좌가 복지관에 생긴 2016년부터 강사를 맡아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 시절 무역업에 종사하며 국외 출장 때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아코디언 기초를 익힌 정 단장은 국내 전문 연주자한테서 가요 연주 기법을 배웠다. 개인적으로 공연을 펼쳤던 정 단장은 강좌 개설 뒤 수강생에게 연주법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주단을 꾸렸다. “취미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한 봉사를 해보자”는 제안에 수강생들이 참여로 답했다.
봉사단의 맏형은 회장을 맡은 서예가 이지규(81)씨다. 첫 수업부터 수강한 김재희(69) 단원이 김시배 단원과 함께 막내다. 12명의 단원 중 다섯 명이 여성이다. 김재희 단원은 후배가 들어와 막내를 면할 날을 애타게 기다린다.
19세기 독일에서 발명된 아코디언은 한 대의 악기로 선율과 반주를 함께 연주할 수 있고, 여러 악기의 다채로운 음색 효과를 낼 수 있어 ‘1인 오케스트라’ 같은 구실을 한다. 오른손으론 건반을 짚어 멜로디를 연주하고 왼손으로 바람통(bellows)을 움직여 바람을 불어넣는다. 들어온 바람이 리드(reed·악기의 혀 같은 역할)에 진동을 일으켜 소리를 낸다. 왼손은 바람통 왼쪽의 수십 개 버튼을 눌러 화음과 리듬도 넣는다.
한국전쟁 뒤 악기가 부족하던 시절 많은 가요가 아코디언을 사용해 작곡되고 연주됐다. 1950~60년대 전통 가요는 아코디언으로 연주해야 원곡의 맛을 살릴 수 있다. 은빛사랑채를 방문한 봉사단은 <짝사랑> <목포의 눈물> 등을 연주하며 어르신들을 젊었던 또는 어렸던 시간으로 되돌려놓았다.
조심스레 마이크를 잡은 김인자(84)씨는 <여자의 일생>을 구성지게 불렀다. 당뇨와 관절염, 가벼운 치매 증상을 겪고 있는 김씨는 노랫말 한번 틀리지 않고 2절까지 마무리해 큰 박수를 받았다. 실제 이날 무선접속 문제로 화면에 가사가 안 나올 때도 마이크를 쥔 어르신들은 ‘그 시절 내 노래’를 익숙하게 불러 함께한 사회복지사들을 놀라게 했다.
은빛 머리 공연단에 은빛 머리 청중. 어르신에 의한 어르신들을 위한 축제 같은 자리였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 12㎏ 무게의 아코디언을 어깨에 멘 채 건반을 누르고 바람통을 밀고 당기며 한 시간여 서서 공연한 정 단장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항상 보는 분들에겐 마지막 공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연주합니다. 석 달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는데, 늘 뵙던 세 분이 안 보이네요.”
장기요양등급 3~6급의 어르신이 오전 9시에 와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는 이곳에선 건강이 더 나빠지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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