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의류기업 파타고니아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란 홍보 문구로 유명하다. 문구가 사람들 인상에 각인된 건 2011년 11월. 블랙프라이데이 시즌 모든 기업이 ‘이 물건을 사라’는 홍보로 세상을 도배할 때 파타고니아는 ‘이 물건을 사지 말라’고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환경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소비를 줄여야 하고, 기업은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더 적게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2022년은 파타고니아의 이런 경영철학이 정점을 찍은 해다.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업주는 “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라며 가족 소유의 회사 지분 100%(약 4조2천억원 상당)를 환경보호 목적의 비영리재단에 양도해 지속적으로 배당금이 환경단체에 흘러들어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한겨레21>은 제1511호에서 이런 파타고니아 경영철학을 한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회사원들이 만든 세계 최초의 ‘파타고니아스쿨’을 취재했다. 이 경영철학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어, 교장을 맡은 파타고니아 사내 철학자 ‘빈센트 스탠리 철학 이사’도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창업주 이본 쉬나드가 쓴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읽으면서, 왜 한국 회사원들이 이 먼 나라의 의류기업에 빠져들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선언’보다 ‘행동’이 앞선 기업이었다. 1957년 작은 대장간으로 시작해, 지구에 해를 덜 끼치는 방식으로 암벽등반 문화를 바꿨고, 목화농장 문화를 바꿨고, 기업 문화를 바꿨다. ‘사세 확장이나 단기적 수익창출보다 품질, 지속가능성, 자연환경을 우선한다’는 파타고니아의 설명은 이 기업이 이제껏 보여준 행동이 있었기에 빛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취재 직전 메모한 질문들은 이와 정반대였다. 특유의 ‘의심병’이 발동해서다. 가령 이런 것들. ‘어쨌든 영리기업인데 사지 말라는 마케팅으로 재킷을 더 사고 싶게 만드는 것 아닌가’ ‘이 문화를 여러 회사에 확산시킨다는데, 파타고니아가 유일무이했기에 브랜딩에 성공했지 모두 이러면 차별성이 있을까?’ ‘매출의 1%(지구세)를 기부해 환경단체들을 지원한다고 진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급기야 이런 생각까지 갔다. ‘선진국들은 실컷 저렴하고 멋진 옷 입으며 즐겨놓고 이제 와 ‘튼튼한 옷 하나로 오래 입자’고 전파한다면, 개발도상국 소비자들은 어떤 느낌일까?’
파타고니아스쿨 개강식 현장에 도착한 날 이런 ‘내면의 악플러’가 작성한 질문들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이본 쉬나드 창업주는 환경 붕괴가 목전에 있음에도 행동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상태를 ‘상상력 부재로 인한 집단적 마비 상태’로 진단했는데, 이날 스쿨에서 본 1기 회사원들은 ‘상상력이 남아 있는 어른들’이었다. 이들은 ‘뭐라도 해보자’고 애쓰고 있었다. 잘하던 국제협력 일을 그만두고 친환경 기업을 찾아가 기후붕괴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하는가 하면, 국내 최대 기업에서 바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기후붕괴 대응 청년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원도 있었다. 기후붕괴의 대가도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가닿을 수밖에 없는 시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을 고민하는 회사원도 있었다. ‘상상력의 부재 속에 의심만 할 줄 아는 기자’가 ‘상상력을 가지고 행동하려는 회사원들’을 직접 보니 앞의 그 모든 질문이 부끄러워졌다.
역시 의심스러울 땐 직접 봐야 한다. 빈센트 스탠리 이사가 이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되새긴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으로 직접 가고,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 것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