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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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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오르자, 광어횟값도 뛰었다

제주도 표선면 양어장에서 확인한 국제유가 상승이 광어회 생산과 소비에 미치는 영향
등록 2022-07-12 15:00 수정 2022-07-13 05:28
2022년 7월1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의 광어 양어장 ‘정우수산’에서 노동자들이 수조에 들어가 대형마트로 보낼 광어를 골라 흰 바구니에 담고 있다.

2022년 7월1일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의 광어 양어장 ‘정우수산’에서 노동자들이 수조에 들어가 대형마트로 보낼 광어를 골라 흰 바구니에 담고 있다.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포성이 울리면 제주도 광어가 먹는 사료의 양이 줄어든다. 뚱딴지같은 이야기지만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물가 상승이 우리가 즐기는 ‘생선회’의 생산과 소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주의 양어장부터 서울의 횟집까지 따라가봤다. 통계청이 2022년 7월5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외식 물가는 8% 올라 1992년 10월(8.8%)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생선회는 10.4% 올랐다.

사룟값·전기료·인건비·운송료 영향 받는 양어장

“제주 동쪽은 광어를 키우기에 최적지입니다. 물이 좋거든요.”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검은색 비닐하우스가 여러 곳 나온다. 농사짓는 곳인가 싶지만 광어가 자라는 곳이다.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광어를 납품하는 양어장들이다.

2022년 7월1일 제주 표선면에 있는 ‘행복한 광어’ 양어장을 찾았다. 오기수 ‘행복한 광어’ 대표는 양어장의 고가수조로 기자를 이끌었다. 고가수조엔 해안에서 300m 떨어진 바다와 양어장 지하 70m에서 끌어올린 물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해수와 지하해수를 섞은 짠물은 양어장 내 수조 60개의 물을 순환시킨 뒤 다시 바다로 빠져나간다. 하루 1만4400t의 물을 끌어올려야 하니 펌프 6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오기수 대표는 “광어가 안정적으로 자라는 여름철 수온은 21℃ 내외인데, 바닷물 온도는 27~28℃까지 올라가니 17~18℃로 온도가 일정한 지하해수를 섞어 온도를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펌프와 산소발생기 등을 가동하는 데만 한 달 2200만원의 전기료가 나간다.

오 대표는 이어 사료 작업장을 소개했다. 광어 사료를 만드는 기계 앞에 부산에서 온 냉동 고등어와 전갱이, 새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 외국인 노동자가 아직 얼어 있는 고등어 등을 기계에 집어넣자, 광어가 먹기에 적당한 크기로 갈린 갈색 사료가 빠져나왔다. 이 사료는 광어가 잘 먹는 시간대인 저녁때 한 수조당 50㎏씩 뿌려준다. 매일 쓰는 사료량만 3t이다.

광어 10만 마리가 있는 수조 구역은 바닷속 환경과 비슷하게 햇빛을 가려 어두컴컴했다. 40㎝ 정도 물이 찬 수조 하나 속에는 1.8㎏ 무게의 광어 1700마리가 바닥에 납작 붙어 있었다. 오 대표는 수조 사이를 걸으며 “광어를 키우는 비용이 전부 오르고 있다”고 했다. “사룟값은 2021년 킬로그램(㎏)당 700원대에서 2022년 900원대로 올랐다. 전기료도 오른다고 하더라. 인건비는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노동자 등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이미 올랐다. 기름값이 오르면서 사룟값과 운송료 등 안 오른 게 없다.”

오기수 ‘행복한 광어’ 대표(왼쪽)가 기자와 만나 광어 생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기수 ‘행복한 광어’ 대표(왼쪽)가 기자와 만나 광어 생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사건이 수천㎞ 떨어진 한국의 식탁 위 광어회 가격을 흔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등 세계 석유 공급망이 불안정해지자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국제 원유 가격(7월 싱가포르 시장 기준)은 휘발유가 배럴당 138.63달러로 2021년 같은 달(83.13달러)보다 66.7% 올랐고, 경유는 배럴당 164.53달러로 2021년 같은 달(79.9달러)보다 106% 올랐다.

면세유 가격 두 배 넘게 뛰자 어선들 출어 포기

양어장에서 대규모로 키우는 광어는 사실상 ‘석유’를 먹고 큰다. 사료의 원료가 되는 고등어와 전갱이, 청어, 깡치도, 매시간 갈아줘야 하는 수조의 물도 차질 없이 공급되기 위해선 석유와 전기 등 에너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석유를 넣은 운송수단으로 옮겨진 사료를 먹고, 전기 펌프를 통해 순환하는 물속에서 자라나는 광어를 대량 양식하면서, 광어는 부담 없이 먹는 ‘국민 횟감’ 생선이 됐다.

그런데 최근 석유 가격 상승은 이런 광어 생산 구조를 흔들고 있다. 생선을 잡으러 바다로 가야 할 대형 어선들은 2022년 기름값이 급등하자 출어를 포기하고 있다. 면세유 가격은 200ℓ 드럼당 12만3930원(2021년 7월)에서 29만4210원(2022년 7월)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어선들은 세금이 없는 면세유를 쓰는데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고기를 잡지 않는다. 그러면서 양식 사료로 쓰는 작은 물고기들도 공급되지 않았다.

김창유 제주어류양식수협 이사는 “정부가 그동안 어선 감축 사업도 했고, 이제는 유류가가 높아져 배가 나가면 손해라 출항을 안 하니 사료 공급이 줄었다”며 “광어 생산원가는 사료 단가가 좌우하는데 사룟값이 올라 고민”이라고 했다. 수입 사료도 공급망 위기로 환율이 오르면서 ㎏당 600원대에서 800원대로 올랐다. 광어 생산 단가는 양식장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당 1만~1만1천원에서 1만2천∼1만3천원으로 오르고 있다.

이날 ‘행복한 광어’ 근처 ‘정우수산’ 양어장에 5t 트럭이 들어왔다. 동티모르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3명과 한국인 노동자 3명이 수조 안으로 들어가 납작한 뜰채로 광어를 건져 흰 바구니에 담았다. 1.8~2㎏짜리 광어를 10마리씩 바구니에 넣은 뒤 수조 밖으로 들어 올려 저울에 달았다. “20” “20” “20” 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도, 한국인 노동자도 “이십(20)”을 외치며 바구니를 트럭 위 기사에게 전했다. 트럭 기사는 전달받은 광어 무게가 250㎏ 정도가 될 때까지 트럭에 있는 수조 하나에 광어를 넣었다. 이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도 코로나19 이후 국내 입국이 제한돼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월 240만원까지 올랐다.

오 대표는 전날 광어를 육지로 실어 나르는 일을 맡은 지입차 쪽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했다. “‘가격을 좀 올려야 해서 대표님 한번 뵙고 싶다’고 말하더라.” 500㎏짜리 수조를 10개 실은 5t 트럭은 제주항에서 배를 타고 뭍으로 간다. 트럭은 충남 천안과 경기도 하남 등의 계류장에 광어를 내린 뒤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이 트럭들이 경유 가격과 배 운임이 올라 못 버티겠다고 한 것이다. 국내 경유 가격은 2022년 1월 평균 ℓ당 1453.53원에서 6월 2089.03원으로 올랐다.

몇백원 차이가 횟집에서 1만원 단위로

이 업체는 광어를 대형마트로 바로 보내기 때문에 유통구조가 단순하지만 횟집에서 먹는 광어의 유통구조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횟집에서 조리하는 광어는 산지 중도매인-도매업자-중개상(속칭 ‘나카마’)-횟집·일식집으로 유통되는 과정을 따른다.

제주에서 7월1일 만난 방만식 제주산활어유통연합회장은 7월부터 양어장 광어를 받아 도매업자에게 넘겨줄 때 붙이는 물류비를 ㎏당 1천원에서 1200원으로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주산 광어는 트럭에 실려 배를 타고 목포항·여수항·녹동항에 도착한 뒤 전국 곳곳으로 운송된다. 방만식 회장은 “어떻게든 물류비를 올리지 않으려고 트럭 수조를 8개에서 10개로 늘리는 등 노력했지만 이제는 차량 유지비에 배 운임까지 올라서 물류비를 안 올리면 우리가 파산할 지경”이라고 했다. 제주는 2021년 국내 광어 출하량(3만6031t)의 63.7%를 차지하는 주산지다.

광어를 산 채로 운송하기 위해 물도 싣는 수산물 물류 특성상 기름값 상승의 부담은 산지 중도매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도매업자와 중개상 역시 활어차를 가지고 횟집 등에 운송하기 때문이다. 방만식 회장은 “저희는 몇백원 차이에 그치겠지만 마지막에 광어를 받는 횟집에서 가격을 고민할 때는 1만원 단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멈춘 뒤 소비가 회복되길 기다리는 자영업자에게 물가 상승은 날벼락이다. 날치알은 한 통에 1만1천원에서 1만7천원까지 올랐다.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는 “러시아하고 날치알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날치알 등 러시아산뿐만 아니라 광어 등 모든 수산물 가격의 오름세는 횟집 경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씨는 “광어가 보통 여름에 값이 오르긴 하는데 올해는 너무 올랐다. 지난겨울 1㎏에 1만8천원 하던 광어가 이제 2만8천원”이라고 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나고는 광어뿐만 아니라 풀때기까지 값이 전부 올랐다”고 했다. 버티다 못한 그는 회덮밥 가격은 8천원에서 1만원으로, 연어초밥 가격은 1만5천원에서 1만8천원으로 올렸다.

서울 마포구의 또 다른 횟집 사장은 “생선값이 올랐다고 바로 음식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가 부담을 느끼니까 회를 몇 점 줄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가져가는 이익을 줄여도 임대료나 인건비 상승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광어 가격은 그동안 생산원가보다 공급과 수요에 따라 결정됐다. 광어 가격은 2019년 ㎏당 8천원대까지 떨어졌다. 생산량은 급증했는데 연어 등 수입 대체재가 늘면서 수요가 분산된 탓이었다. 반대로 2021년엔 2019년 가격 폭락 이후 줄어든 광어 생산량과 재난지원금 지급, 소비 수요 증가가 겹치며 ㎏당 1만6천원대까지 오르기도 했다.(표 참조)

이 밖에 생선 가격이 지속해서 오르는 이른바 ‘피시플레이션’도 기후위기로 바닷속 물고기가 줄거나, 중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며 생선 수요가 급증해 유발됐다. 하지만 석유 등 세계 공급망 불안은 이제 제주 양어장 업계에 닥친 새로운 고민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 미국-중국 경쟁, 코로나19 대유행 등 제주와 멀었던 세계의 변화는 제주와 가까운 일이 됐다.

피시플레이션에 더해진 공급망 불안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는 2022년 6월 자료를 통해 “5월

광어 도매가격은 전월 대비 1.6% 상승한 ㎏당 1만5656원이었다”면서 “이는 제주산 산지 가격이 상승했고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인해 (수요가 늘어) 도매가격이 강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오기수 대표는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가 쓸 돈이 줄어 광어 같은 기호식품 소비는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냐”고 물었다. 오동훈 제주어류양식수협 상임이사는 “양어장들이 생산원가 가운데 인건비라도 아끼려고 가족이 들어와 일하는 곳이 많아졌다. 기름값이 이렇게 오르면 그동안 이익 내던 곳까지 힘들어진다. 그러면 식량산업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글 이완 기자 wani@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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