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각오로 다시 한번 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는 건 좋은 일이다. 희망과 걱정이 교차한다면, 희망은 키우고 걱정은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보면 될 일이다. 비관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니까, 소매 걷고 한번 해보는 거다.
정초부터 화급한 일은 경제의 먹구름을 걷어내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좋지 않았다. 지난해 초, 세계경제 성장에 대해 낙관적 전망이 강했지만, 이후 실망의 연속이었다. 분기마다 조금씩 하향 조정했다. 조금 있으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양치기 소년’ 같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인간이 자신의 실수에 부여한 이름이 곧 ‘경험’이라고 한 오스카 와일드가 21세기에 살았다면, ‘경험’ 대신 ‘경제예측’이라는 전문용어로 대체했을지도 모르겠다.
‘경제예측’이라는 양치기 소년
지난해 후반기에는 2015년부터 좋아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터널이란 끝이 있기 마련인 법. 를 비롯한 몇몇 경제지는 정초부터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무엇보다도 유가 하락을 고무적인 뉴스로 꼽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가 하락만으로 세계 총생산이 적게는 0.3%, 많게는 0.7% 더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0.1% 성장이 아쉬운 마당에, 이 정도면 ‘대박’이라 할 수 있다. 미국 경제 사정이 완연히 좋아진 것도 한몫했다. 얼마 전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적극적인 통화재정 정책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한때 ‘족보 없는’ 정책이라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아베노믹스가 이젠 ‘돌아온 탕아’가 되어 장자 노릇을 할 모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우선 유가 하락이 모두에게 환영할 만할 일은 아니다. 공급 요인보다는 수요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경제가 좋지 않아 석유 수요가 줄어든 탓이 크다. 또 석유 수출이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나라들은 위기다. 중동 국가만이 아니다. 러시아도 있고, 무엇보다도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나이지리아는 국가 수입의 70% 이상을 석유 수출에 의존한다. 그간 고유가를 통해 벌어들인 천문적학 수입이 지금은 흔적조차 없으니, 유가 하락에 대처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유럽은 아슬아슬하다. 몇 년 전, 위기는 곧 기회라면서 호기를 부리던 때와는 완연히 다르다. 얼마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그간 말만 무성했던 걱정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다들 쉬쉬하면서도 알고 있는 얘기를 했을 뿐인데, 통화시장은 휘청했다.
그 와중에 유럽 위기의 핵심인 그리스는 정치적 격변기를 맞고 있다. 위기 극복 조치로 실행된 재정긴축 정책과 구조개혁 정책으로 서민들의 삶이 형편없이 피폐해졌다. 위기 극복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원론적인 말로 넘기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빈곤과 실업은 늘고 자살률도 늘었다. 경제 지원의 조건으로 이런 정책들을 밀어붙인 유럽연합(EU)과 국제 금융기관에 대한 울분이 커졌고, 그 결과는 좌파 정당 시리자(Syriza)의 급부상이었다.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이 정당은 긴축정책의 종결뿐만 아니라 유로 탈퇴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런 ‘좌향좌’ 분위기에 언론마저도 동정적이다. 도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스페인에서도 유사한 정치적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는 극우익 정당들이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러다가 유럽은 극좌와 극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모범생’이다. 하지만 이것도 상대평가를 했을 때 그렇다. 경제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벌써 6년 이상 어려운 마당에,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계속 예전처럼 성장하길 바랄 수는 없다. 몇 년 전부터 내수 중심의 성장 모델로 전환하고 있지만, 이 또한 버거워 보인다.
나아지지 않는 고용·임금 사정중국과 유럽, 그리고 기타 주요 개발도상국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미국 경제를 마냥 낙관하기 힘들다.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소 곤혹스러운 주장도 나온다. 빌 클리턴 정부에서 경제정책의 핵심을 맡았던 래리 서머스는 미국이 저유가 시대를 맞이해 산유국로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해 세계경제의 엔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다. 물론 일리가 전혀 없는 주장은 아닐 테지만, 그의 답답한 마음이 먼저 읽혔다.
고용 사정도 어렵다. 2007년 시작된 경기대침체(Great Recession)로 인한 고용 손실은 막대하다. 만일 경제위기가 없이 세계경제가 순항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세계 고용량과 실제 고용량을 비교해보면, 2014년 현재 그 차이가 무려 6천만 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고용 손실 규모는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IMF의 다소 낙관적인 경제 전망에 기초해서 계산해보면, 향후 5년간 고용 손실은 8천만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를 찾아도 ‘만사형통’은 아니다. 임금 증가율은 계속 낮다. 2013년 전세계적으로 실질임금은 2% 상승했는데, 그마나 중국을 제외하면 1.1%에 불과하다. 경제위기 이후 사실상 ‘임금 동결’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경제가 좋지 않으니 임금이 오르기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경제 탓만 하기 힘들다. 임금 상승이 노동생산성 증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낙제해 열등반에 편입된 지 7년이 넘었지만,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우등반으로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 경제학자들의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연일 야유다. 그는 소득 불평등이 드디어 핵심적 정책 사안으로 떠오르는 것을 반기면서도,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정치력의 부재를 한탄한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포함해 이른바 기성 ‘좌파’ 정당을 싸잡아 정치적 무능력자로 비난한다. ‘절망의 계곡’은 깊어지고 이 때문에 극우 정당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인다.
동시에 반대 진영의 공격도 거칠어졌다. 토마 피케티의 저작에 힘입어 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넓어지자, 거시경제학 교과서의 수호자인 그레고리 맨큐는 며칠 전 전미경제학회에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하면서 따졌다. 피케티를 부자를 혐오하는 자로 몰아붙이고, 불평등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개입할 사안은 아니며, 다만 누진 소비세 정도는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피케티도 점잖지만 날카롭게 반응했다. 부자에게 소비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물론 억만장자의 소비에 대해 우리가 좀 알고 있긴 하다. 하지만 측정하기가 힘들다. 어떤 억만장자는 정치인을 사고, 어떤 이는 언론인을 사고, 그리고 다른 어떤 이는 교수들을 산다.” 최근에 그도 꽤 거칠어졌다.
캘리포니아대학의 브래드퍼드 드롱은 한탄한다. 경제위기 초반에는 그래도 희망적이었다고 회고한다. 왜냐하면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길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택한 길은 그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케인스 정책은 세계대공황이 시작된 지 4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도입된다. 그마나 케인스의 조국인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실험된다. 영국과 유럽에서는 ‘허리띠 졸라매기’ 정책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런 주류적 사고는 케인스에게도 난공불락이었다. 1933년에 비로소 국제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세계경제회의(World Economic Conference)가 열리지만, 차이점만 확인했을 뿐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과 으로 유명한 허버트 웰스는 이 회의의 실패를 보고서 희망을 접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쟁과 독재가 반복될 미래를 전망하는 소설 (The Shape of Things to Come)을 썼다. 그해에 히틀러는 독일을 완전히 장악한다. 유럽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통념에 대한 도전에서 시작된 새로운 길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그해에 정권을 잡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긴축정책을 버리고 완전고용을 위한 적극적인 공공지출 정책을 펼쳤다. 가능하면 정부가 직접 고용하고, 집을 잃을 위험에 빠진 서민에게 대출해주고, 그리고 동시에 기업 독점을 방지할 정책을 줄줄이 도입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조치였고, 기성 경제학자들은 온통 반대였다. 루스벨트는 젊은 경제학자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중 하나가 (Affluent Society)로 유명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다. 1958년에 저술한 이 저작에서 당시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조건적 거부감을 보이던 경제학계의 ‘통념’(conventional wisdom)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그 이후 ‘통념’이라는 용어가 널리 회자된다.
이런 젊은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루스벨트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32년, 한 대학의 신입생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거기서 그의 참모들조차도 ‘정치적 어리석음’이라고 모질게 몰아붙였던 폭탄 발언을 한다. 우선 당시의 경제 사정을 요약하면서, 세계대공황은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원도 많고 기계도 많은 풍요의 시대에 대량실업과 빈곤에 빠진 역설적 상황이라 했다. 이에 루스벨트는 경제학자들이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법칙으로 보면서 대공황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회복될 것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는 곧 우리더러 뒷짐 지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다름없다고 따진다. 이른바 경제학적 통념에 도전한 것이다. 곧이어 그의 진단을 내놓는다.
“아니다. 자본이 부족해서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다. 문제는 생산에 대해 과잉투자하면서도 구매력은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많은 산업에서 임금이 오른 건 사실이지만, 자본에 대한 보상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자본축적은 엄청나게 풍부해져서 은행들은 이 자본을 국내와 국외로 빌려주기 위해 경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법도 동원되었다. 나는 경제학적 사고의 근본적인 전환이 바로 우리의 문턱에 와 있다고 믿으며… 국민소득이 보다 현명하고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이 오래 버티기도 힘들 것이다.”
곧이어 문제적 발언이 이어진다. “이 나라는 지금… 대담하고 항구적인 실험(experimentation)을 요구한다. 방법을 찾고 시도해보는 것은 상식이다. 실패한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것이든 시도해보아야 한다. 곤궁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언제까지 조용히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린 열정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편한 사실조차도 용감하게 마주할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젊은이의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개조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정책 ‘실험’이라는 언급은 표를 깎아먹을 뿐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루스벨트는 이듬해 대통령이 된다. 그는 약속대로 대규모 ‘실험’에 착수했다.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젊은 경제학자들이 그 임무를 기꺼이 떠맡았다. 그들이 바로 뉴딜 경제학자들이다.
지켜내야 할 작은 희망의 싹2015년 새해에 비관의 소리가 높다. 할 만큼 했는데 소용없다는 무기력증도 있다. 나쁜 징조는 이미 도처에서 보이고 ‘절망의 계곡’은 깊다. 하지만 지금은 자그마한 희망의 싹이라도 지켜내야 할 때다. 소매를 걷고 두려움 없이 실험을 해볼 때다. 그러려면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열려야 한다. 시간이 우리를 구원해 주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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