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카카오톡 열혈 이용자다. 그래서 더욱 카카오가 못마땅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추어처럼.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당혹스러웠다. 왜 우리는 카카오란 단단한 벽을 뚫고 불신과 감시의 심장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왜 카카오는 저기서 비난의 노도를 저 혼자 온몸으로 맞고 있을까. 오지랖도 풍년일세.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논란의 발화점은 저곳이었다. 대통령은 국민 대표자고, 국민은 국민 대표자를 나무라고, 국민 대표자는 국민을 협박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국민이 국민을 모독한다며 국민을 나무라는 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알쏭달쏭한 상황. 짐은 국가요, 내 말은 곧 진리이니. 오직 믿으라, 떠들면 다친다. 맙소사!
문제는 정부 수반의 공개적 엄포와 수사기관의 ‘선제적 대응’이다. 명예훼손 당사자의 고소가 없이도 수사기관이 알아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문제 소지가 있는 발언을 걸러내고 수사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요상한 거름망에 걸리는 불순물이란 뻔하다. 결국은 요리사 입맛에 맞는 재료는 통과하고, 눈엣가시만 걸러내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닥치고 있으라’는 경고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우리 뇌리에 공포를 각인시킨다. 국가 지도자를 ‘독사과를 든 백설공주’로 묘사하는 자유 따윈 사치다. 국가적 재난 사고 당일 대통령 행적에 의문을 제기한 (기사를 받아쓴) 외신도 엄포와 경고의 칼날을 피하진 못한다. “내 카톡 좀 그만 뒤져”라던 앙증맞은 항의 대자보도 슬그머니 ‘셀프 검열’됐다. 카톡 검열과 더불어 우리는 비판하고 풍자할 여유마저 털렸다. 빼앗긴 인터넷 들에도 봄은 올까?
궁금하다. 내 카톡 대화가 털릴까봐 불안해서 우리는 ‘사이버 망명’길에 오르는 걸까? 텔레그램은 정말 ‘선제적 대응’으로부터 안전한 피난처일까? 오히려 틈만 나면 재갈을 물리지 못해 안달하는 정부의 고압적 태도에 대한 시위 행동에 가까울 게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아무리 강력한 보안 자물쇠를 채운들 무슨 소용이랴. 시스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아무리 철통 방어선이라 해도 뚫리는 건 시간문제다. 도시락 폭탄 대신, 화염병 대신 ‘텔레그램 임시정부’를 선택한 저항군의 심정을 정부는 왜 헤아리지 않는 걸까.
되돌아보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비유하기도 무참하지만, 세월호도 그랬다. 선장은 배가 45도 이상 기울어졌는데도 ‘가만히 있으라’며 제 몸 건사하기에 바빴다. 언론도, 여론도 줄행랑친 선장과 낡은 배를 무리하게 운항시킨 선주를 토끼몰이하느라 정신없었다. 정작 칼끝이 겨눠야 할 곳은 다른 곳이었는데….
지금은 감시와 검열의 공포를 국민에게 각인시켜야 할 카카오톡이 되레 공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모습이다. 카카오톡 장막 뒤에 도사린 음습한 통치 관행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를 조타실에서 떼어내지 않는 한, 무책임한 선장은 언제든 우리를 버릴 것이다. 그 선장 이름이 카카오톡인지 밴드인지는 중요치 않다.
망망대해에서 배가 조난당하면 가장 먼저 바퀴벌레와 쥐가 배를 버린다. 배를 지키던 사람들에게 선택지란 많지 않다. 구조를 기다리거나 탈출을 도모하거나. 둘 다 실패하면 도리 없다. 배와 함께 천천히 가라앉을 수밖에. 그렇게 우리는 2014년 4월, 300송이 붉디붉은 꽃을 진도 앞바다에 뿌렸다.
물어보자. 2014년 10월, 침몰하는 ‘표현의 자유’호를 버리고 제 살길을 찾는 쥐와 바퀴벌레는 누구인가?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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