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경제학’이라는 야유가 있다. 경제학에 오랫동안 드리운 그림자다. 당사자는 늘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해왔으나, 의심의 눈초리는 좀처럼 거둬지지 않는다. 남자들에게 억지스럽게 들릴 수 있겠으나, 이제껏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여성은 엘리너 오스트롬, 단 한 명이다. 그녀도 엄밀히 따지면 정치학에서 시작했으니 순혈통 경제학자는 아니다. 또한 얼마 전 경제학계의 새로운 ‘록스타’ 토마 피케티의 한국 강연에 각계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진풍경이 연출됐을 때, 패널 토론으로 나선 경제학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이러한 ‘사소함’에는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가 오기 전에 열린 궐기대회 같은 세미나에서 남성 경제학자들은 “71년 아들뻘 학자가 내놓은 논리”라며 비분강개했다. 그런 남성들이 내뱉는 경제적 가르침도 근육질이다. 다 그렇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경제학이 늘 주장하는 것처럼, 문제는 ‘확률적 확실성’이다.
정교수가 되는 데 무려 30년의 시간이
애초에 잘못이 있었다. 넘치는 객기를 글로 쏟아냈던 버나드 쇼는 “경제란 삶에서 최대한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 정의했다. 한발 더 나아가 “경제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덕의 기초”라고 단언했다. 듣기에 따라서, 이 말인즉슨 경제가 물건을 만들고 돈을 주고받는 “쫀쫀하고” 협애한 영역을 넘어 삶의 모든 일상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뜻이 되겠다. 이렇게 해석한 사람이 올해 초에 타계한 게리 베커다. 199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경제학적 비용편익분석을 ‘비경제적’ 분야에 포괄적으로 적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범죄·가족·결혼·인종차별 같은 일상의 문제가 숫자와 경제합리성의 바깥에 있다는 통념을 깨고, 베커는 이를 경제학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세상에 경제학적이지 않은 게 없고, 경제학자들의 손을 피할 곳은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혼에도 경제학이 있다. 결혼이란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신비의 약과 같은 사랑의 문제만은 아니다. 베커에 따르면, 우리의 사랑과 결혼은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 하는 이상으로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다. 여성이 전업주부가 되는 까닭은, 남성이 밖에 나가서 돈을 더 많이 벌어올 가능성과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여성은 집안일에 더 능하고 관련 지식이 많기 때문에, 부부의 전체적인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는 전업주부가 되는 게 유리하다. 따라서 남녀 간 노동시장 참여도의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 경제적 합리성의 소산이다. 결혼은 남녀 간의 (물론 동성 간 결혼도 있다) 육체적 결합을 통한 집단적 효용극대화 전략이다. 이런 ‘냉정한’ 분석에 입각해서 베커는 ‘남성이 지배적인 업종에 여성이 나가서 어찌어찌해보겠다는 것은 일종의 승산 없는 일탈(deviant) 행위’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 말은 두고두고 분란거리가 된다. 그가 말하는 ‘일탈’이란 가치판단적인 게 아니라 통계적 의미로 사용됐다고 본인이 나서서 항변했고, 사실 그로서도 좀 억울한 일이긴 했다. 여하튼 그런 통계적 ‘일탈’은 경제학에도 적용된다.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다.
조앤 로빈슨(1903∼83)이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낳은 탁월한, 그리고 최초의 여성 경제학자였다. 그녀의 학문적 공적은 무궁무진했으나 그에 걸맞은 명성을 누리진 못했다. 20대 초반부터 모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으나 정교수가 되는 데 무려 30년의 시간이 걸렸다. 외골수이자 돌직구를 서슴지 않는 성격 탓에 주위에서 어려워한 탓도 있다. 한때 영국 계량경제학회의 부회장이 돼달라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았으나, 자신이 이해할 수도 없는 학술지를 내는 학회의 임원이 될 순 없다고 거절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까칠했다.
“경제학자에게 속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그녀는 모든 것과 불화했다. 여성 경제학자라는 사실 자체가 남성 지배적인 경제학과의 불화를 의미한데다, 그녀의 경제학적 지향에도 불화와 불온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시장주의적 경제학과도, 그리고 교조적 마르크스 경제학과도 화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는 비참함은 착취되지 않는 것(즉, 실업)의 비참함에 비할 데 없다”고 공박하는 바람에 스탈린주의자들의 인신공격성 비난을 받았다. 동시에 “역사적 현실을 고려한다면, 자유시장이 후생을 극대화하고 사회정의를 보장하는 이상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시장주의자를 쏘아붙였다. 그녀에게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유란 “이미 만들어진 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불화는 전면적이고 다층적이었다. 기성 경제학계의 여성 차별과, 그들의 가르침과의 불화. 그만큼 그녀의 삶은 외롭고 거칠었다. 하지만 “생각은 곧 물질적 힘”이라 믿었던 그녀는 그러한 ‘물질적’ 생각과 평생을 싸웠다.
‘수요독점’(Monopsony)이라는 말이 있다. 로빈슨이 창안한 개념이다. 그녀는 시장에서 구매자와 판매자가 동등한 입장에 있다는 일반적 가정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통신 독점기업 같은 공급독점은 익히 알려졌지만, 구매자가 독점적 지위에 있을 수도 있다. 로빈슨은 노동시장이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노동’을 판매하는 시장은 일반 상품시장과는 다르고, 일자리가 없어서 ‘착취당하지 못할’ 위험이 상존한 상황이라면 노동자의 처지는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런 경우라면 기업이 임금 결정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고, 기업이 이를 십분 활용할 경우 노동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한계노동생산성보다 낮은 수준에서 임금이 결정된다. 또한 생산성이 똑같은 노동자인데도 만만한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기도 한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도 그렇게 해서 생기기 쉽다. 로빈슨은 ‘격차’라는 중립적인 용어로 에둘러 가지 않고 이를 ‘차별’이라 했다. 남성 노동자는 모두 노조원이고 여성 노동자는 그렇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로빈슨이 수식과 도표를 만들어 정성스럽게 설명한 ‘차별의 세상’이다. 게리 베커는 여기서 ‘합리성’을 발견했고, 그보다 약 40년 전에 로빈슨은 똑같은 곳에서 ‘차별’을 본 것이다.
이제 경제학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경제학회에 따르면, 현재 경제학 박사학위 수여자 중 약 35%가 여성이다. 그 수가 늘어난 만큼 경제학에서 여성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 승진도 되고 스타급 대우를 받는 여성 경제학자도 늘었다. 최상까지 오르는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여전히 암초투성이다. 남성 프리미엄이 여전하고, 여성 경제학자들은 몇몇 분야에 몰려 있다. 그런 면에서 경제학은 여전히 ‘남성적’이다. 경제학의 진정한 균형성을 위해서는 경제학의 ‘여성성’이 필요하다. 남녀 간의 물리적 균형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경제학적 견해의 균형을 위해서도 남녀 균형이 필요하다. 경제학에서 남녀 균형은 기실 사회학적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 자체의 문제다.
‘독재자 게임’이란 게 있다. 두 사람을 한 팀으로 만든 뒤 그중 한 명에게 돈을 준다. 돈을 받은 사람은 본인이 주고 싶은 액수만큼 상대방에게 준다. 안 줘도 그만이다. 돈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결정해서 독재자 게임이라 부른다. 경제적 합리성의 잣대로 보면 ‘독재자’가 상대방에게 한 푼이라도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의 ‘다정다감한’ 인간은 그러질 못한다. 약소하나마 조금 주려고 한다. 또한 이 게임을 해보면 남녀 격차가 무시 못할 만큼 크다. 최근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10달러를 주면 여자는 1달러61센트를 상대에게 주는데, 남자는 82센트만 준다. 두 배 정도 차이가 났다.
불편한 진실, 여성에 의한 여성 차별‘최후통첩 게임’이라는 것도 있다. 독재자 게임과 유사하지만, 독재자가 돈을 주면 상대가 받을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상대가 거부하면, 어느 누구도 돈을 받지 못한다. 물론 거부하기 싶진 않다. 수지타산을 따지자면, 거부할 경우 한 푼도 받지 못하니, 저쪽에서 조금이라도 주면 수용하는 게 이득이다. 그러나 정의감을 앞세우는 사람이라면 달라진다. 정의의 이름으로 부당한 제안을 거부할 것이다. 그 결과가 설령 가시밭길이라도 말이다. 따라서 경제학적 합리성에 따르자면 0에 가까운 푼돈을 제안할 것이고, 사회적 정의를 따르자면 반반씩 나누려 하겠다. 실제 실험을 해보면, 정의감이 꽤 중요하다. 여기서도 남녀 차이가 적지 않다. 10달러를 두고 한 실험 결과는 이랬다. 남자는 상대가 남자일 경우 약 4달러7센트를 제안했는데, 여성에게는 4달러4센트를 제안했다. 여성에게 차별했다는 얘기다. 여성의 경우는 좀더 관대했다. 상대가 남성일 때는 반이 넘는 5.1달러를 제안했다. 하지만 상대가 여성인 경우는 4.3달러에 불과했다. 여성에 의한 여성 차별도 만만치 않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가 더러 겪는 일상이기도 하다.
이렇듯 남녀가 다르다면, 남녀의 경제학도 다르겠다. 하지만 정교하게 짜인 교과서를 통해 마치 ‘빵틀에서 빵을 찍어내는 것’이 경제학 교육 아닌가. 이 문제를 앤 메이가 이끈 연구그룹이 살펴보았다. 미국경제학협회 회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우선 경제학의 핵심적인 방법론에 대한 견해가 갈렸다. 인간이 합리적 효용극대화론자이고 수학적 모델이 중요하며 국내총생산(GDP)이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쓸 만한 지표라는 핵심적인 전제에 대해 여성 경제학자들은 남성보다 더 부정적이었다. 여성 경제학자라면 조앤 로빈슨에 찬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차이는 구체적인 정책 문제에서 더 분명해졌다. 시장의 해법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배분 방식이라는 것에 남성 경제학자 88.5%가 동의했지만, 여성 경제학자들의 경우 79.7%였다. 당연하게도,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성 경제학자들이 더 긍정적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월마트가 사회 전체에 비용보다 더 큰 편익을 가져온다”는 주장에 남성 경제학자 80%가 찬성했지만, 여성의 경우는 50%에 불과했다. 소득분배와 누진과세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남녀 경제학자들 간에는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도 전혀 달랐다. 최저임금이 비숙련 노동자의 실업률을 높인다는 사고는 지극히 ‘남성적’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여성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남녀 차별에 관한 문제에서는 의견이 완전히 갈라졌다. 예컨대 남녀 임금 격차가 교육 정도나 직업 선택 등과 같은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요인들에 의해 설명된다는 주장에 남성 경제학자 55% 정도가 동의했는데, 여성 경제학자들은 한마디로 어림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15%만이 동의했다. 고용 기회의 평등에서도 전혀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이런 차이는 경제학 교육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났다. 경제학 교육이 남성 편향적이라는 점에 여성 경제학자의 과반수가 찬성했지만, 남성 경제학자들은 이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생각했다. 15% 남짓의 남성 경제학자가 여성의 불만에 동감을 표했다.
유럽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최근 이 연구그룹이 동일한 설문기법을 이용해 유럽 경제학자들을 조사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럽 경제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미국 경제학자들보다 시장과 정부 개입의 균형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말하자면, 유럽의 평균적 경제학자는 미국의 남성 경제학자보다 여성 경제학자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유럽 내부에서 남녀 경제학자의 차이는 컸다. 미국에서 발견된 남녀 차이가 유럽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경제학과 불화하는 시대바야흐로 경제학과 불화하는 시대다. 경제는 어렵지만, 경제학은,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이 모든 것이 오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그래서 말이다. 좀더 공평하고 안정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세상을 원한다면, 여성 경제학자가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경제학이 좀더 ‘여성화’해야겠다. 조앤 로빈슨은 이라는 책을 낸 지 30년이 지난 1969년에 수정판을 냈다. 그녀는 수정판 서문에 ‘시장 제일주의’ 관념이 그동안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을 한탄하면서 향후 40년을 기대했다. 이미 4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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