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모르는 자는 과거를 반복한다고 했다. 18세기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가 한 말이라 한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말인데, 또 어찌 보면 한참 틀렸다 싶다. 과거가 어떠했든, 또 그걸 알든 모르든 간에 과거는 반복된다고 해야 했다. 요즘 경제 사정이나 세상일을 보며 답답해질 때마다 문득 떠오르곤 하는 생각이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의 기치 아래 전례없는 토목공사만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대대적인 정책 조치도 취했다. 1937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시간 규제, 아동노동 철폐, 노조결성권 등을 도입했다. 최저임금을 도입한 이도 루스벨트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처음 최저임금이 도입된 지 50여 년이 된 때였으니, 미국은 ‘지각생’ 신세였다. 하지만 덕분에 미국 노동시장은 오랜 방임주의 ‘방황’을 끝내고 명실상부한 노동법의 기본 골격이 갖추어져서 제법 모범생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찌됐든 반복되는 과거
하지만 루스벨트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최저임금으로 소득 최저선을 구성하는 것은 당연지사고, 아랫선이 그려졌으니 윗선도 그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최악에 달한 소득불평등을 염려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고조돼가던 1942년, 루스벨트는 ‘소득상한제’를 도입하려 한다. 당시 소득 2만5천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100만달러)를 소득 상한선으로 설정하고 그 이상의 소득분은 100% 과세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불평등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당시 더 정치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던 ‘전쟁에 대한 기여’와 ‘국가에 대한 봉사’를 주요 이유로 삼았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전쟁을 하고 있는 국가 총력전에서 고액 소득자가 마땅히 더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으나 의회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살벌한 논쟁이 의회에서 벌어졌고 사실상 루스벨트의 원안은 거부됐다. 다행히 국민적 지지가 높고 소득불평등 해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정치권에 제법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의회는 공방 끝에 88% 최고세율이라는 타협안을 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천신만고 끝에 이 법안은 통과된다. 루스벨트가 생각했던 엄격한 의미의 최고소득제(소득상한제)는 아니지만 20만달러는 ‘실질적’ 소득 상한이 되었다. 이때부터 미국의 소득분배도 개선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과거는 반복한다. 소득분배 개선이 눈에 띌 정도로 뚜렷해지고 경제도 제법 성장하게 되니 정책적 긴장이 자연스레 떨어졌다. 상황이 좋아졌으니, 부자를 야박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본격적인 로비도 생겨났다. 그 결과 90%에 육박했던 최고세율은 1960년대 후반 들어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금 삭감을 공언한 레이거노믹스의 1980년대부터 최고세율은 30∼40% 수준으로 반토막이 난다. 그리하여 세계 대공황 직전인 1920년대 수준의 세율로 돌아갔다. 소득분배는 급속도로 악화돼, 급기야 최상위 소득 1% 집단이 차지하는 소득비율도 1920년대 말 대공황 직전의 수준으로 치솟았다. 역사는 다시 반복돼 경기 대후퇴(Great Recession)라는 세계경제 위기가 뒤따랐다.
이렇게 보면 세계경제는 크게 한 바퀴 돌아와 원점에 서 있는 듯하다. 미국은 뉴딜 시대처럼 최저임금 문제로 시끌벅적한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은 루스벨트처럼 완강하다. 행여 과거가 다시 반복된다면, 이제 임금·소득 상한제를 다시 불러내야 할 때일까?
임금상한제를 불러내는 아주 단순한 논리에서 시작해보는 게 좋겠다. 최저임금이 있는데 ‘최고임금’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다소 즉자적인 주장이다. 최저임금의 반대말은 최고임금이니, 임금상한제에 대해서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비아냥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최저임금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최저임금을 통한 소득 최저선 구축 노력은 꽤 일반적이고 강화되는 추세다. 이렇게 바닥은 그럭저럭 잘 다지고 있으니, 제대로 된 집이 나오려면 지붕도 손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고삐 풀린 고액 연봉, 비효율의 이유
게다가 최상층의 연봉이 과도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대기업의 임원과 금융권 직원들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얼마 전 발표된 영국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영국의 평균 연봉은 4배 정도 늘어났지만, 100대 상장기업의 CEO 연봉은 40배 정도 치솟았다. 그 결과 1980년에는 CEO 연봉이 평균연봉의 18배였는데, 지금은 160배를 간단히 넘는다. 미국에선 연봉 격차가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살림살이를 조금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이 엄청난 연봉 격차를 줄이기는 난망하다. 과도한 고액 연봉을 규제하지 않는 한 소득 격차 축소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도 그리 낯선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 녹색당 후보였던 젤로 비아프라는 ‘최고임금제’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고, 최근에도 100% 가까운 최고세율을 도입해서 최고 연봉을 규제하자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은 임금을 ‘인위적’으로 규제한다는 점에서만 같을 뿐, 그 논리와 방식은 서로 다르다. 최저임금이 광범위하게 수용된다고 해서 최대임금의 정당성이 곧바로 확보되지는 않는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에게 먹고살 수 있는 기본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힘도 약하고 노조에 의지하기도 힘든데, 이런 협상력 열위를 이용해 기업이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주는 걸 막자는 취지다. 생계 보장과 부당한 착취 방지가 핵심이다. 물론 이런 대전제에서 최저임금을 실제 어느 수준으로 정해야 하느냐가 논란의 대상이다.
최고임금 규제의 논리는 다르다. 우선 도덕적 차원에서, 또는 사회적 통합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핵심적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경제적 논거가 필요하다. 그간 경제학계에서는 연봉 격차 확대의 경제적 효율성을 입증하려는 이론적·실증적 연구가 쏟아져나왔다. ‘연봉 몰아주기’가 기업의 수익성과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많았다. 이런 연구는 본의 아니게 고액 연봉에 날개를 달아줬다. 따라서 날개를 떼내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근 회의론의 목소리가 높다. 능력 있고 부지런한 직원에게 특급대우를 해줌으로써 해당 직원의 사기를 진작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자극을 주니 ‘연봉 몰아주기’가 기업의 성과를 개선한다는 주장은 과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도의 문제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이런 생산성 효과는 없어지기 마련이다. 역으로 자포자기하는 직원이 생겨나고, 살벌한 경쟁 분위기로 생산성이 저해될 수도 있다. 그 경쟁이라는 것조차 기업의 전체 이익이 아니라 개인의 ‘승리’를 위한 방식으로 조직될 위험도 높다. 단기적 성과에 몰두하는 단기주의가 팽배할 수 있다.
급기야 최상층부에 있는 임원이나 경영진은 승자에게 주어진 힘을 십분 이용해 자신에게 더 유리한 방식으로 분배하게 된다. 하급 직원에게는 쥐꼬리만큼 주면서도 ‘열심히 하면 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승산 없는 희망을 준다. 그렇게 해서 절약된 인건비는 보너스나 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비롯한 최상층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중·하층 직원이나 일부 주주에게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기업에서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대주주와 기업 내 ‘상위 1%’의 은밀한 연합 덕분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로런스 미셸은 이런 현상을 기업 내에서의 ‘지대 이전’(Rent Shifting)이라 부르고, 기업 비효율성의 주요한 이유로 지목한다. 물론 기업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이런 현상이 국가 단위로 확대된 것이 상위 1%에 의한 정부 ‘포획’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폴 크루그먼이 열정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현상이다. 불평등에 대한 시민적 불만은 비등하지만 정책은 좀체 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저·최고 임금 연계, 운명공동체 작전!
따라서 임금상한제가 오히려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가능성은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일까? 물론 흔하지는 않지만 최고 연봉을 규제하는 예가 더러 있다. 미국 프로농구 선수들의 연봉체계는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 현재 그 비율이 1 대 20 정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연봉을 규제한다고 해서 최상의 농구선수들이 경기를 건성으로 한다는 불만은 들리지 않는다. 연봉상한제 때문에 미국 프로농구의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프로농구도 일종의 기업인 만큼, 이런 상한제가 다른 기업에 적용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폴 새뮤얼슨은 임금 결정에 관한 한 시장주의를 믿었지만, 변호사들의 연봉 최고액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액 연봉만 추구하다보면 변호사들이 법률의 엄격하고 공정한 적용이라는 본업이 아니라 본인의 수입 확대만 추구하게 되어 ‘법률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지금 일반 기업, 특히 금융부문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근거도 있고 현실성도 있다고 하면, 이제 남는 문제는 규제 방식이다. 어떻게 임금상한제를 도입할 것인가?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가장 느슨한 방식은 최고 연봉을 직접 결정하기보다는 그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다. 주주총회나 이사회에 실질적으로 임원들의 연봉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식이나, 금융부문의 보너스 결정 방식을 더 분명하고 엄격하게 하는 방식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임원 연봉과 보너스에 대한 주주총회의 권한을 강화해오고 있으며, 최근 스위스에서는 주민투표를 통해 주주총회에 사실상 결정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임금 규제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더 직접적인 방식은 최고 연봉의 상한을 도입하는 것이다. 역시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선 절대적 방식이다. 루스벨트의 방식대로 최고 상한을 특정 액수로 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액수를 주기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절차상의 부담뿐만 아니라, 액수 자체의 자의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상대적 방식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기준임금을 정한 다음 이것의 몇 배를 최고임금으로 정하는 방법이다. 기준임금을 정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평균임금을 기준 삼아 이것의 몇 배를 최고임금으로 정할 수도 있고,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스위스의 이른바 ‘1:12’에 대한 국민 제안은 기업 내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12배 이내로 제한하려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법정 최저임금과의 연계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령 법정 최저임금의 20배를 최고임금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고임금을 매번 조정해야 할 수고스러움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고연봉 소득자도 자신의 소득이 최저임금의 운명에 달려 있게 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정치적 지지가 더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좋게 보면 ‘운명공동체’ 작전, 나쁘게 보면 ‘물귀신’ 작전이다.
최고임금 결정 방식이 정해지면 규제 방식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루스벨트가 생각했던 방식은 100% 과세다. 영미권에서는 이런 방식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최근 유럽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예 상한액을 넘는 액수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직접적 방식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결과상의 차이는 미미할 것으로 보이지만, 각국이 처한 정치·문화적 상황에 따라 미묘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노동소득만 규제할지, 이참에 자본소득까지 포괄할 것인지도 꼼꼼히 따져볼 문제다.
빗물 새면 멋진 마룻바닥도 망가져
임금상한제, 또는 더 넓게, 소득상한제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커지고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과 같이 튼튼하고 듬직한 마룻바닥을 솜씨 좋게 만들어두었더라도, 지붕에서 빗물이 샌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붕이 부실하다고 하여 바닥도 구멍투성이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버크는 이런 말도 했다. “조그마한 일이라고 해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이 말에는 토를 달지 않으련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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