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세계 인구의 20%인 13억 명이 아직도 전기 없이 등유램프에 기대고 있다고 전한다. 화석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은 사람과 지구의 건강을 위협한다. 등유램프는 냄새가 역할 뿐만 아니라 끔찍한 화재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 등유램프를 써야 하나?’ 2008년 영국 런던에 살던 제품 디자이너 짐 리브스와 마틴 리디퍼드는 안전하고 환경에도 이로운 ‘등불’을 밝히기로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처음엔 햇빛에 주목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를 넣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5달러로, 전체 제작 비용을 최대 10달러 수준으로 생각했던 이들에겐 적잖은 부담이었다. 그렇다면 아예 배터리가 없는 등을 만들면 되잖는가. 그렇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발전기를 열심히 손으로 돌리거나 페달을 발로 굴리는 식의 제품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불편하면 사람들이 외면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게 ‘중력’이었다. 리디퍼드는 할아버지가 쓰던 진자시계를 퍼뜩 떠올렸다. ‘중력으로 시계도 움직이는데, 빛이라고 왜 안 되겠어?’
짐 리브스와 마틴 리디퍼드는 2012년 12월 소셜펀딩 서비스 ‘인디고고’에 ‘중력램프’ 발상을 처음 공개했다. 애초 5만5천달러를 목표로 삼았는데, 40여 일이 지나자 목표액의 720%가 넘는 40만달러가 모였다. 그렇게 4년여 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그래비티라이트’가 태어났다. 이름대로 중력으로 빛을 내는 전등이다.
그래비티라이트는 사람 손을 빌려 전기를 만든다. 준비 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본체와 함께 제공되는 천가방 안에 묵직한 물건을 채워넣어야 한다. 돌멩이든 모래든 물이든 상관없다. 무게는 10kg 정도로 맞춰준다.
이제 도르래 모양의 본체 끝에 달린 고리에 천가방을 매단다. 도르래에 매단 가방은 서서히 밑으로 떨어진다. 당연하잖은가, 중력이 작용하니. 이렇게 가방이 한 번 떨어질 때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는 전기에너지로 변환되고, 본체에 달린 발광다이오드(LED) 전구에 빛을 공급한다. 본체엔 밝기를 3단계(밝게·중간·어둡게)로 조절할 수 있는 단추가 달려 있다. 가방이 한 번 떨어질 때 만드는 전기에너지로 최대 30분 정도 빛을 밝힐 수 있다. 이를테면 ‘반자동 발전기’인 셈이다. 불이 꺼지면? 힘을 써서 10kg 가방을 다시 본체까지 들어올리면 된다. 운동도 하고 어둠도 밝히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하자.
그래비티라이트는 배터리가 필요 없다. 길게는 30분 단위로 필요한 전기를 그때그때 만들어 쓰는 덕분이다. LED 밝기는 5~15럭스 정도다. 등유를 쓰는 램프보다 3배 정도 밝다. 햇빛이 없어도 쓸 수 있다. 수명도 반영구적이다. 기어가 망가지거나 벨트가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6~7달러로 저렴하다.
어디 빛을 내는 데만 쓸까. 그래비티라이트로 저전력 휴대기기, 예컨대 라디오나 손전등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본체엔 휴대기기와 연결할 수 있는 커넥터가 달려 있다. 크기는 가로·세로·두께 160·103·78mm, 무게는 0.8kg으로 휴대하기에도 부담 없다. 캠핑이나 야외 활동을 할 때 전기가 없는 곳에서 쓰기에 제격이다.
그래비티라이트는 본격 생산을 하기 전부터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래비티라이트는 미국 과학잡지 가 주최한 ‘2013년 발명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은 ‘2013년 최고의 발명품 25개’ 가운데 하나로 그래비티라이트를 꼽았고, 미국 방송사 <cnn>은 ‘2013년 10대 발명품’ 목록에 그래비티라이트 이름을 올렸다.
그래비티라이트를 만드는 영국의 사회적 기업 ‘데시와트’는 2015년부터 대량생산을 할 계획이다. 이들은 그래비티라이트를 등유램프에 의존하는 저개발 지역에 집중 보급할 심산이다. 일반 판매도 병행한다. 소비자가격은 10~15달러로 예상된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cnn>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미 대선 막 올랐다…초박빙 승패 윤곽 이르면 6일 낮 나올 수도
한양대 교수들도 시국선언 “모든 분야 반동과 퇴행…윤석열 퇴진” [전문]
황룡사 터에서 1300년 전 청동접시 나왔다…‘대’ 새기고 손님맞이
한라산 4t ‘뽀빠이 돌’ 훔치려…1t 트럭에 운반하다 등산로에 쿵
[단독] 경찰, ‘윤 퇴진 집회’ 촛불행동 압수수색…회원 명단 포함
9살 손잡고 “떨어지면 편입”…대치동 그 학원 1800명 북새통
서초 서리풀지구 그린벨트 풀린다…수도권에 5만가구 공급
이런 감나무 가로수 봤어?…영동, 1만9천 그루에 수백만개 주렁
백종원 선생님 믿고 갔는데 “최악”…우산 쓰고 음식 먹었다
SNL, 대통령 풍자는 잘해도…하니 흉내로 뭇매 맞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