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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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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존경한 유일한 미국인

미국 산업영웅 포드, 나치 독일의 모델이 되고 반유대인 이론도 공유해…
금융자본을 경계한 데서 시작된 잘못된 인과관계, 비인륜적 주장에 손쉬운 핑곗거리로
등록 2014-07-25 15:31 수정 2020-05-03 04:27

헨리 포드는 미국의 산업 영웅이다. 정원 딸린 집에 자동차 한 대를 미끄러지듯이 몰고 들어가는 중산층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아메리칸드림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 인물이다. 게다가 보기에 따라서는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기업인이었다. 노동자에게 인색한 짠돌이 기업가라는 전통적 이미지를 깨버린 ‘근대화의 기수’다. 밤새 임금을 두 배로 올려 전세계의 기업가를 경악하게 했다. 노동자의 주머니가 넉넉해야 자동차를 산다는, 그러니까 노동자가 잘살아야 기업이 번창한다는 ‘혁명적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대량생산과 고임금이 결합된 체제도 그에게서 출발한 탓에, 흔히 포드주의(Fordism)라 불린다. 물론 해석은 갈린다. 어떤 이는 포드에게서 ‘풍요로운 사회의 도래’와 ‘계급사회의 종언’을 찾았지만, 다른 이는 ‘비극의 시작’을 보았다.

사랑마저 ‘나의 포드님’이 ‘계획’한 것

헨리 포드는 노동자의 주머니가 넉넉해야 기업이 번창한다는 ‘혁명적’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했으나, 히틀러와 깊은 친분을 나눈 미국의 대표적 나치주의자였다. FORD 누리집 갈무리

헨리 포드는 노동자의 주머니가 넉넉해야 기업이 번창한다는 ‘혁명적’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했으나, 히틀러와 깊은 친분을 나눈 미국의 대표적 나치주의자였다. FORD 누리집 갈무리

올더스 헉슬리는 포드주의의 비극적 요소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소설 (Brave New World)는 포드주의적 방식으로 조직돼 있고, 신세계의 기원연도를 ‘포드 원년’이라 부른다. 당연히 포드가 T모델을 만들어 자동차 대량생산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1908년이 포드 원년이 된다. 그곳 사람들은 ‘나의 주님’이라 부르지 않고 ‘나의 포드님’이라 부른다. 찰리 채플린의 는 이런 신격화된 포드주의 속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찰리가 고투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찰리는 공장 문 밖을 나서면서 포드주의의 늪에서 벗어나고 사랑을 찾아나섰으나, 헉슬리는 그런 찰리의 천진난만한 생각을 질타한다. 너의 사랑마저 ‘나의 포드님’의 오묘한 질서 안에 ‘계획’된 것이니 사랑의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한다. 포드라는 새로운 신은 공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곧 하나의 세계라는 것이다.

포드는 이렇듯 비관과 낙관을 양분하는 분열적 인물이다. 동시에 또 다른 어두운 과거를 가진 문제적 인물이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나치주의자다. 히틀러와 깊은 친분을 나누었고 독일 국민훈장까지 받았다. 오늘날 폴크스바겐이라는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들어낸 히틀러의 ‘국민차’ 프로젝트는 실상 포드의 성공에 영향받은 것이었고, 포드 자신도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지지한 나치주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알고도 모르쇠했다. 물론 수많은 논란과 날선 비판이 따랐다. 게다가 독일과 전쟁을 벌인 2차 세계대전 중에 포드의 이중적 태도는 늘 문제가 되었다. 나치즘의 독일에 우호적이면서 군사력 개선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포드는 미국에도 절대불가결한 인물이었다. 포드 회사의 도움 없이는 군용차를 비롯한 핵심적 전쟁 장비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에 다소 비협조적이기까지 한 그의 애매한 경영 방식 때문에 회사조차 빈사 상태에 빠졌다. 회사 임원들도 그를 만나길 극도로 꺼렸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회사 경영권은 그의 손자에게 넘어갔고 전쟁 기간에 그가 보인 행적에 대한 공식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그는 1947년에 세상을 떠났다. 죽음과 함께 그의 과거도 묻혔다.

그는 왜 나치주의자가 되었을까. 사실 그는 히틀러 이전의 나치주의자였고, 또 히틀러 이전의 반유대주의자였다. 1920년대 들어 포드는 사실상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지배하게 된다. 거리에 다니는 자동차 중 절반 이상이 포드 자동차였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반전주의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한 덕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대표적인 평화주의자로 그 이름을 떨쳤다. 이렇게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정점에 달할 무렵, 그는 (Dearborn Independent)라는 주간지를 발간하기 시작한다. 디어본은 그의 고향이다. 이 주간지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오로지 반유대인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19세기에 시온의 지도자들이 세계 정복을 위해 은밀히 작성해왔다는 ‘시온 장로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를 대대적으로 배포하고 알렸다. 무려 50만 부를 찍어 돌렸다. 그리고 이 책에 기초해 포드는 ‘국제 유대인: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글을 연재했다. 시온 의정서는 당시부터 위조된 문서로 알려졌지만, 그의 태도는 놀라우리만큼 완강했다. 문서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시온 의정서가 현재 일어나는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강조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법원에서는 출판 금지와 포드의 공식 사과를 명령했다. 포드는 이 판결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보좌관들의 잘못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는 포드의 영민한 정치적 제스처였을 뿐, 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하지 않는 금융자본, 먹지도 말라

파급력은 엄청났다. 미국 곳곳에서 시온 의정서와 요약본이 퍼지며 반유대인 세력이 형성되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도 배포되었다. 급기야 독일에서 변고가 났다. 히틀러는 의정서를 독일어로 출판하면서 포드의 글도 번역·배포했다. 히틀러는 포드의 이론을 독일에 적용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었고, 마침내 그의 악명 높은 저작 에서 포드는 히틀러가 존경하는 유일한 미국인으로 언급된다. 미국을 점령하려는 유대인에 맞서 저항하는 위대한 미국인이 포드라는 것이다. 이렇게 히틀러는 포드의 T모델을 기초로 해서 폴크스바겐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포드의 반유대인 이론을 현실에 철두철미하게 적용했다. 포드가 히틀러의 악몽 같은 야심을 위해 동원된 핑곗거리인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포드의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대량생산과 고임금이 결합된 포드주의는 한편으로 풍요로운 사회의 도래와 계급사회의 종언을 뜻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 규율에 인간 노동이 종속되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겨레

대량생산과 고임금이 결합된 포드주의는 한편으로 풍요로운 사회의 도래와 계급사회의 종언을 뜻하기도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 규율에 인간 노동이 종속되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겨레

그러면 포드가 유대인을 그토록 싫어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온 의정서에 따르면, 유대인은 언론과 은행을 비롯한 세계 금융을 장악함으로써 세계 정치와 문화를 장악하려고 한다. 특히 부를 금융권에 집중시킨 뒤 이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설사 생산적인 실물 부문에서 희생이 생기더라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 포드는 이를 강하게 믿었다. 포드의 심장인 실물 생산, 그의 산업자본가로서의 자부심을 건드렸다. 시온 의정서가 조작된 문서라는 점이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문서는 조작됐더라도, 문서는 여전히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의 이면에는 산업자본가로서의 독특한 경제관이 있다.

포드는 기본적으로 금융을 신뢰하지 않았다. 금융의 비정상적 확대는 곧 경제를 망치고 퇴락시킨다고 생각했다. 반유대인 사상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던 1922년 그가 쓴 책 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제조업의 주요 목적은 생산하는 것이고, 이 목적이 지켜진다면 금융은 대략 회계장부 정리에 불과한, 이차적인 일일 뿐이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돈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관하는 곳이다.” “은행은 산업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은행은 산업에 복무하는 하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본 현실은 정반대였다. 기업이 사업 확장을 위해 은행 대부에 의존하게 되면서, 은행의 영향력이 커지고 급기야 은행이 여타 기업을 지배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났다. 중앙은행마저 ‘돈장사’에 불과한 금융자본 논리에 휘둘렸다. 언론도 학계도 이를 부추겼다. 따라서 생산이나 실제적인 일보다는 돈을 굴려 더 큰 돈을 만들 궁리만 하게 되었다. 포드가 가장 우려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주장은 이해해줄 만하다. 자수성가한 산업자본가였고, 생산하지 않고 생기는 이윤을 믿지 않는 원칙론자였다. 이윤이 생기면 금고에 쌓아두었다가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만 받으면 되는 법. 그 돈은 오로지 미래의 생산적 투자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금융이 세상에 기여한 가치는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 탓인지 그는 회계사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의 눈부신 성공은 곧 세상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생산하지 않는 자는 한 푼도 받을 권리가 없다는 신념이었다.

포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황금새벽당

포드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갔고, 바로 여기서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는 금융자본의 경제 지배라는 ‘불행한’ 사태는 ‘하나의 인종적 근원’ 때문에 생겼다고 확신했다. 유대인에게 혐의를 두었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여차저차해서 생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계산된 전복’으로 보았다. 시온 의정서가 조작된 것으로 판명 났으니, 마땅한 증거는 없었다. 그의 산 경험이 곧 증거였다.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을 설득해서 확신에 찬 포드는 과감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제 문제는 명확해졌으니, 모든 것은 유대인이 하기에 달렸다.” 다소 섬뜩한 경고도 덧붙였다. “그들이 늘 주장하듯이 그렇게 현명하다면, 미국을 유대인 국가로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정한) 미국인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은 그의 음모론에 불을 불였다. 포드는 전쟁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가들의 탐욕 때문에 생긴 것으로 믿었다. 미국 상선이 독일 잠수함 U보트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발하고,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어선을 끌고 나가 잠수함을 잡겠다고 카리브해를 음주항해 하는 ‘예술가적’ 기괴함을 보여줄 때, 포드는 이 모든 것이 ‘전쟁광 금융자본가’의 음모라는 기괴한 주장을 내놓았다. 여러 차례 뇌졸중의 위기를 겪으며 몸도 마음도 지쳐갈 때였다. 그가 독일과 유럽 곳곳에 만든 포드 공장에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이 늘어난 때이기도 했다. 풍요를 약속했던 공장이 착취의 공장으로 바뀌어갔다.

포드는 아마 반쯤은 옳았고, 반쯤은 틀렸을 것이다. 금융자본의 지배를 경계하자는 포드의 견해는 경청할 여지가 있다. 금융위기로 시작된 대침체가 여전히 진행 중인 오늘날에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를 유대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으로 연결한 포드는 틀렸다. 무엇보다도 그의 오류는 치명적이었다. 그의 날선 혀는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또한 그의 치명적 오류는 시사적이다. 금융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경제는 위기에 약하고, 비인륜적 주장에 손쉬운 핑곗거리를 준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국가에서 등장해 세력을 늘리고 있는 극우단체를 보면 그렇다. 포드의 서늘한 그림자가 보인다. 예컨대 그리스의 극우 나치 성향의 황금새벽당(Golden Dawn)은 금융자본과 유대인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서 100년 전 포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여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리스 국민의 80% 이상은 유대인이 기업이나 금융시장에서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대인을 ‘보호’하는 지름길은 금융의 비대화와 지배를 막는 것이겠다. 설령 금융자본의 핵심에 유대인이 많다고 하더라도, 금융자본을 적절히 통제하면 될 일이지 유대인을 직접 공격할 이유는 없다. 매번 한 아이가 독식하는 구슬놀이라면, 구슬을 나누어 가지도록 규칙을 바꾸면 된다. 손재주가 뛰어난 아이를 두들겨패고 쫓아낼 일은 아니다.

가장 신랄한 금융자본 비판서, 저자는 유대인

금융자본 지배에 대한 포드의 우려는 당시에도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좌우를 떠나 많은 이가 주장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연구는 1910년에 출간된 루돌프 힐퍼딩의 일 것이다. 그는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면서 국가까지 장악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전쟁의 위험도 높아진다는 점을 방대한 저서를 통해 낱낱이 고발했다. 포드가 그의 책을 읽을 기회는 없었다. 아쉽다. 금융자본의 폐해를 포드 자신보다 강하게 경고한 힐퍼딩도 유대인이었다. 그는 포드의 ‘친애하는’ 친구 히틀러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으나, 끝내 게슈타포의 총탄에 쓰러졌다. 역사를 통틀어 금융자본의 폐부를 까발리며 정면 공격하고 이 때문에 희생된 이들도 유대인이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렇게 핍박받던 유대인이 나라를 세워 오늘날 옆 나라를 폭격하며 선량한 시민을 학살하고 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연구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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