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 11장 1~9절)
신화 속 바벨탑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사교육과 조기유학, 영어유치원부터 해외 어학연수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바벨탑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일주일에 평균 4시간을 영어 공부에만 매달리는 대한민국 청춘들이여. 지리멸렬하고 소모적인 삶에 작별을 고하자.
두꺼운 ‘언어의 바벨탑’에 맞서는 인간의 도전은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1954년 1월, IBM은 미국 뉴욕 본사에서 최초의 기계번역 공개 실험을 진행했다. 1968년 등장한 시스트란(SYSTRAN)은 미국 공군과 손잡고 세계 최초로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았다. 2001년에는 구글이 기계번역 기반으로 영어와 8개 언어 간 번역 기능을 처음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조악한 수준이었던 구글 번역은 2008년 통계적 기계번역 방식을 도입하며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구글 번역 웹서비스는 현재 81개 언어의 교차 번역을 지원한다. 스마트폰이나 웹브라우저, 각종 가전기기에서도 구글 번역기가 활약하고 있다.
하나, 바벨탑은 여전히 견고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들, 기계통역사가 우리 마음에 쏙 들 만큼 만족스러웠던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인데, 구글은 왜 ‘로, 또는 수없는, 그게 문제입니다’라고 횡설수설하는 걸까. 기술이 발전해도 맥락과 뉘앙스는 인간의 해석 영역이었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한 실험이 눈길을 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5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 실시간 영상통화를 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두 사람을 이어준 통역사는 ‘스카이프’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11년 5월에 인수한 인스턴트 메신저다.
‘스카이프 번역기’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싱 팔과 독일인 직원 디아나 하인리히는 각자 영어와 독일어로 안부를 묻고 최근 일정을 주고받았다. 한쪽에서 영어로 말하면 곧바로 독일어 음성과 글자로 상대방에게 번역돼 전달됐다. 어떤 외부 장치나 센서도 쓰지 않았다. 메신저에 로그인해 전화를 건 게 전부였다.
물론, 섣불리 열광할 일은 아니다. 구글도 이미 스마트폰용 응용프로그램(앱)으로 몇몇 언어 간 음성 통역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안드로이드 제품 총괄 부사장이 “거의 완벽한 수준의 실시간 통역기 시제품을 완성했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설립자 릭 라시드도 2년 전 영어와 중국어를 실시간 통역하는 기능을 시연한 적 있다.
인간과 기술 사이에 놓인 언어의 간극은 시나브로 줄어든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스카이프 번역기를 소개하며 “매우 가까운 미래에 기술이 지금껏 없었던 방식으로 지역과 언어 장벽을 넘어 인간을 연결해주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윈도8’용 스카이프 번역기 시험판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소설 엔 참으로 아스트랄한 물고기가 등장한다. 사람 뇌 속에서 살며 주변 뇌파를 받아먹고 사는 ‘바벨피시’. 이 바벨피시를 뇌 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은 세계 모든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좋다. 어떤 외계인과도 막힘없이 대화를 나누게 해주는 의 ‘유니버설 통역기’ 정도는 머잖은 미래에 기대해봄직하지 않겠나. 어떤 과학도 출발선에선 늘 공상이었으니까.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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