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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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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중전화가 된 휴대전화

‘알뜰폰’ 100일 사용 후기
늦장 개통, 전화 안 받는 고객센터에 분통 터뜨렸지만 휴대전화 요금 하나만은 반토막
등록 2014-01-23 13:51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0월 ‘알뜰폰’으로 갈아타며 나는 ‘나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왜곡된 휴대전화 사용 습관을 바로잡아 요금을 줄이는 게 목표였다(☞ 제981호 ‘경제_ 상품 뜯어보기’ 기사 보기). 기본료 5만4천원을 내고 ‘300분 무료 통화, 200건 무료 문자, 무제한 데이터’ 상품을 3년 가까이 쓰다보니 쓸데없이 사용량이 많았다. 특히 월말에 무료 통화가 남았다는 문자를 이동통신사에서 받으면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지난 100일간 알뜰폰을 쓰면서 휴대전화 요금은 반토막 났다.

홈페이지 게시판 “전화 좀 받으라”

알뜰폰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의 통신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다. 통신망 투자비와 운영비가 들지 않아 통신요금이 기존 이동통신사보다 30% 정도 저렴하다. 다만 유통망이 적은 게 흠이었다. 지난해 9월27일부터 우체국에서 알뜰폰을 판매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지난해 9월30일 나는 현금 2만2천원을 내고 알뜰폰을 우체국에서 구입했다. 가입비 1만원도 추가로 냈다.
개통부터 기존 이동통신사와 확실히 달랐다. 우체국 직원은 알뜰폰을 다음날 택배로 보내준다고 했다. 하지만 알뜰폰 판매자 ‘프리T’는 말을 바꿨다. “새로 가입하는 LG유플러스에 미납요금 2250원을 먼저 내야 합니다.” 확인해보니 몇 년 전 쓰다가 중단한 웹하드가 있었다. 곧바로 미납요금을 처리했다. 이틀 뒤 알뜰폰이 도착했다. 구형 폴더폰이었다. 동봉된 개통 안내장에 따라 알뜰폰을 작동했지만 먹통이었다. 아무리 껐다가 켜도 똑같았다. 프리T에 전화했다. “모든 상담사가 통화 중이니 다음에 연락 바랍니다.” ARS 응답이 끝나자 자동으로 끊겼다. 몇 번을 반복해도 그랬다. 프리T 홈페이지에 상담글을 남겼다.

다음날 프리T 직원이 연락했다. “예전에 SK텔레콤을 사용했죠. 남은 요금을 먼저 납부해야 개통할 수 있습니다.”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한꺼번에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며칠째 알뜰폰 개통에 매달려 있는 게 한심했다. SK텔레콤에 미납요금을 납부하고 프리T에 전화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홈페이지 게시판을 가보니 “전화 좀 받으라”는 가입자의 아우성이 넘쳐났다. 다행히 내가 남긴 상담글에 답글이 달렸다. “개통 처리를 위해 별도의 연락을 드리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방통행을 공언한 것이다.

10월10일 마침내 개통됐다. 우체국에서 알뜰폰을 구입한 지 11일 만이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알뜰폰이 워낙 구형이라 유심칩이 따로 없었다. 기존 휴대전화에 저장된 연락처를 한꺼번에 옮길 방법이 따로 없다고 했다. 시간 날 때마다 전화번호를 일일이 옮겼다. 얼굴을 떠올려보니 절반 정도가 가물거렸다. 인간관계가 그렇게 정리됐다.

알뜰폰을 공공장소에서 꺼내는 게 괜히 망설여졌다. 스마트폰 사이에서 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터넷 소액결제가 되지 않는 것도 불편했다. 계좌이체나 카드결제로 대체하며 적응해갔다. 다행히 본인 인증 서비스는 가능했다. SK텔레콤 멤버십 카드로 받던 혜택이 순간순간 그리웠다. 편의점, 제과점, 영화관 등에서 받는 할인 말이다.

이제 나는 ‘용건만 간단히’

내가 선택한 알뜰폰 요금제는 기본료 1500원에 음성 1.5원(초), 문자 15원(건), 데이터 51.2원(MB)이었다. 통화 품질, 데이터 속도는 기존 이동통신사와 똑같았다. 기존 통신망을 빌려쓰니까 당연했다. 문제는 쓰는 족족 돈을 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무료가 아예 없으니 문자를 보낼 때도 ‘꼭 해야 하나’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무료 통화가 남아 친구에게 무작정 전화하는 일도 없어졌다. 문득 외로워졌다. ‘친구들을 다 잃는 건 아닐까.’

매너콜 서비스를 신청했다. 부재 중 걸려온 전화를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1천원을 내라고 했다. 사실 이 서비스는 항상 유료였다. 다만 기본료 5만4천원을 낼 때는 그 값을 체감하지 못했다. 기본료가 1500원으로 뚝 떨어지니까 그 비용이 비싸게 느껴졌다.

10월 휴대전화 이용 내역이 나왔다. 깜짝 놀랐다. 20일간 통화시간은 107분, 요금은 1만4050원. 30일로 가정해 계산해도 2만1075원에 불과했다. 기존 이동통신사 9월 기본료의 40% 수준이었다. 11월에는 더 줄여보기로 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전화하고 주로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1만3540원(통화 시간 99분)으로 줄었다. 12월에는 반대로 해봤다. 충분히 전화하고 문자도 필요한 만큼 썼다. 통화량은 166분으로 늘었지만 요금은 1만9890원이 나왔다.

기억해보면 예전에도 ‘무료 통화 300분’을 다 채우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끔은 200분을 넘지 않았다. ‘무료 통화·문자’라는 마수에 빠져 허우적거렸을 뿐이다. 이제 나는 ‘용건만 간단히’ 말한다. 그렇게 휴대전화가 옛 공중전화다워진 게 마음에 든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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