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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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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지리산 칼바람이 분다면

사진부 기자들이 입어본 코오롱·K2·블랙야크 헤비 구스다운
돈과 스타일 상관없이 오로지 추위로부터의 해방이 목적이라면 추천
등록 2014-01-10 14:43 수정 2020-05-03 04:27
왼쪽부터 K2 ‘마조람3’을 입은 정용일 기자, 코오롱스포츠 ‘헤스티아’를 입은 박승화 기자, 블랙야크 ‘에어로원’을 입은 탁기형 선임기자.김명진

왼쪽부터 K2 ‘마조람3’을 입은 정용일 기자, 코오롱스포츠 ‘헤스티아’를 입은 박승화 기자, 블랙야크 ‘에어로원’을 입은 탁기형 선임기자.김명진

탕웨이가 장동건에게 말한다. 나지막하되 단호한 목소리로. “겨울은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따뜻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장동건이 주술에 걸린 듯 확신에 차 답한다. “올겨울 당신과 함께.” 코오롱스포츠의 겨울시즌 주력 상품인 헤비다운 재킷 광고의 한 장면이다. 광고 내내 눈발 한 번 흩날리지 않는데도, 장동건을 따라 두툼한 헤비다운 재킷을 포근하게 여미고 싶어진다.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의 광고에선 남성의 향기가 물씬 난다. 현빈은 눈보라 치는 설원에서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를 외치며 신나게 개썰매를 탄다(K2). 추운 겨울 아침 조인성은 간단히 반팔에 재킷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서 개와 느긋하게 산책을 즐긴다. 모두 헤비다운 재킷 덕분이란다(블랙야크).

추위는 우리가 잘 안다

궁금하다. 톱스타처럼, 헤비다운 재킷을 입으면 살 떨리는 혹한의 겨울에도 추위 걱정은 덜고, 스타일은 살리면서,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그래서 이 국내 상위 아웃도어 업체가 판매 중인 50만원 안팎의 헤비 구스다운(거위털) 재킷을 직접 체험해봤다. 사계절 방방곡곡의 현장을 발로 누비는 까닭에 아웃도어 의류 전문가가 된 사진부 탁기형 선임기자, 박승화 기자, 정용일 기자가 일주일간 옷을 돌아가며 입어봤다.

세 개 제품의 디자인 모두 까다로운 사진부 기자들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색감이 문제였다. 코오롱스포츠 ‘헤스티아’의 어두운 녹색은 중후한 느낌을 줬다. 아웃도어 의류의 전통 고객층인 40~50대의 마음에 들 수는 있어도 새로운 소비층인 20~30대의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네모반듯한 퀼팅 처리(직물과 직물 사이에 솜이나 양모 등을 펴 넣고 박음질하는 방식) 역시 무난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중·장년층이나 정장 위에 입을 구스다운 재킷을 찾는 직장인들에게 어울렸다. K2의 ‘마조람3’이 선택한 어두운 레드, 검은색, 회색의 배색도 젊은 고객층을 공략하기엔 경쾌함이 떨어져 보였다. 다만 우상향하는 비스듬한 절개는 날씬한 라인을 선호하는 젊은 층에게 점수를 얻을 듯했다. 블랙야크의 ‘에어로원’은 오렌지색, 회색, 갈색의 화려한 배색이 젊은 층이 소화하기에도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로 다른 방향의 절개도 산만해 보였다. 탁기형 선임기자 평가. “모든 세대의 고객층을 배려하려다 그랬는지 K2와 블랙야크는 색을 잘못 섞어서 어정쩡해졌다. 헤스티아는 색이 중후한데다 (디자인에) 포인트도 없다. 장동건이나 탕웨이가 아닌 일반인이 멋지게 소화하기 어렵다.”

제품들의 치수는 비슷했다. 남성 100 사이즈를 기준으로 상의 길이는 71~73cm, 가슴둘레는 118~121cm였다. 부위별로 1~3cm 차이였다. 그러나 기자들이 느낀 착용감은 확연히 달랐다. 탁 선임기자는 “마조람3은 상의 길이가 짧아 엉덩이를 반만 덮었다”고 했고, 정용일 기자는 “에어로원은 길이가 짧아 활동적이지만 엉덩이가 추웠다”고 했다. 탁 선임기자의 키는 170cm, 정 기자의 키는 175cm다. 옷의 절개가 단순해서 그런지, 헤스티아에 대해선 “옷과 몸 사이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어 찬바람이 들어온다”(정용일 기자)는 의견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마조람3이 착용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모두들 “내 몸을 감싸는 느낌”이라고 했다.

보온력에 비례하는 필 파워 700 이상

모든 제품이 헤비 구스다운의 제 역할은 하고 있었다. 가벼우면서도 따뜻했다. 거위솜털 90%, 거위깃털 10%를 충전재로 쓴 덕분이다. 모두 눈과 비에 대비해 방풍과 투습 기능이 있는 윈드스토퍼 소재를 쓴 것도 보온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필 파워’(FP) 역시 헤스티아·마조람3는 800, 에어로원은 700이다. 복원력을 측정하는 필 파워는 수치가 높을수록 공기층을 두껍게 형성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보온력도 비례해 높아진다. 대개 600 이상이면 보온력이 좋고 하니, 세 제품 모두 따뜻함에선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더 가볍게, 더 따뜻하게 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있다. 블랙야크는 자체 개발한 ‘에어탱크’ 공법을 에어로원에 적용했다. 체온이 빠져나갈 수도 있는 원단의 공기투과도를 최소화해 보온성과 활동성을 고루 갖추도록 한 방식이다. K2는 마조람3 목 뒷부분과 주머니 안쪽에 보아털(기모)을 꼼꼼하게 넣었다. 코오롱스포츠는 헤스티아의 봉제선에 스티치를 없애는 대신 자체 접합 기술로 주머니나 지퍼 등을 붙여 무게를 줄였다. 박 기자는 “헤스티아는 지금까지 입어본 방한복 중에서 가장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탁월하다”고 했다.

소소한 장점들도 있다. 마조람3은 닳기 쉬운 어깨와 손목 부분에 방탄 소재인 케블라 원단을 썼다. K2는 이런 세심함으로 인해 “어깨 부분이 보강돼 있어 카메라 가방끈이 밀리지 않아 좋았다”(정용일 기자)라는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높은 가격… ‘데일리웨어’는 희망사항

다만 뛰어난 성능을 고려하더라도 50만원을 넘나드는 가격은 부담스럽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최근 들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출퇴근용이나 야외활동용으로 헤비 구스다운을 찾는 소비자가 늘긴 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가계 사정을 고려하면 헤비 구스다운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입는 ‘데일리웨어’가 되는 건 아웃도어 업체들의 희망사항처럼 보인다. 탁 선임기자의 설명이다. “윈드스토퍼 소재의 헤비다운은 국내에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종주할 때나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가 온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입기엔 보온성이 지나치게 뛰어나다. 비싼 값을 못한다는 의미다.” 결론은 이렇다. 돈과 스타일에 상관없이 오로지 추위로부터의 해방이 목적이라면 추천.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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