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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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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두렵습니까

등록 2008-06-26 00:00 수정 2020-05-03 04:25

재무상담은 사회적 필연 법칙을 인식시키고, 미래를 몰라 갖게 되는 두려움을 떨치게 하는 것

▣ 포도에셋 재무상담사 nari@phodo.com

서울과 경기 부천에서 살다 강화로 이사간 지 올해 12년째다. 사업이 망한 탓도 있고, 아이들 건강 문제도 생각했고, 막 초등학교에 들어가려던 큰아이에게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하려는 뜻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다. 아이들에게 도시의 각박한 경쟁에 시달리게 하지 않고 농촌에서 맘껏 뛰놀게 했다.

그런데 요즘 농촌이 아이들에게 다 좋은 건 아니다. 또래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가 이사간 동네는 우리처럼 도시에서 이주해온 집들이 많아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워낙 가깝게 지내다 보니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친구 집에서 잘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반대한 적이 없다. 다만 꼭 한 가지를 챙겨가라고 한다. 어른들에게 재무 교육을 할 때 재미 삼아 이걸 문제로 내보곤 한다. “제가 우리 집 아이들한테 ‘친구 집에 놀러갈 때 꼭 가져가야 할 것은?’이란 질문을 종종 합니다. 뭘까요?” 내가 요구하는 답은 ‘칫솔’이다. 그러면서 나는 돈과 삶의 필연 법칙을 설명한다. “양치질을 안 하면 이빨이 썩고, 이가 상하면 건강이 나빠집니다. 돈도 많이 듭니다.” 이것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보다는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자연과 사회의 필연 법칙입니다. 단지 지식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몸에 배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다. 지식은 때가 되고 느끼게 되면 얼마든지 스스로 습득해나갈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이런 필연 법칙을 제대로 몸에 익혀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고생한다.

재무상담사로서 고객이나 청중에게 전달하려는 핵심 역시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에게 강의할 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은 무엇이 걱정되나요?” 정권이 바뀌어 부서가 통폐합되고 자리가 불안정해질까봐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우리 모두 100년 이내에 죽지 않나요?” 분위기가 차가워진다.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나는 아이들에게도 가끔 이렇게 혼낸다. “너, 그러면 100년 이내에 죽는다!” 사실이다. 우리가 100년 이내에 죽는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도 그렇고 보건복지부 직원들도 그렇고 반드시 죽는다는 이 엄연한 사실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식 웃을 뿐이다. 왜 그럴까?

죽는다는 게 두렵지 않은 게 아니라, 죽는다는 필연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죽는다는 것보다 조금 정도가 약한 ‘늙으면 돈을 못 벌고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은 필연일까 아닐까?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10년 뒤 대학을 가고 결혼을 하게 되면 돈이 얼마나 들까? 이런 것들은 자연의 필연 법칙보다 그 정도는 약하지만, 사회적 필연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재무상담은 이런 사회적 필연 법칙을 인식시키고, 그럼으로써 미래를 몰라 갖게 되는 두려움을 떨치게 하는 것이다.

김주연(36·가명)씨 부부는 공무원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신혼 초에 주말부부를 했고 오랫동안 공부를 하느라 둘째는 낳을 엄두도 못 냈고 재산도 많이 모으지 못했다. 재무 상태를 점검하면서 은퇴 뒤 생활비를 물어보았다. 25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 정도면 두 사람의 연금만으로도 남는다.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해 70% 정도로 감액한다 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돈 쓸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한도가 없다. 그래서 사실 돈 자체보다 돈에 대한 주관이 더 중요하다. 김씨 부부는 특별히 무리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택은 서울에서 32평 아파트, 외아들 대학자금은 연 1500만원을 생각했고 유학은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결혼지원금은 조금 많이 생각했다. 아이가 대학 갈 즈음에는 서울 집을 팔고 수도권에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한다. 그러면 여유자산이 많이 생긴다. 이 정도로 자금 수요를 생각한다면 김씨 부부의 재무설계는 여유롭다. 오히려 돈 쓸 일을 더 찾아보라고 권할 판이다.

그러나 이건 두 번이나 만나 상담을 하고, 사전에 김씨 부부가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점검해보면서 생긴 결론이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하는 결론이 얻어진 것이지, 그렇게 수치로 따져보지 않았더라면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일단 많이 벌고 보자는 심리가 앞서게 되고, 누가 이러저러한 투자로 재미봤다더라 하면 자신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기웃거리게 된다. 그런 불안한 심리를 파고드는 게 사기꾼이다. 최근 군 장교들이 관련된 금융사기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의 결론이 이런 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제대 뒤 마땅한 대책이 없고 연금도 부족해서 장교들이 불안해한다.’ 불안의 진정한 원인은 돈이 적다는 그 자체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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