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현금흐름과 자산현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안정감과 자신감 얻을 수 있어 </font>
▣ 포도에셋 재무상담사 nari@phodo.com
중학생 자녀 둘을 둔 박지수(38·가명)씨는 광고업을 하는 남편 회사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 남편 사업이 불안정해서 자신이 집에서 살림만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집으로 매달 얼마씩 가져오죠?” 간단한 질문이지만 박씨는 대답을 주저했다. 그때그때 되는 대로 돈을 가져다 쓰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남편이 얼마를 버는지 확인해보았다. 이 역시 정확한 자료가 없다.
그럼 집안일로 얼마를 쓰는지 물어보았다. 이 역시 정확히 파악된 게 없다. 질문을 하면서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월세 30만원, 통신비 15만원, 부식비 80만원…. 이런 식으로 적어보니 월평균 330만원이나 되었다. 친정어머니를 모시는 5인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소비성 지출만으로는 꽤 많은 금액이다.
이렇게 수입과 지출이 정리돼 있지 않으면 남들만큼 쓰면서도 제대로 쓴 것 같지 않아 늘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빈곤감의 악순환인 셈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재생자동차부품 공급상을 하는 김중철(41·가명)씨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7년 전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아주 조그맣게, 거의 자본을 들이지 않다시피 했다. 조금씩 사업을 키워오다 올해 초 다소 무리를 감수하고 사업 규모를 2배 이상 키웠다. 원칙대로라면 자본을 충분히 확보한 다음에 사업을 확대해야 하지만, 시장의 경쟁구도 때문에 무리하게 앞당겨 확장해야만 했다. 당연히 늘어난 거래처에 결제해야 할 자금과 비용이 늘었다.
자영업 수준이다 보니 금융권 대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친인척에게 무이자로 2천만원을 빌렸다. 3년 전부터 월 50만원씩 불입하던 유니버설보험은 올 초부터 불입을 중지했고, 사업을 확장하면서 800만원을 인출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보장성보험 약관대출로 300만원, ○○캐피탈로부터 2천만원을 대출받았다. 둘 다 10% 전후의 높은 금리였다.
“유니버설보험에서 더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이 있을 텐데요?” 확장된 사업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인지 김씨는 쉽게 인출해 쓸 수 있는 자신의 돈이 있는데도 점검해보지 않았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돈에 쪼들리더라도 차분하게 따져보고 계획을 세우면 도움되는 게 생각보다 많다. 앞의 박씨와 마찬가지로 김씨도 돈 흐름이 어수선하다 보니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늘 쫓기기만 하고 여기저기서 조금씩 손해를 보고 있었다.
사업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기에 김씨 자신의 급여는 150만원으로 정했다. 부인은 무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면 김씨가 150만원으로 다섯 식구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을까? 아니다. 사업체 자금흐름을 하나하나 따져보니 실제 김씨가 가정으로 가져가는 돈은 300만원 정도 됐다. 사업을 확장하기 전에 가져가던 450만원보다는 많이 줄었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직원 임금, 자동차 비용, 임대료, 대출 원리금 등이 늘어난 것에 비해 매출은 아직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의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돈이 자신의 명목임금인 150만원보다는 꽤 많았던 것이다.
이것은 자영업자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 발간된 재무 관련 책에서 ‘자영업자 재무설계의 기본은 사업수지와 가계수지 분리’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아무튼 김씨의 재무설계는 일단 사업수지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집으로 가져가야 할 돈을 300만원으로 확정하고, 조금이라도 사업자금의 부담을 덜기 위해 세 차례로 나눠 100만원씩 가계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 사업 확장 4개월째와 5개월째의 월별 손익을 정리해보니, 4개월째는 320만원 적자였지만 5개월째는 96만원 흑자로 돌아섰다. 물론 아직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3개월 정도 살펴봐서 매출이 안정되면 가계수지로 돌리는 돈을 550만원으로 올리고, 그때쯤 가서 주택마련, 자녀 학자금, 노후자금 등에 대한 자세한 설계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한편 자산을 살펴보니 아직 주택은 없지만, 재고자산이 많아 부채를 감안하더라도 순자산이 2억8천만원 정도로 계산됐다. 지난해 재무상담을 받은, 자녀가 둘인 같은 나이대 가정의 순자산 평균보다 20%가량 많았다. “부자입니다.” 비교표를 보여주며 농담조로 추켜주었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자금에 쪼들리고 사업 전망에 불안해하는 김씨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현금흐름과 자산현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김씨는 안정감을 얻었다. 6월 손익계산서의 예상매출액 6천만원을 1억원으로 고쳐보자고 한다. 예상 순수익이 1천만원을 넘어섰다. “연말에는 이 정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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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