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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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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보험? 너 자신을 알라

등록 2008-04-18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내년 결혼이 목표여서 단기자금이 필요한 김씨, 고액 장마보험 상품을 즉흥적으로 구매하는 실책을…</font>

▣ 이광구·포도에셋 재무상담사 nari@phodo.com

“내년에 결혼하는 게 목표입니다.” 직장생활 5년째인 김상철(33·가명)씨에게 가장 큰 재무목표는 결혼이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늦출 수는 없다고 한다. 재무 관점에서 보면 결혼자금과 집 마련계획이 관건이다. 특히 서울에 사는 김씨로서는 전세든 자가든 주거대책이 큰 걱정이다. 재무상황을 점검하면서 자산을 보니 순자산이 1500만원 정도였다.

“1년에 300만원씩 모은 셈이네요?” 머리를 긁적일 뿐 말을 못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 것이지만, 김씨에게는 질책이다. 지난해 포도에셋 재무상담을 받은 비슷한 나이대의 미혼 남성의 순자산이 6천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김씨의 지난 5년 재무성적은 낙제점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김씨의 저축률은 매우 높다. 전자우편으로 받은 재무점검표에는 월 저축액이 145만원으로, 세후 소득의 60%나 된다. 문제는 김씨가 적은 대로 정리해보면 월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 60만원이라는 점이다. 하나하나 물어보며 점검해봤다.

지난해 봄 큰맘 먹고 적립식 펀드에 50만원씩 불입하기 시작했다. 가을엔 좀더 욕심을 내 50만원짜리 계좌를 하나 더 만들었다. 연말에 홈쇼핑을 보다가 월 30만원씩 내는 장기주택마련보험(이하 장마보험)에도 가입했다. 주택마련을 위한 청약부금도 15만원씩 내고 있었다.

이렇게 저축액을 늘렸지만 소득이 그에 따라준 것도 아니고 소비지출을 크게 줄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현금 흐름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두 번째 적립식 펀드와 청약부금의 불입을 중지했다. 그렇게 해서 현금 흐름상의 적자를 모면했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인 결혼자금 마련계획은 여전히 요원했다.

그렇다면 단기 목적자금을 모을 수 있는 저축계획이 필요한데, 가장 최근에 가입한 장마보험은 20년 동안 유지해야 하는 장기상품이다. 게다가 초기에 해약하면 원금을 하나도 받지 못한다. 펀드는 불입을 중지해도 되지만 이것은 그렇게 하면 해지가 된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불입해야 하는 강제성이 있다. 사실 이 강제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김씨 역시 홈쇼핑을 보다가 문득 이런 맘이 들었다고 한다. ‘저축부터 해야지. 안 그러면 다 써버릴걸.’ 거기다 김씨를 더 자극한 건 연말정산이란 단어다. 마침 그때가 연말이었다. 그리고 7년 이상 유지하면 이자소득세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씨가 가입한 장마보험은 소득공제와 비과세란 장마상품의 일반 특성에다 한 가지 기능이 더 있다.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이 나온다. ‘500만원 + 해약환급금’.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은행이나 증권사 장마상품에는 없는 이 사망보험금은 보험사가 고객 돈을 20년 동안 장기로 운용할 수 있는 대가다. 중간에 그 약속을 저버리면 원금 손실이라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투자하거나 상품에 가입하거나 새로 일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늘 잘되는 측면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 눈 딱 감고 20년 동안 저축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김씨가 결혼자금을 모으려면 단기저축이 필요하다. 현재 순자산 1500만원으로는 1년 뒤 결혼 때 전세자금도 모자란다. 부모님이 4천만원 정도를 도와준다 해도 서울 변두리의 신혼살림집 전셋값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김씨가 생각하는 전세금은 적어도 8천만원 이상이다. 저축 여력을 최대한 다 동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월 30만원씩 장기로 묶어두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30만원씩 20년이면 원금만 7200만원이나 되는 고액이다. 이런 고액 상품 가입을 앞뒤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홈쇼핑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펀드나 예금상품처럼 몇 달 뒤 해약해도 원금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장마보험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출이자는 손해 보고 투자수익을 낼 기회는 놓치는 방식이다. 이미 납입한 120만원이 아까워 김씨는 장마보험을 그냥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 상태로 생애 재무설계를 해보았다. 죽을 때까지 대출을 끌고 가야 하는 마이너스 신세였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상황은 김씨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의 주거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결혼비용에서 남자에게는 역시 주거비용이 가장 부담스런 존재다. 설명이 끝나자 김씨가 멋쩍게 웃으며 한마디 던진다. “결혼해도 부모님 집에 살아야겠네요.” 김씨 부모는 현재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김씨나 부모 모두에게 그것이 재무적으로나 효도나 행복한 삶이란 면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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