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언제 어디에 돈 쓸지 따져야…5년 동안 불입하고 10년 뒤에 환급금 받는 경우 적금이 훨씬 유리</font>
▣ 이광구 포도에셋 재무상담사 nari@phodo.com
“복리로 운용되고 2년만 넣으면 그 다음부터는 안 넣어도 된다는데요?” 지난 연말 재무상담을 받았던 진효숙(48·가명)씨가 보험사 저축상품에 대해 물어보며 한 말이다. 한 보험사 텔레마케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마침 저축 여력이 20만원 정도 생겨서 할까 말까 고민하다 전화한 것이다. 이런 금융상품 얘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수익률 얘기도 덧붙인다. “5% 이상 수익이 난대요.” 그리고 10년 이상 유지하면 이자소득세가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일정 기간 불입하면 그 이후로는 불입하지 않아도 해지되지 않고, 목돈이 필요할 때 약관대출이 아니라 쌓인 해지환급금 범위 내에서 그냥 꺼내 쓸 수 있는 유니버설 상품이다. 예전 보험사 상품에 비하면 이 두 가지 기능은 고객 입장에서 꽤 유리한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전보다 밝아진 진씨 목소리를 들으며 과거 상황을 떠올려봤다. 4개월 전 진씨는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어두고 있던 목돈 1500만원을 다른 금융상품에 넣고 싶다며 찾아왔다. 펀드수익률이 한창 절정에 달한 때이기도 해서 진씨는 그 돈을 거치식으로 펀드에 넣고 싶어했다. 그러나 안전한 고정금리 상품에 일단 넣어두자고 설득했다. 마침 저축은행 이자율도 6%대로 좋은 편이었다.
그때 진씨의 소득과 지출을 따져보면서 투자 여력을 찾아낸 게 월 20만원이었다. 그 돈을 적립식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1년쯤 해보면서 투자는 손해볼 수도 있다는 걸 몸소 익힌 다음에 더 큰 금액을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 뒤 확인해보니 진씨는 월 30만원씩을 펀드에 넣고 있었다. 소비지출을 좀더 줄인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사교육비에 들어갔던 돈 일부를 아껴 더 투자할 생각인 것 같았다.
“적립식 펀드는 계속 잘 넣고 있나요?” 넣고 있다고는 하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며 실망스러워했다. 당장 돈 쓸 일이 없는 진씨로서는 적어도 2년 정도는 그냥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진씨가 수익률 높은 걸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보험사 장기상품이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모은 돈을 언제 쓸 거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확정된 것은 없지만 5년쯤 뒤에 돈 쓸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한다. 아마 지금 직장에 다니는 딸이 결혼하는 걸 생각하는 모양이다.
5년 정도 소득이 유지되고 그 뒤에 돈 쓸 일이 있다면, 진씨가 생각하는 유니버설 상품의 복리·비과세·중도인출·납입유예라는 특징은 그에게 해당되지 않거나 별 쓸모없는 것이 돼버린다. 가장 평범하게 적금을 드는 게 최선이다. 즉, 모든 투자 여력을 펀드에 몰입하는 것보다 일부는 고정금리 적금상품으로 분산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 진씨는 아직 원금손실을 볼 수 있다는 펀드투자를 이해는 하지만 몸으로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실제 진씨가 유니버설 보험상품을 선택해 5년 동안만 불입하고 그 뒤 10년 동안은 불입하지 않은 채 보험상품을 유지하고 있다가 일시불로 환급금을 받는 경우를 가정해 계산해봤다. 사망보험금은 1천만원으로 설정했다. 이럴 경우 63살에 진씨는 약 1600만원을 받는다. 이번에는 같은 5% 수익률로 5년 동안 적금을 불입한다고 가정해보자. 5년간 적금 불입 뒤 10년 동안 예금으로 유지한 금액은 2187만원이다. 적금이 훨씬 더 낫다.
“그럼 이자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잖아요?” 적금을 들라는 제안에 진씨가 보인 반응이다. 이제 절세 문제를 따져보자. 15.4% 일반과세가 있고, 세금우대로 하면 9.8% 세금을 낸다. 단위농협·신협·새마을금고 등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1.4% 저율과세가 적용된다. 진씨는 당연히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저율과세 상품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월 20만원짜리 1년 정기적금의 일반과세나 저율과세는 이자 차이가 1만원 정도에 그치지만 금액이 커지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1천만원을 연이율 6%로 1년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그 차이는 8만4천원으로 늘어난다. 조금만 신경쓰면 챙길 수 있는 이득이다.
전화를 끊을 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유니버설 상품에 가입하라고 할 걸 그랬나?’ 남편으로부터 노후자금을 보장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진씨로서는 중간에 쓸 목적자금도 중요하지만 노후자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놓아야 한다. 보험사 상품은 유니버설처럼 중도인출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른바 강제저축인 셈이다. 먼 미래보다 눈앞에 닥친 일에 먼저 돈을 쓰는 관성을 생각하면 강제저축도 일리가 있다.
어떤 상품이 더 좋은지는 단지 수치로만 비교할 문제는 아니다. 언제 어디에 돈을 쓸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과 그에 맞게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를 함께 따져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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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