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에서 증시 상장까지 자리 지킨 창업자는 25%도 안 돼…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부자가 되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업을 해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좋을까?
사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빌 게이츠는 이상적인 성공 모델이다. 스스로 창업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일으켰고, 자기의 아이디어를 시장을 통해 전파했다. 결국 자기가 만든 제품을 전세계 컴퓨터 사용자가 쓰도록 만들었다.
투자자와 개발자 입장 충돌
빌 게이츠는 동시에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까지도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주식 가치 덕에, 매년 집계되는 세계 최고의 부자 순위에서 늘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아프리카 등지의 저소득층의 건강과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자선 사업가로 변신해 있다.
빌 게이츠만큼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말이지 사업은 할 만한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기업을 거느리고 이끌면서, 자산도 늘려가면서, 좋은 일까지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창업자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기업을 계속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 동시에 자기 지분을 유지해 부자의 지위와 전문경영인의 지위를 동시에 누리는 일은 드물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노엄 워서먼 교수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창업한 212개 미국 기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창업자는 이미 CEO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212명 가운데 절반은 창업 3년 이내에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창업 네 번째 해에는 40%만이 CEO직을 유지했다. 기업이 성장해 주식시장에 상장하기까지 그 자리를 지킨 창업자는 25%도 채 되지 않았다.
오너 경영자만이 재벌기업 회장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는 놀라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의 상식만 동원하면 이는 당연한 연구 결과다. 기업의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곱씹으면 그림은 더 분명해진다.
기업이 처음 설립될 때는, 창업자의 역할이 거의 전부다. 사업 아이디어는 창업자의 머릿속에만 있다. 제품도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든다. 고객도 창업자 스스로 개척한다. 직원들은 창업자의 비전을 공유하며 똘똘 뭉쳐 일한다. 제품이 팔리기 시작하면, 창업자는 성공적인 경영과 개인적인 부를 동시에 얻는다. 그 성공은 오로지 창업자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기업이 더욱 성장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사랑하는 장인으로서의 자아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소유주로서의 자아 사이에는 갈등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제품이 시장에서 실패하면 가차없이 접거나 사업 방향을 바꿔야 하지만, 제품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다소의 손실이 있더라도 자기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것이 맞다. 재무적으로만 보자면, 때로는 동지적으로 뭉쳤던 초기 멤버들과 등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할수록 기업 재정에는 손실이 되는, 딜레마 상황에 봉착한다.
많은 경우 창업자는 자신의 부를 희생하는 경영 의사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을 연구 결과는 보여준다. 오너 경영자는 일을 사랑하고, 아이디어를 끝까지 고수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워서먼 교수의 연구 대상 창업 오너 경영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력을 갖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전문경영인보다 평균 20%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엔 진흙탕 싸움 벌어져
이런 행태는 결과적으로 다른 투자자의 이해관계와 반대되는 경영 의사 결정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많은 창업 오너 경영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자리에서 물러난 경영자는, 비록 기업 의사 결정의 참여 권한은 사라지지만, 자신의 주식 가치는 올라 자산이 늘어난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는 경영자는, 투자자 이해에 반하는 의사 결정을 내린 끝에 자신의 주식 가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러난 75% 이상의 창업자들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기업의 미래를 생각해 흔쾌히 물러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창업자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오직 자신만이 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기업이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주주들에 의해 퇴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름다운 퇴장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진흙탕 싸움 속에 회사 밖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자신이 낳아 키운 기업이 자신의 그릇보다 커지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 자신이 낳아 키운 자식이 자신보다 더 커지기를 원한다면, 자식을 놓아줄 때를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퇴장을 실천할 줄 아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성장을 기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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