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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당해야 성공한다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때는 기존 기업이 주목하지 않는 곳을 노려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질문 하나. 당신이 새로 사업을 벌이려 준비 중인 사업가라면, 평균수익률이 아주 높은 시장에 뛰어들어 사업을 벌이겠는가? 아니면 평균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시장에 뛰어들어 사업을 벌이겠는가?

단순하고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평균수익률이 높은 시장은 많은 사람이 뛰어들려 노리고 있게 마련이다. 수익률이 높은 회사들은 이미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곳들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실패할 확률도 높다. 뛰어들어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겠지만,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평균수익률이 낮은 시장은, 어쨌든 수익률이 낮은 시장이다. 매력이 그만큼 떨어진다.

정면 대결로 피 흘린 마이크로소프트

사실 남들이 이미 뛰고 있는 시장에 새로 뛰어들어 돈 벌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성장하는 시장이라도 그렇다.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브라이스 교수와 제프리 다이어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실증적 답변을 던졌다. 이들은 최근 연구에서, 북미 지역 2만4천여 개 기업의 1990~2000년 데이터를 모두 모아 산업별로 분류한 뒤 이 기간에 새로 뛰어든 기업과 원래 있던 기업의 총자산순이익률(ROA·자산 대비 수익의 비율)을 분석했다.

역시나 ‘시장에 새로 뛰어들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그 10년 동안 기존 기업의 총자산순이익률이 21%로 가장 높았다. 이 기간의 신규 진입자도 675개로 가장 많았다. 신규 진입자의 수가 기존 기업 수의 90%나 됐다. 당연히 신규 진입자의 수익률은 떨어졌다. 신규 진입자의 총자산순이익률은 -4%로, 돈을 벌기는커녕 까먹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10년 동안 북미 지역에서 가장 돈을 잘 벌던 산업에서마저 그랬다. 전반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의 신규 진입자들의 이익은 다른 산업의 신규 진입자 이익보다 30%가량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 신규 진입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브라이스와 다이어의 연구에서도 그 실마리가 보인다. 매력적인 시장의 진입자가 이익을 내는 경우에는, 아주 크게 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성장하는 시장의 성공한 신규 진입자들은 실패한 신규 진입자보다 일곱 배나 큰 이익을 냈다. 매력도가 떨어지는 시장의 신규 진입자보다도 네 배나 큰 이익을 냈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다른 여러 가지 차이가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전략에 있었다. 성공한 신규 진입자의 전략적 공통점은, 대부분 간접 공격(indirect assault) 전략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많은 실패자들은 무모하게 직접 공격(direct assault)을 하며 뛰어들었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 기업이라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시장에 새로 뛰어들어 돈 버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엑스박스 이야기다. 2001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한 게임 콘솔 엑스박스는 전형적인 직접 공격 전략을 채택했다. 기존 시장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가 장악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을 피하지 않고 소니와 닌텐도가 갖고 있는 고객을 직접 겨냥했다. 소니와 닌텐도는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엄청난 광고 공세와 끊임없는 유통 채널 확대로 응수했다.

결과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5년 만에 약 45억달러의 손실을 입고 말았다. 엑스박스는 게임 콘솔 시장에서 15%의 시장점유율을 얻었지만, 소니의 점유율은 여전히 69%였다.

출혈은 엄청났다. 브라이스와 다이어의 분석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게임 콘솔에서 닌텐도가 얻은 영업이익률은 20%였고 소니는 8%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 30%였다. 이 손실 규모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업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소니만큼의 영업이익률을 실현한다고 해도 12년이 걸려야 회복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웬만한 기업이었다면 이미 시장에서 퇴출됐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사업부문에서 워낙 많은 돈을 벌고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기간에 ‘잭스퍼시픽’이라는 비디오 게임 신규 진입자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성공 요인은 간접 공격 전략이었다. 잭스퍼시픽은 닌텐도나 소니와 정면대결하는 대신, 그들이 주목하지 않는 고객을 공략하는 것으로 시장 진입 전략을 정했다. 이 회사는 20달러짜리 게임 컨트롤러 안에 간단한 게임을 심은 뒤, 텔레비전에 연결하면 바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존 게임 콘솔의 열 배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물론 즐길 수 있는 게임도 매우 단순했다.

저가 시장을 공략한 잭스퍼시픽

잭스퍼시픽의 전략은 먹혀들었다. 게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수백달러씩 써가며 게임기를 집에 들여놓기는 부담스러웠던 청소년이나 가끔 게임을 즐기는 어른들이 열광했다. 그러나 닌텐도나 소니는 잭스퍼시픽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견제에 나서지 않았다. 저가 소비자들은 이들의 주요 잠재 고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잭스퍼시픽의 매출은 2003~2005년에 연 25% 증가했고, 약 1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003년 1100만달러에서 2005년 9700만달러까지 급증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존심 때문에 측면 공격 전략을 사용하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장렬하게 전사할 때는 하더라도, 소니나 닌텐도와 전장 한복판에서 자웅을 겨루어야 주주나 소비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가 때로는 이렇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때는, 남들이 무시해도 좋을 만한 곳에서 시작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때로는 겸손이 비즈니스 성공의 열쇳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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