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경제학이 버린 1만원을 찾아라

등록 2008-03-21 00:00 수정 2020-05-03 04:25

경제학자와 경영자 사이에는 큰 간극 존재… 현실에 존재하는 비효율과 독점의 틈새를 찾아내야 돈이 보여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경제학자 두 명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길가에 떨어진 1만원짜리 지폐를 발견했다. 그 뒤 둘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두 사람 모두 제대로 공부를 한, 그리고 공부한 것을 그대로 믿는 신고전파 경제학자였다면 말이다.

1만원이 길에 떨어져 있다면

아마 이 정도가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저건 1만원짜리가 아닌 게 틀림없네.” “그렇지. 1만원짜리라면 저기 떨어져 있을 리 없지. 누군가 이미 주웠을 거야.” “맞네. 시장에 공짜 점심은 없지. 빈틈이 생기는 순간 누군가 채워넣게 마련이지.” “역시 경제학은 위대한 학문이구먼. 저런 허상에 속지 않게 해주니 말일세.” “자, 그럼 1만원짜리가 아닌 게 분명한 물건에 대해 관심을 끊고, 길을 계속 가세나.”

뒤이어 경영자 두 명이 같은 길을 걸어갔다. 1만원짜리를 발견한 둘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까? 정상적인 경영자라면, 이런 대화가 오갈 것이다.

“저기 1만원짜리가 떨어져 있군. 일단 줍자.”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길을 다니는 사람 중에 돈을 잘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해.” “어쩌면 이 길이 돈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사람들이 이 길에 반복적으로 돈을 떨어뜨리게 만들려면, 돈을 떨어뜨리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내용의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겠군.” “그럼 이렇게 하자고. 난 매일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떨어진 돈을 찾을 인력을 구할 테니, 당신은 돈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찾아서 그들이 더 많은 돈을 더 자주 떨어뜨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좋아. 그럼 주운 돈은 반반으로 나누는 거지?” “요즘 돈 줍는 사람 쓰려면 노임이 만만치 않아. 나한테 60%를 줘.”

경제학자와 경영자 사이에는, 이렇게 큰 간극이 존재한다. 비즈니스와 경제학은 겉보기에는 매우 친해 보이지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서로 상극에 가깝다.

이유는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이 기본적으로 완전경쟁과 효율성을 가정하면서 분석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시장은 완전경쟁 상태에 있다. 완전경쟁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시장가격으로 거래하며, 판매자와 구매자가 가격과 제품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완전경쟁 시장 모델 아래서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 조금만 이윤을 남길라치면, 경쟁자가 치고 들어와 더 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매출은 비용 수준으로까지 떨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완전경쟁 시장에서는 진입장벽이 없어 누구나 시장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좀더 나아간다. 완전경쟁 시장을 가정하고 분석할 뿐 아니라, 그것을 바람직한 상태로 여기며 당위론을 펼치는 것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정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는다. 경쟁의 미덕을 찬양하기도 한다. 경쟁을 가로막는 행위는 그것이 선행이나 기부가 됐든, 폭력이나 독점이 됐든, 모두 반시장적이고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여긴다.

똑같이 경쟁의 미덕을 칭송할 것 같은 부류가 경영자 집단이다. 그러나 경영자의 관심은 경제학자와는 정반대다. 어떻게 하면 완전경쟁 시장을 만들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완전경쟁 시장을 벗어나 독점력(monopoly power)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는 게 경영자다. 독점력이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가격 설정에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이를 확보한 기업은 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논리적으로는 독점력이 전혀 없다면 이윤도 없게 된다.

독점은 소비자 마음으로부터

독점에 대해 음험한 인상만을 갖고 있을 필요는 없다. 사실 독점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미용실 블루클럽은 출발부터 ‘남성 전용 미용실’이라고 스스로를 알리면서 남성 시장에서 어느 정도 독점력을 확보해 성장했다. 차별화를 통해 국지적 독점(local monopoly)을 추구한 사례다. 국지적 독점이란,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독점이 아니지만, 시장의 어느 특정한 영역에서는 독점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용어다. 어찌 보면 독점이란 법제도나 시설처럼 거대한 실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비자 마음을 장악한 자가 독점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의 가정과는 달리, 우리 현실에서는 독점이 존재하고, 비효율이 존재하고, 굴러다니는 1만원짜리가 존재한다. 그 틈새를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혁신하는 게 경영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까? 그 혁신을 통해 전체 파이가 늘어난다면, 경제는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물론 여기서 그치면 성장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늘어난 파이가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분배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원재의 5분 경영학’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