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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좋은 기업은 돈을 못 번다?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직원 만족도 높으면 투자 이익이 작아진다는 신고전파 이론, 이미 현실에 맞지 않아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간단한 계산부터 해보자. 기업의 주가는 이익과 비례한다. 이익은 매출에서 비용을 뺀 금액이다. 비용에는 임금과 복리후생 비용이 들어간다. 즉, 임금과 복리후생이 높을수록 이익이 작아지고, 결국 주가는 낮아진다. 직원 만족은 주주 불만족으로 이어진다. 직원과 주주 사이에는, 같은 몫을 놓고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느냐를 다투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진다. 적어도 단순 계산으로는 그렇다.

일하기 좋은 기업, 수익률이 두 배

어떤 기업의 직원 만족도가 높다면, 이는 다시 말해 회사가 직원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더 많은 자원을 직원에게 투입한다, 또는 직원에게 돈을 더 많이 쓴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바로 위 단락의 계산법을 그대로 따른다면, 주주는 직원이 만족하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게 합리적이다. 직원이 만족할수록 그들에게 돈이 더 나간다는 뜻이고, 이는 곧 주주에게 돌아올 몫이 작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직원 만족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투자 가치가 낮다. 과연 그럴까?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반을 둔 과거 경영학 이론은 사실 이런 ‘제로섬’ 논리를 뒷받침하는 논증을 많이 내놓았다. 논지는 두 가지 갈래였다.

첫째, 직원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은 그 회사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방증한다는 이론이 있다.

공장 자동화와 대량생산을 이끌어낸 ‘테일러주의’의 효시인 프레더릭 테일러는 1911년에 ‘과학적 경영’ 이론을 내놓는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직원의 노동력을 다른 투입 자원과 같은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본다. 이는 회사가 직원의 임금을 보는 시각은, 최소의 임금으로 최대의 생산물을 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마치 최소의 전기를 사용해 최대의 물량을 생산해내야 경영을 잘하는 것이라고 말하듯 말이다.

이렇게 지나친 임금 지급이 일어나는 이유는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주인-대리인’ 문제 때문이라는 이론도 있다. 이 이론에서는 소유경영자가 아닌 전문경영자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임금을 지나치게 올려주고 좋은 기업 분위기를 유지해 갈등을 줄이고 싶은 개인적인 동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이므로 ‘대리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주인이 직접 경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둘째, 직원 만족은 그 회사의 보상 체계가 비효율적으로 짜여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서는 복리후생 등 비금전적 보상의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모든 보상은 현금으로 주어지는 것이 마땅한데, 그 이유는 현금을 갖고 있으면 어떤 종류의 복리후생도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복리후생제도를 갖추느니 그 비용을 임금으로 나눠주는 게 더 효율적인 관리 방법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직원 만족도가 높은 기업은 대체로 비금전적 복리후생 혜택이 좋은 기업이다. 따라서 직원 만족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비효율적인 보상 체계를 가진 기업이고, 따라서 투자 대비 수익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경영대학원의 알렉스 에드먼즈 교수가 2008년 1월 내놓은 논문은 이런 경영학 이론이 이미 낡은 것임을 보여준다.

에드먼즈 교수는 경제 잡지 이 매년 발표하는 ‘일하기 좋은 미국 기업’의 주가 수익률을 비교 분석했다. 그랬더니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이 기업들의 투자 수익률은 연 14%에 이르렀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시장 전체 수익률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직원 만족도가 높으면 주주에게 손해가 된다는 여러 이론을 뒤엎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직원 만족도가 높은 기업이 수익성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데는 두 가지 논리가 있다. 동기부여와 이직 동기 감소다.

과거 기업에서는 노동자가 정해진 작업 방법대로 수행하면 됐다. 따라서 성과를 측정하고 보상하는 것이 간단했다. 수행을 잘하는 사람에게 생산성 향상 몫을 따져 돈으로 보상해주면 됐다. 그러나 현대 기업에서는 노동자가 숙련 기술을 사용하고, 단순 작업은 기계가 대신한다. 숙련 기술일수록 계량화된 성과 틀을 만들기가 어렵다. 따라서 성과를 돈으로 따져 보상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금전적 보상 같은 외적 동기부여가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기업문화나 일의 전문성 등 내적 동기부여가 필요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일하기 좋은 기업일수록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동기부여 이론이다.

동기부여·이직 동기 감소 이론

또 하나는 이직률 저하 이론인데, 역시 현대 기업의 노동이 대부분 지식 및 숙련 노동이라는 데 주목하는 이론이다. 생산수단은 이제 공장과 기계가 아니라 지식이다. 그런데 지식은 노동자에게 체화돼 있다. 그래서 숙련 노동자의 이직 방지가 중요한 경영 목표가 된다. 그런데 현금은 누구라도 지급할 수 있다. 아무리 높은 임금을 지급해도, 경쟁사가 언제든지 더 높은 임금으로 사람을 빼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직장 문화는 아무나 모방할 수 없으므로, 일하기 좋은 기업 구축이 높은 임금보다 더 효과적인 이직 방지 장치가 되고, 결과적으로 수익률 향상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핵심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회사가 직원에게 줄 수 있느냐다. 돈을 더 벌고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일하기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식 투자를 할 때도, 먼저 그 회사 직원을 만나 기업문화가 어떤지를 물어보는 지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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