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K. 딕의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원작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2025년 4월18일 저녁 ‘필립 케이(K). 딕’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집 ‘너의 유토피아’가 최종 후보에 올라 관심이 모였으나 수상은 불발됐다. 아쉬움도 달랠 겸 필립 K. 딕의 유명한 단편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소재로 자유의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에 발생할 범죄를 예언해 범죄자를 미리 체포하는 기관 ‘프리크라임’의 수장 앤더튼에 관한 내용이다. 앤더튼은 자기가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예언을 미리 입수하고 체포를 피하기 위해 도망친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고 믿는 앤더튼은 신원을 알 수 없는 협력자의 도움을 받아 도피에 성공하나, 프리크라임 시스템이 세 예언자의 예지를 취합해 다수결로 결과를 출력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소수의견,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열람하기 위해 조직에 숨어든다. 실제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앤더튼의 무죄를 증명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앤더튼을 도운 협력자가 프리크라임을 무너뜨리려는 계략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결국 앤더튼은 예언된 살인을 저질러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지켜낸다.

필립 K. 딕의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
끝까지 앤더튼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영화판과는 차이가 있는 줄거리다. 예언의 진상 역시 영화와 소설이 다른데, 소설에서의 진상은 세 예언자가 각기 다른 예언을 했다는 것이다. 첫 예언은 앤더튼의 살인을 예고한다. 두 번째 예언은 미래를 알게 된 앤더튼이 살인하지 않기로 결정을 바꿨음을 관측한다. 마지막 예언은 협력자의 계략을 알아챈 앤더튼이 살인을 저질러 시스템을 지켜낼 거라고 내다본다. 같은 예언은 없었고 세 예언이 모두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던 셈이다. 소설은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러나 서늘한 질문은 그대로 남는다. 만약 미래가 결정돼 있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있는가?
“현재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운동법칙을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를 모두 계산할 수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라플라스의 악마’를 낳은 구절이다. 여기서 운동법칙이란 뉴턴의 운동법칙을 의미한다. 뉴턴은 운동법칙을 통해 자연현상을 정밀한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였고, 이는 곧 세계가 거대한 기계처럼 작동한다는 기계적 세계관의 기틀이 됐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까지도 모두 방정식에 따라 예측할 수 있다는 물리적 결정론을 낳았다.
탄탄해 보이던 물리적 결정론이 흔들린 것은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특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론으로, 우리가 결코 세상의 실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뜻한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측정 장비의 기술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본성이다. 신조차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확정적으로 알 수 없다. 세계는 확정돼 있지 않고 오직 확률적으로만 존재한다. 아무도 한 입자가 “다음에”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 애당초 “지금” 그 입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기계적 세계관의 완전성은 부정됐다. 하지만 그것이 자유의지의 완전한 복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양자역학은 아주 작은 세계에서만 작동할 뿐 큰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살인자의 머리카락이 한 올 더 빠지거나 말거나 하는 차이는 유의미하지 않다. 따라서 자유의지를 옹호하려는 이는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한다. 양자역학을 확장해 개인 차원에서의 결정론은 작동하지 않음을 증명하거나, 미래가 결정돼 있더라도 여전히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음을 보여주거나.
나는 종종 이런 농담을 한다. 기상청은 결정론적 두려움을 달래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여러 대의 슈퍼컴퓨터를 동원해 계산을 수행함에도 일기예보는 맞는 날보다 틀리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는 날씨가 본질적으로는 결정론적일지라도 예측에 사용되는 값의 사소한 변화에도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복잡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가 스파게티처럼 뒤엉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시스템은 초기 조건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나비와 용만큼이나 다른 결과값을 낸다. 따라서 불확정성의 원리는 복잡한 시스템이 결정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 혼돈(Chaos) 속에서는 단 하나의 물방울만 위치가 달라져도 모든 것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농구공만한 두개골 안에 약 860억 개의 뉴런과 뉴런당 1만 개 이상의 시냅스가 달린 복잡한 초소형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큐이디(Q.E.D., 증명 완료)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 양자역학은 큰 물체에 대해서는 그 효과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아진다. 여기서 작은 물체란 0.1㎚ 크기의 원자와 그보다도 훨씬 작은 미립자를 뜻한다. 크기가 1㎛ 정도 되는 세균만 되어도 불확정성의 원리는 거의 영향력이 없다. 그런데 뉴런은 일반적으로 수십㎛나 될 정도로 크고, 원자 수십만 개가 모여 만들어진 덩어리다. 따라서 뉴런에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주장은 현재 세계에 82억 명의 인간이 살고 있으므로 내 위치와 운동량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두뇌 활동은 단순히 물리적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중첩성을 가졌고 예민한데다 수많은 확률적 오작동으로 이뤄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말로 의식이 양자적 확률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다.
맛없는 스파게티를 받은 손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꼭 맛있는 스파게티를 새로 만들어줘야만 하는 건 아니다. 맛없는 스파게티를 맛있는 것으로 정의하는 방법도 있다. 결정론이 성립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논리는 이와 비슷하다. 여기에는 많은 논변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시간 바깥의 예지’ 한 가지만 소개하겠다. 시간 바깥의 예지 논변은 자유의지와 예언에 관한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강제성의 여부라고 말한다. 만약 예언자가 미래를 안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관한 지식으로 행위자의 선택을 강제하거나 조작하지 않는다면 행위자는 여전히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짧은 예언자 체험을 해보자. 당신은 시네필이고, 이미 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다시 관람하기 위해 영화관에 갔다. 당신은 영화를 이미 봤기에 주인공 앤더튼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앤더튼의 선택은 당신이 가진 미래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했다. 당신은 다만 그 결과를 알고 있는 것뿐이다. 당신이 영화 내용을 전부 알고 있음에도 영화의 내용은 단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인생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걸 안다고 해서 그걸 바꿀 수는 없는 것처럼.
끝으로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프리크라임이 범죄자를 미리 체포해온 덕분에 강력 범죄가 세계에서 사라졌다는 점에서 소설은 결정론을 지지한다. 그런데 예언을 입수한 주인공이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있었으므로 소설은 결정론을 넘어선 자유의지 또한 지지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인공이 미래를 알게 된 뒤 그것을 바꿀 것까지도 세 번째 예언에는 반영돼 있었다. 프리크라임의 예언은 옳지만, 최종적이지는 않았던 셈이다. 만약 주인공이 세 번째 예언까지 미리 봤다면 거기에 대응하기 위한 네 번째 예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강대한 컴퓨팅 능력과 인공지능을 보유하게 될 인류에게 주어진 진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인간의 예지도 신의 예언과 같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맘 편히 따를 북극성도 존재의 위대함도 잃은 채, 우리는 빠진 머리카락처럼 툭 떨어져 스파게티를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
서윤빈 소설가
*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에 한 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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