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7월19일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출근하는 시민들. 소설 해리포터에는 킹스크로스역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 사이에 마법사만 통과해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오를 수 있는 ‘9와 4분의3 승강장 역’이 나온다. EPA 연합뉴스
2025년 8월 말,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유명한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에 론 위즐리 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달여 전부터 시작된 에이치비오(HBO) 해리 포터 시리즈 촬영을 위해서였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위용을 과시하듯, 킹스크로스역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9와 4분의 3 승강장’은 해리 포터 팬들에게 아주 각별한 장소다. 킹스크로스역에 있는 9번 승강장과 10번 승강장 사이의 벽. 그 벽은 ‘머글’(마법사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저 단단한 벽일 뿐이다. 하지만 마법사는 벽을 통과해 그 너머에 있는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오를 수 있다. 머글인 팬들에게 킹스크로스역은 현실에서 마법사의 세계를 피부로 느껴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트를 밀며 냅다 들이박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한때는 “호그와트에는 못 가니까 돌진하지 마시오”라고 쓰인 표지판이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머글인 우리는 정녕 ‘9와 4분의 3 승강장’을 통과할 수 없는 걸까? 마법사의 세계를 동경할 뿐, 결코 닿을 수는 없는 걸까? 감사하게도 마법사의 특권에 반기를 드는 과학 개념이 있다.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 터널링과 양자 결맞음 개념을 활용하면 그 마법의 승강장을 설명해낼 수 있다고, 양자역학은 위풍당당하다기에는 좀 구부정한 자세로 말한다.
사람은 벽을 통과할 수 없다. 이 말은 상식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고전물리학적 해석이다. 고전물리학에서 물체란 단단하고 꽉 찬 실체다. 그래서 사람은 벽을 통과하기 위해 벽을 부숴야만 한다. 벽돌 두 개를 같은 위치에 쌓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물체가 꽉 차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체는 오히려 텅 비어 있었다.
모든 물체는 원자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가 비치볼이라고 상상해보자. 원자핵의 무게는 원자의 무게와 같은데, 원자핵은 비치볼 중심에 있는 아주 조그만 점에 불과하다. 나머지 99%의 빈 공간에는 공기 대신 작고 가벼운 전자 몇 개만이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있다. 여기까지 상상했다면 이제 비치볼의 매끈한 플라스틱 겉면을 없애보라. 원자핵과 전자가 있는 어떤 허공이 원자의 실체다. 이는 곧 물체의 실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체가 텅 비어 있다면, 우리는 왜 벽을 통과할 수 없을까? 어째서 잡지는 손바닥을 통과해 떨어지지 않고 얌전히 손안에 잡혀 있는가? 그것은 에너지 때문이다. 물체의 단단함이란 마치 태풍이 부는 날 우산을 쓰고 걷는 일과 같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수밖에 없다. 물체의 단단함이란 사실은 물체 안에 깃든 강한 힘이다. 이를 과학 용어로는 ‘에너지 장벽’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는 물체가 단단한 실체가 아니라 에너지 장벽으로 다른 물체를 가로막고 있음을 알았다. 일견 이는 단순히 해석의 차이일 뿐, 사람이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상식을 뒤엎지는 못할 것만 같다. 그러나 여기에 “모든 입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고 하는 양자역학의 해석을 덧붙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층간소음을 생각해보자. 윗집과 아랫집 사이는 천장(바닥)이 단단하게 가로막고 있음에도 소음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통과해 짜증을 유발한다. 파동은 소음과 같이 장애물을 만나도 이를 투과하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입자는 층간소음처럼 에너지 장벽을 투과해 그 너머로 갈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양자 터널링’이다.
마법사들이 ‘9와 4분의 3 승강장’을 넘나드는 건 양자 터널링 효과였다. “이제 원리를 알아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안타깝게도 양자 터널링 효과는 확률적으로만 발생한다.
양자역학에서는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입자의 정확한 위치와 속도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입자 상태를 ‘파동함수’라는 것으로 기술하는데, 파동함수는 입자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 그 ‘확률’만을 알려준다. 에너지 장벽 앞에 있는 입자의 파동함수를 계산하면 입자가 장벽 너머에 있을 확률은 0보다 크다.
문제는 양자 터널링이 일어날 확률이 물체가 커질수록 기하급수로 감소한다는 데 있다. 이 역시 에너지 문제다. 물체가 크다는 것은 거기에 많은 입자가 우글우글 모여 있다는 뜻이다. 입자가 모여 있으면 에너지 장벽이 합쳐지기 때문에 물체는 큰 힘, 즉 단단함을 갖게 된다. 물체가 클수록 양자 터널링이 잘 안 일어나는 건, 아무리 장난기가 심한 아이라도 만원 지하철에서는 별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양자 터널링을 기대하기에는 우리도, 승강장 벽도 너무 크다.
크기 문제를 해결할 방책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양자 결맞음’이다. 양자 결맞음은 원래는 천방지축이어야 할 입자들이 일관되게 행동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때 입자들은 마치 군무를 추는 댄서들처럼 서로 협력하므로 양자 터널링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체는 수조 개 이상의 입자로 구성돼 있다. 입자들은 ‘바람기’가 많아서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결맞음이 일어난 입자를 버리고 다른 입자와 입을 맞춘다. 우리 몸 안에서는 지금도 수조 쌍의 입자 커플이 탄생했다가 깨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를 ‘양자 탈동조’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머글이 벽을 통과할 확률은 전세계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사랑 고백에 성공할 확률보다도 낮다.
결론적으로 머글인 우리가 ‘9와 4분의 3 승강장’에 들어가는 건 당장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의 탐구가 무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승강장의 벽이 일종의 양자 스캐너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법사와 머글의 차이도 알았다. 마법사는 몸을 이루는 입자들을 의도적으로 양자 결맞음 상태로 만들고, 그걸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양자역학의 알쏭달쏭한 힘 덕분인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그들은 뭔가를 타고났다. 머글을 무시하는 재수 없는 마법사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기보다는 능력주의자였던 셈이다.
에스에프(SF) 소설가 테드 창은 이렇게 말했다. 판타지는 “개인적이고 특별한 존재들이 나오는 신화”이고 SF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 있는 세계를 탐구”한다고. 판타지는 결코 현실이 될 수 없지만, SF는 현실 바로 옆집에 산다. 양자역학을 알아가다보면 우리는 어느 날 옆집에 이사 온 위즐리 가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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