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보너스’를 받을 시기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 나라는 ‘소수자의 설움’을 굳이 일깨워준다. 나뿐만 아니다. 한국 PC 이용자 100명 중 2명은 같은 처지다.
연말정산용 서류를 확인하려면 국세청 홈택스 누리집에 접속해 본인 인증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윈도와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쓰지 않는 이용자는 도중에 길이 막힌다. 서류 발급에 필요한 공인인증서를 웹브라우저에서 띄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국세청은 몇 년 전부터 누리집 새 단장을 해왔다. 웹의 ‘공공의 적’인 ‘액티브X’를 버리고 비윈도·IE 이용자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뼈대였다. 그렇지만 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개편된 홈택스 누리집과 보안 플러그인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 탓에, 윈도·IE가 아니면 공인인증서를 불러오지 못한다. 국세청은 2018년 하반기까지 이를 바로잡을 계획이라고 했다.
얼마 전,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 문제를 새삼 얘기했다. 몇몇 댓글이 눈을 찔렀다. “폼으로 맥 사놓고 윈도 프로그램 쓰려고 하네. 그럴 거면 왜 샀냐?” “왜 맥에서 돼야 함? 여기가 미국이냐 ㅋㅋㅋ.” “걍 윈도 쓰면 되잖아.”
아득했다. 불편하면 윈도 쓰라고? 언제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가 우리나라 표준 PC 운영체제가 됐단 말인가. 이 나라에선 ‘운영체제 선택의 자유’는 없는가. 맥 PC를 쓰는 일이 왜 허세로 비치는 것일까. 백번 양보해서, 허세로 맥을 쓰는 이용자는 공공서비스에 접속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건가. 언제부턴가 이 당연한 요구는 마치 ‘떼쓰면→선심 쓰는’ 일처럼 인식돼버렸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1조는 이렇게 말한다. “이 법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당신도, 나도 (잠재적) 장애인이다. 시끄러운 곳에서 전화를 받거나 TV를 보는 이는 일시적 청각 장애 환경에 놓인 사람이다. TV에 자막 보기 기능을 기본 탑재해야 하는 이유다. 두 손에 물건을 가득 든 사람은 일시적인 신체장애인이다. 그래서 음성명령을 휴대전화에 넣는 일이 중요하다.
웹도 마찬가지다. 특정 운영체제나 웹브라우저 사용자에게만 열려 있는 웹은 그 자체로 편향된 세상이다. 그들이 다수인지 소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만 고속도로를 달리게 허용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일일까. 모든 불균등에 어떻게 일일이 대응할 수 있겠냐고? 온전히 틀린 말씀은 아니다. 그것 또한 우리가 웹을 평평히 다지는 노력을 쉼없이 거듭해야 하는 이유다. 적어도 공공 웹사이트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2017년 웹엔 엄연히 문턱이 존재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개인 홈페이지를 제외한 모든 국내 웹사이트가 웹 접근성 보장을 의무화하도록 명시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은 최대 벌금 3천만원에 그치고 있다. 맥과 리눅스, 크롬과 파이어폭스 이용자에게 대한민국 웹은 여전히 닫혀 있다. “여기가 미국도 아닌데, 왜 맥을 지원해야 해?”라는 주장이 여전히 먹히는 곳이요, ‘맥수저’를 위한 문지기를 따로 둔 곳이다. 대한민국 웹은 10년째 침몰해 있다.
누구나 웹 앞에 평등하다. 그가 매킨토시 이용자든, 구글 크롬 이용자든. 비윈도 이용자에게 웹의 지분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이 당연한 얘길 10년째 도돌이표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이 글을 내년에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연도만 고쳐 기고할 듯한 예감이 든다. 나는 언제쯤 문턱 없는 웹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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