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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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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더딘 산하에 묻혀…

등록 2003-02-14 00:00 수정 2020-05-03 04:23

의 강원도 인제

자연의 경이로움 안겨주는 산간마을의 풍광… 산장 가꾸고 덕장 지키는 넉넉한 사람들

그 멋진 산장은 잊어버리려 했던 아내의 집이었다. 또 히말라야를 꿈꾸던 산악인이란 과거를 묻어둔 곳이기도 했다. 대식(황정민)은 하필 그곳에 만신창이가 된 석원(정찬)을 데리고 간다. 살인 혐의를 받고 경찰서에서 흠씬 두들겨맞은 석원의 몸을 달리 보살필 곳이 없었다. 영화 (각본·감독 김인식, 2002년작)는 정처 없이 방랑하는 두 남자의 시선을 통해 수많은 길과 산과 바다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한번쯤 가본 듯한 강원도 산간이나 동해 바닷가인데 저기가 저렇게 멋졌나 하는 감탄을 배어물게 한다. 빼어난 영상미를 언급하지 않고 이 영화에 접근하기란 불가능한데, 서울 도심의 살풍경마저 유려하게 잡아낸 화면이 몹시 탐미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영화는 동성애 영화라기보다 제목 그대로 ‘로드무비’였다.

떠도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그런데 하필 그 산장이 눈에 쏘옥 들어온 이유는 뭐였을까 적어도 이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금방이라도 부딪혀 파열음을 낼 듯한 아슬아슬함이 주는 희한한 자극. 지극히 평화롭고 아늑해보이는 풍경은 대식과 그의 아내(방은진), 그리고 석원의 삼각구도가 빚어내는 불편한 공기와 충돌해 기묘한 긴장감을 뿜어냈다. 아내의 눈초리는 여길 왜 찾아왔느냐는 원망으로 가득하다. 대식은 자신의 숨겨온 성정체성 때문에 집을 떠난 인물이다. 10살 먹은 아들은 애써 감추는데도 대식이 아빠임을 이미 눈치챘다. 이 산장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 장면은 뜻밖에도 대식과 어린 아들이 ‘맞담배질’하는 걸 멀찍이서 찍은 것이다.

“담배 하나 줘요.”

“…안 돼.”

“그럼 엄마 거 훔쳐 필 거야.”

어둔 기색으로 담배를 피우던 대식은 아들의 당돌함을 이기지 못했고, 테라스에 마주 앉은 아버지와 아들은 묵묵히 연기를 뿜어낸다. 어른들보다 더 잘 아버지의 속내를 헤아리는 듯한 어린 아들의 태도가 밉지 않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용대자연휴양림(033-462-5031) 안에 있는 ‘곰두리 산장’(033-462-4287)이었다. 제작부가 내놓은 수많은 로케이션 후보지 중에서 감독은 이곳을 제일 먼저 ‘낙점’했다. 미시령, 진부령 부근을 자주 다니던 감독이 ‘그쪽에서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한마디 거든 참이었다. 이태훈 제작부장이 산장 내부 장면은 바로 아래에 있는 ‘산 카페’(033-462-5958)에서 찍었다고 알려줬다. 산 카페의 전화번호는 곰두리 산장에서도, 휴양림 관리소에서도 모르고 있었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휴양림 안의 두 사유지를 향해 무턱대고 길을 떠났다.

길은 역시 좋았다. 44번 국도로 이어진 홍천, 인제를 지나자 곧 46번 국도와의 갈림길이 나온다. 곧장 44번으로 가면 한계령을 거쳐 양양이다. 46번으로 들어서자 백담사 초입으로 이어지는 계곡길이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산세에 수량 풍부한 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지던 여름 풍경은 한껏 쌓인 눈들로 자취를 감추었다. 십이선녀탕과 백담사로 들어서는 길을 지나치자 이맘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산세와 계곡의 어울림… 덕장이 삶을 풍요롭게

도로 양옆으로 셀 엄두조차 나지 않는 수많은 명태들이 줄줄이 널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황태의 7할이 나온다는 용대3리의 황태덕장이다. 이 명태들은 올 봄까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색깔 좋은 황태가 돼간다. 용대자연휴양림은 백담사 초입에서 불과 6km 거리이니 이곳 황태 마을은 사실상 목적지를 끼고 있는 한 동네였다. 황태덕장은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미시령 삼거리 부근에서 절정을 이뤘다. ‘덕장 인생이 막장 인생’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던 시절이 있었다. 영하 10℃를 예사로 넘는 추위에 찬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명태를 계곡물에 담갔다가 덕대에 거는 작업은 뼈가 녹아나는 고된 노동이었다. 이 마을은 일년 내내 태백산맥을 넘나드는 바람이 골짜기를 타고 돌아나가는 탓에 ‘바람불이’로 불리기도 했다. 덕장에서 일하는 일꾼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유일한 반찬이던 김치조차 차별받았다. 고춧가루도 넣지 않은 ‘덕장 김치’를 먹어가며 지주나 선주와 견줄 덕장주인의 일꾼 노릇을 했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10년 전만 해도 궁기가 돌던 마을이 이곳 황태가 유명해지면서 돈이 몰려들었다.

황태 음식점과 황태 만들기, 스키마차 사업을 동시에 벌이고 있는 민세욱·김경선 부부는 “이곳 용대리 매출액이 300억원을 넘는다”며 자랑스러워한다. 2월28일부터 3월2일까지 미시령 삼거리 일대에서 펼쳐지는 황태축제가 볼 만할 것 같다.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바람도리’(033-462-7001)는 옛날 교회같이 생긴 건물에 흰 색칠이 돼 있어 금방 눈에 띈다. 그렇지만 압권은 바로 앞의 매바위다. 마을에 돈이 돌면서 매바위에 인공폭포를 만들었고, 그래서 만들어진 거대한 빙벽은 올해 처음 전국빙벽등반대회(2월7~9일)를 열 만큼 명소가 됐다. 빙벽 맞은편은 용바위다. 미시령쪽에서 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자세다.

를 그대로 간직한 산 카페

‘의외로 볼거리가 많네’ 하는데 용대자연휴양림 입구가 불쑥 나타난다. 빙벽에서 불과 1km 남짓, 자칫하면 지나치기 쉽다. 산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휴양림이다. 온통 눈이다. 스노체인을 끼우고 조심스레 산길을 오르자 곧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산 카페가 나타났다. “아직 문 안 열었는데요” 하던 주인 김광석(37)씨가 불 피울 테니 좀 기다려달란다. 불청객을 맞이해 마당에서 묵묵히 장작을 패던 그가 정겹게 한마디 한다. “싹 틔우는 냄새가 나는 것처럼 꼭 봄이 온 것 같아요. 이번 겨울 중에 최고로 날씨가 좋은 듯하네요.” 난 춥기만 한데, 산사람인 그의 감각은 아무래도 남다른가 보다. 주위를 둘러보려는데 온통 새하얀 눈에 반사된 눈부신 햇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다. “산에 있으니 나무 걱정 안 할 것 같지요 나무 걱정이 제일 커요. 이 땔감은 느티버섯 재배하는 데 쓰던 나무거든요. 지난 여름 수해 때 바다로 떠내려갔다 해안으로 밀려나온 걸 주워온 거예요.” “기름 안 때요” “이런 곳에서 그런 거 때면 안 이쁘잖아요.”

어쩐지 그가 영화 속 대식과 자꾸 겹쳐졌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숀 필립스의 <the ballad of casey deiss>가 분위기 있게 울려퍼지는 카페 안에는 설산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게다가 입구에는 “산에 오는 이유는 섬에 오는 이유와 같습니다”로 시작하는 시들이 적혀 있다.
“할아버지가 살던 곳인데 휴양림이 생기기 훨씬 전인 14년 전부터 이곳에서 움막 같은 집을 짓고 살았어요. 그 전에는 고성 바닷가에서 아버지 일을 도왔고요. 아내와 두 딸은 지금 딴 곳에 있어요.”

연꽃을 닮은 풍광에 반해버린 사람

그가 대식처럼 느껴진 건 이유가 있었다. 촬영 때 배치했던 소품들(앞의 사진이라든가 시구들, ‘Cafe 히말라야’라고 쓴 간판 등)이 제자리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흔적은 곰두리 산장보다 이곳에 더 많았다. 아무튼 그는 영락없는 산사나이였다. “처음엔 산이 안 좋았는데 이제는 여기서 떠난다는 생각을 못해요. 산에 다니며 약초를 캐서 팔고 있는데 그럭저럭 먹고살 만해요. 산을 다니다 보면 나무 자라는 것도 보여요. 이 집은 진흙과 통나무를 이용해 반년 동안 직접 지은 겁니다.”
이곳의 원래 지명은 ‘연화동’이었다. 매봉산 정상에 올라가 보면 산이 빙 둘러싼 동네 모습이 영락없이 연꽃을 닮았기 때문이다. 연화동은 뜻밖에도 설악산이 아닌 금강산 자락에 속했다. 매봉은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금강산 줄기다. 지금은 휴양림 소유의 건물 몇동과 5가구의 민가가 전부이지만 김씨가 초등학생이던 시절만 해도 70~8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인제군에서도 약초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해요. 약초를 캐거나 화전을 일구며 살았는데, 박정희 시절에 민통선이 생기면서 마을이 급격히 줄어들었어요.”
한겨울의 연화동은 너무나 조용했다. 통나무로 지은 ‘곰두리 산장’에는 서울 사람인 주인 심양도(63)씨가 홀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98년에 근처 산에 놀러왔다가 여기에 반한 거예요. 5월이었는데도 골짜기에 얼음이 있더라고요. 마침 노년을 보낼 곳을 찾고 있었는데 나가는 길에 땅 주인을 찾아 바로 계약했지요.”
널찍하고 아늑한 방들이 꽤 많았지만 아직 이곳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텅텅 비어 있다. “여름에 서울 사람들이 속초로 몰려들 때 그쪽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려와요. 30분 정도 거리니까 아주 가깝잖아요. 낮에는 해수욕하고 밤에 이곳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자는 거죠. 여기는 모기가 없어요.”
연화동의 자랑거리는 설악산 물이 말라도 수량이 줄지 않는 계곡물이다. 산 카페 주인의 ‘해장국’이 이 계곡물을 그냥 퍼마시는 거다. 열목어·쏘가리 등 보호어종도 많이 산다. 그런데 용대리에서 만난 한 주민이 휴양림쪽이 ‘이해 못할 행태’를 벌였다고 분개했다. 지난해 휴양림쪽에서 곰두리 산장 앞 계곡에 둑을 만드는 바람에 열목어 등이 오르내리지 못해 고기들이 사는 데 지장이 생겼다는 거다.

동해 바다가 바로 저기 아닌가

한국전쟁 때 유명했던 향로봉 격전지는 이곳에서 지척지간이다. 지금도 계곡 속에 들어가면 비행기에서 투하한 것으로 보이는 포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비극은 또 있었다. 지난 96년 그토록 오래 끌었던 동해안 무장간첩 수색작전에서 벌어진 마지막 교전 장소가 이곳이었다. 지금의 휴양림 입구 근처였다. 휴양림 관리인 김궁선(63)씨는 그때 밤새 공포에 떨었고, 사살된 무장간첩 2명의 주검을 그 다음날 직접 볼 수 있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살다가 휴양림이 생기면서 이곳의 잔일을 도맡아해왔다. 이야기 도중 산 카페 주인이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카페 앞의 예쁘게 지은 조그만 성황당과 돌탑들도 ‘아버지’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연화동을 가꾸고 지키는 부자지간이라. 의 대식 부자가 탈 없이 살았으면 이들처럼 됐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예까지 와서 동해 바다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완만한 진부령을 넘어 바다까지 30분이라는데. 진부령에 오르자 저 멀리 오른편으로 눈으로 뒤덮인 산들이 멋지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제=글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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