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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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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얽힌 전설 속으로…

등록 2003-01-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의 청평사

물길 헤치고 산길 거닐면 회전문이 눈 앞에…일상의 고달픔 떨치는 여행지로 제격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곳. 서울사람들에게 춘천은 조금 특별한 곳이다. 경춘가도를 따라 산과 물을 마주하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도 있지만, 2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조용히 사색에 빠질 수도 있다. 춘천으로 가는 것은 떠남 자체가 목적일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에서 주인공 경수(김상경)가 남루한 일상을 벗어나 홀로 떠나간 첫 번째 여행지가 춘천이었다.

춘천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여행지 가운데 하나가 북산면 오봉산 자락에 위치한 청평사다. 기차로 춘천을 찾은 여행자라면, 소양호까지 버스로 30분을 달린 뒤 다시 호수를 거슬러 10여분 배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기차~버스~배로 이어지는 과정이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기차~버스~배로 이어져… 산과 물안개의 매력

청평사로 들어가는 뱃길에서 만나는 소양강 물은 생각보다 맑다는 느낌이 든다. ‘호수에 물이 들어차기 전에는 이 아래에 사람이 살고 있었겠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섬처럼 여기저기 솟아 있는 곳들도 예전에는 산이었을 것이다.

1973년 10월 완공된 높이 123m, 길이 530m나 되는 소양댐은 담수량 29억t으로 가히 내륙의 바다라고 할 만하다. 춘천 북동쪽 12km 지점의 소양강 하류를 막아 만든 소양댐으로 생긴 소양호는 춘천부터 양구~인제를 둘러싸고 있다. 소양댐 완공으로 춘천시에서 양구나 인제로 가는 찻길이 물 속에 잠겨 뱃길로 바뀌면서, 물로리 등에서는 요즘도 초등학생이 배를 타고 통학을 한다. 탁 트인 물길에서 마주하는 푸른 산은 아득한 물안개와 어울려 묘한 매력을 풍긴다.

배에서 내리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선착장 주변에 새겨진 물자국이다. 갈수기와 만수기 때마다 물이 들고나면서 생긴 세월의 나이테가 흥미롭다. 발길을 산사쪽으로 향하면 멀리 흰 바위가 보석처럼 박혀 있는 오봉산(772m)이 올려다보인다. 산세가 그리 험해보이지 않고 오밀조밀한 모습이 아름답다.

오봉산 자락에 있는 청평사로 가는 오솔길은 한적한 산책로로 그만이다. 곁으로 흐르는 물 때문에 20~30분 남짓 오르는 길은 지루하지 않다.

특히 산길 중간에서 마주치는 구성폭포가 발길을 잡는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아홉 가지로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만큼이나 청명한 울림이 산사까지 나지막하게 전해진다. 청평사 들머리에 도착해 산길을 내려다보면, 함께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두서넛씩 짝을 지어 느릿한 걸음으로 굽이진 산길을 걸어오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겉보기와는 달리 청평사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다. 고려 광종 24년(973) 승현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에는 뒷산 바위가 희고 아름다워 백암선원이라고 했다. 그 뒤 고려 문종 22년(1068) 때 춘주도 감창사 이개가 절을 다시 짓고 보현원이라 불렀고, 선종 6년(1089)에 이개의 장남 이자현이 증축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사찰을 수리해 문수원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때부터 산 이름도 청평산으로 불리게 됐다.

원래 청평사는 고려시대 왕들의 사랑과 국가적 관심을 받으며 규모가 대단했다. 한때 221칸이나 되는 대가람이었으며, 절 구조도 궁궐형식과 비슷했다. 또 비가 와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대웅전까지 갈 수 있었다는데, 지금도 절터에는 수로역할을 한 5개의 맨홀이 확연히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된 뒤 대웅전과 회전문만 보수해 40여년을 내려왔으나, 최근 시작한 중창불사로 옛 모습을 상당부분 복원해놨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허옇게 벗겨진 나무기둥이 천년고찰의 이름만 듣고 찾아간 여행자들을 조금 당황스럽게 한다.

경수와 성우가 그렇게 만나야 했던 사정

청평사 입구에 자리잡은 보물 164호 회전문은 영화 의 중요한 모티브였다. 경수와 성우는 비록 청평사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청평사 회전문에 얽힌 전설은 영화의 줄기를 이루며 마지막 장면까지 여운을 남겼다. 영화에서 언급된 것과는 달리 조금씩 내용을 달리하는 전설이 여럿 전해지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옛날 중국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는데, 평민인 어느 젊은이가 그 공주를 몹시 사랑했다. 그러나 신분의 차이 때문에 혼인할 수 없음을 알고 청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죽은 뒤 뱀으로 다시 태어났고, 자기가 사랑한 공주의 몸을 칭칭 감고 떨어질 줄 몰랐다. 뱀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공주마저 목숨을 잃을지 몰랐기 때문에 아무도 그 뱀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공주는 나날이 몸이 쇠약해졌고, 나라 안에 소문이 널리 퍼졌는데 여러 신하들이 창피한 일이니 공주를 죽이는 수밖에 없다며 임금에게 공주를 죽이라고 했다. 임금은 제 딸을 차마 죽일 수 없어 부처의 힘을 빌려 뱀을 떼어내려고 이름난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리도록 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공주는 마침내 고려 땅까지 오게 됐고, 어느 날 지금의 청평사 자리를 지나가게 됐다. 그런데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하도 맑아 목욕을 하려고 물가에 서자 뱀이 갑자기 또아리를 풀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뱀에게서 풀려났다는 것이다. 뱀이 물 속에 비친 공주의 그림자를 보고 실제 공주의 몸인 줄 잘못 아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이른바 ‘공주탑’이라는 3층석탑이 있는데, 공주가 뱀이 된 청년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뱀이 몸을 휘감고 있던 공주처럼 몸과 마음이 고달픈 이들이라면 하루쯤 시간을 내어 청평사를 찾아볼 만하다. 몸을 휘감고 있는 스트레스를 소양호 맑은 물에 띄워버리고, 오봉산 자락에서 마음의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까.

그 밖의 볼거리

청평사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책로 중간에 있는 그림자 연못인 ‘영지’다. 겨울철에는 꽁꽁 얼어붙어 진가를 볼 수 없지만, 고려시대 정원의 전형을 맛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보이지만, 연못의 구조 속에는 원근법의 과학이 숨어 있다. 북쪽 길이가 16m, 남쪽이 11.7m로 돼 있고, 연못 안에는 작은 돌이 하나 박혀 있다. 이 돌에서 바라보면 연못이 정확히 정방형으로 보인다. 고려 때 청평사를 증축하며 주변에 고려식 정원을 만든 이자현이 연못을 정방형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원근법을 이용한 것이다. 연못에 비치는 오봉산의 자태가 휘어지지 않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자현은 청평사 골짜기 전체를 사찰 경내로 삼아 정원으로 가꿨는데, 이 연못이 그 중심이었다.

맛집과 숙소

청평사 입구에는 오봉산장(033-244-6607) 등 산더덕과 빙어회·민물매운탕을 파는 그만그만한 산장이 여럿 있다. 매운탕은 ‘일품’까지는 아니어도 먹을 만하고, 단체로 와서 잠을 잘 수 있는 방갈로도 깔끔한 편이다. 춘천 하면 떠오르는 막국수는 삼밭삼거리에 있는 삼밭막국수(033-242-1702)가 이른바 ‘원조’다. 1960~70년대 풍으로 남아 있는 건물은 초라하지만 정갈한 맛에 양도 푸짐한 막국수와 집에서 직접 만드는 모두부, 탁주도 일품이다.

찾아가는 길

-땅길로 가는 방법: 46번 국도를 타고 청평·가평을 거쳐 의암터널~팔미리나들목~감정리~세월교를 지나면 간척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서 참빛기도원을 끼고 오봉산길을 7~8km 달리면 청평사에 닿을 수 있다. 산길은 2003년 6월께면 포장공사가 모두 끝난다는데, 아직은 진입로 입구가 비포장이다.

-뱃길로 가는 방법: 춘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소양 제2교~우두산삼거리를 거쳐 소양댐에 닿는다. 여기서 배를 이용하면 10여분 만에 청평사에 닿을 수 있다. 배편은 오전 10시부터 1시간 간격으로 오후 4시까지 있고, 청평사에서 소양호로 돌아오는 마지막 배편은 오후 4시30분에 끊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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