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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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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겨울 갈잎이 웁니다

등록 2003-01-09 00:00 수정 2020-05-03 04:23

남북 병사가 처음 만난 곳…서천의 장쾌한 갈대밭을 서성거려 보라

영화나 TV드라마를 보다 보면 ‘아, 저기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대체 저기가 어디일까?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곳을 찾아낸 것일까?’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새 연재물 ‘시네마레저’는 영화 속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직접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길잡이 노릇을 하려고 한다. 편집자.

북한 핵문제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한 요즘, 새삼 생각나는 영화가 다. 남북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공동경비구역을 경비하는 남쪽 군인과 북쪽 인민군의 우정과 그로 인한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분단의 아픈 현실을 긴장감 넘치는 추리극 형식으로 다루면서도 따뜻한 민족애와 웃음을 잃지 않아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에서 성공을 거뒀다. 지난 2000년, 영화가 개봉됐을 때가 6·15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성사된 직후여서,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제작사와 감독의 혜안에 감탄하며 속으로 박수를 친 기억이 새롭다.

강, 흙, 그리고 바람

영화의 첫머리에 남한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동료들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수색하던 중 우거진 갈대밭에서 오줌을 누려고 대열을 이탈했다가 지뢰를 밟는 장면이 나온다. 옴짝달싹 못하는 이 병장을, 북한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일병(신하균)이 구해주는 것으로 이들의 인연이 시작되는데,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이 충남 서천군 한산면 신성리 갈대밭이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금강 하구둑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부여 방면으로 14km가량 달리다 보면 ‘JSA 촬영지 서천 갈대밭’이라는 푯말을 만날 수 있다. 푯말을 따라 2분가량 들어가면 앞쪽에 길다란 둑이 나타나는데, 이 둑을 올라서면 10만여평에 이르는 장쾌한 갈대밭이 거짓말처럼 펼쳐진다. 신성리 갈대밭은 전남 순천만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4대 갈대밭을 이루고 있다. 인근의 완포리 갈대숲도 유명하지만 규모나 경관이 신성리에 미치지 못한다.

이곳에는 메마른 갈숲에 파묻혀 잠시라도 도시를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평일에도 끊이지 않는다. 한겨울의 추위 속에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갈대밭에 들어서면, 바람에 흔들려 사각사각 소리내는 갈잎의 쓸쓸함이 여행객을 엄습한다. 사람 키를 훨씬 넘어 2m이상 자라는 갈대밭 속에서 후두둑…, 철새들이 줄행랑을 친다. 갈대밭 곁으로는 금강(錦江)의 빛나는 물결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차가운 강물은 햇빛을 받아 은빛 날개를 가진 새처럼 펄럭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어떤 갈대는 뿌리를 아예 강물에 담그고 있다. 흙과 강물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공생할 수 있다니…. 서울의 한강도 한때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리라.

갈대는 육지에서 자라는 억새와 달리 습지나 호수 주변의 모래땅처럼 젖은 땅에서 자란다. 갈대에는 환상적이고 목가적인 음색을 지닌 팬플루트의 전설이 얽혀 있다. 반인반양의 모습을 한 목동의 신 판(또는 팬)은 시링크스란 요정을 사랑했지만, 추한 외모 때문에 외면을 당했다. 판은 갈대로 변한 그녀를 찾아 헤매다 갈대를 꺾어 피리를 불었는데, 이것이 팬플루트의 기원이라고 한다.

갈대만큼이나 흔했던 모시

서천군에는 들에도 산에도, 논둑길에서도 국도변에도 갈대가 지천으로 난다. 또한 갈대만큼이나 흔했던 것이 있으니 그것이 모시, 한산 세모시다.

“모시야 적삼 아래/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많이 보면 병납니더/ 담배씨만큼 보고 가소.” 경남 동래 지방에서 전해내려오는 이 민요는 모시옷의 풍치를 익살맞게 묘사하고 있다.

의 ‘복거 총론’편에는 “진안의 담배밭, 전주의 생강밭, 임천과 한산의 모시밭, 안동과 예안의 왕골논”이라는 구절이 있을 만큼 예로부터 한산 세모시가 모시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다.”( ‘충청남도’편) 신성리 갈대밭에서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서천 방면으로 5분 거리의 한산모시관에 가면 모시의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특산물로 소곡주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건지산성이 있는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 계곡의 맑은 물에 찹쌀로 빚은 청주인 소곡주는 선산 약주, 서산 두견주, 안동 소주, 동래 산성 막걸리와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한 술이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마시다 다음날 봇짐까지 잃는가 하면,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한산지방의 주막에 들렀다가 소곡주의 맛과 향에 취해 한두잔 마시다 과거 날짜를 넘겼다고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한다. 백제가 망한 뒤 백제 유민들이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소곡주를 빚어 마셨다는 얘기도 있다.

글 이재성 기자 firi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그 밖의 볼거리

서해안에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 서천군 서면 마량리 마량포구다. 12월22일을 중심으로 60일 동안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이 기간에는 산이 낮은 동남방향에서 해가 뜨는데, 이것이 마치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서해안은 일몰이 일품. 해넘이를 보려면 마량포구 오른쪽의 동백정에 오르는 게 좋다. 동백정은 동해 같은 웅장함과 남해 같은 아기자기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동백정 옆에는 천연기념물 169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85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봄에 만발한다. 예전에 동백정 해수욕장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했는데, 1979년 이곳에 서천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폐장됐다.

동백정에 들어서기 전에 오른쪽으로 빠지면 나오는 조그만 항구가 홍원항이다. 주로 낚싯배들이 드나드는 조그마한 내항이다. 방파제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항구에 수십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은 아담하고 소박한 항구의 전형이다. 어렸을 때 즐겨본 문화방송 에 자주 등장했던,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무전여행을 하다 잠시 들러 품팔이를 했음직한, 바로 그런 예쁜 항구다.

♣맛집

장항읍내의 할매 온정집(041-956-4860)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아구탕·찜 전문점이다. 창업자인 어머니 최선임씨에 이어 아들 강성국씨가 운영하고 있다. 콩나물보다 미나리를 많이 쓰고, 서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아구의 내장까지 함께 맛볼 수 있다. 어른 키의 절반이 넘는 20~30kg가량의 아구를 쓰는데, 아끼지 않고 뭉텅뭉텅 넣어주는 게 인기의 비결이다. 아구탕 1인분 1만3천원, 아구찜 10만원.

마량리 동백정 들머리의 서산회관(041-951-7677)은 주꾸미 전골이 먹을 만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주인 김정님씨의 매콤한 손맛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미나리를 듬뿍 넣어 푸짐하게 내놓는데, 3명이 3만원짜리 한 접시를 시키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해마다 4월에 동백꽃·주꾸미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 주꾸미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횟집은 마량포구의 포장마차가 양도 많고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귀띔이다. 홍원항의 섬덕횟집이라는 곳에서 먹어본 꽃게탕은 생애 최악이었다.

♣숙소

마량리 동백정 들머리의 해맞이파크(041-952-3531)는 지난해 8월 개장해 근처에서 가장 깨끗한 시설을 자랑한다.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콘도형 민박으로 건평 15평에 방 하나에 거실 겸 주방이 딸린 구조인데, 화장실과 욕실도 깔끔하다.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모두 4동밖에 없어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다. 5~10명이 평일 7만원, 주말 10만원.

한산모시관 안의 건지산장(041-951-9442)도 깔끔한 편이다. 하루 자는 데 3만원으로 부담 없는 가격이 장점이다. 아드리아모텔(041-951-6699)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

신성리 갈대밭: 서해안 고속도로 군산IC에서 빠져나와 금강 하구언둑~하구언둑을 건너 부여쪽으로 우회전~한산모시관 지나 300여m.

마량포구·동백정·홍원항:서해안 고속도로 춘장대IC에서 빠져나와 우회전해 3.5km, 다시 우회전해 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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