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충북 제천 진소마을
유년시절의 달콤한 기억을 떠올리며 시간여행… 때묻지 않은 자연과 함께 사색의 시간 만끽
20~30년 전쯤 ‘달고나’란 ‘불량식품’이 있었다. 변변찮은 주전부리가 없던 그 시절 아이들은 달고나를 보고 군침을 삼켰다. 달고나는 포도당 덩어리를 뜨거운 국자에 넣고 소다와 함께 부풀려 만들었다. 맛이 달고 부드러웠지만 달고나는 값이 만만찮았다. 주머니가 가벼운 부모를 둔 아이들은 ‘달고나’ 대신 ‘뽑기’를 선택해야 했다. 뽑기는 포도당 대신 설탕을 재료로 써서 값이 좀 쌌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뽑기’를 ‘국자’라고 불렀다. ‘국자’란 이름은 설탕 몇 숟가락을 스테인리스 국자에 얹은 뒤 연탄불에 놓고 만든 제조공정에서 나온 것 같다. 그때는 노점나 학교앞 문방구에서 연탄 화덕을 놓고 국자를 걸어놓고 ‘국자’를 만들어 팔았다.
달고나·뽑기를 기억하는 사람들
나는 국자를 돈 주고 자주 사먹기 힘든 가정형편상 부모님이 외출한 주말이면 집에서 국자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국자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했다. 부엌에 있는 국자에 설탕을 부어넣고 나무젓가락을 휘이 젓다 소다 몇번 찍어 끓이면 금세 달콤한 누런 거품 같은 설탕 덩어리가 국자에 가득 부풀어올랐다. 이 덩어리를 널찍한 양푼 뚜껑에 쏟아부어 조금씩 떼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요즘 아이들은 달고나도 국자도 먹지 않는다. 맛난 과자가 널려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달고나는 그냥 설탕 덩어리 불량식품일 뿐이다. 게다가 몸에 좋은 음식을 가려먹는 이 시대에 포도당·설탕과 소다의 합성물인 국자는 아이들의 이를 썩게 하고 소아비만의 원인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등에서 팔리고 있는 ‘달고나’가 3만5천 세트(‘달고나’를 만들 수 있는 연료·국자 포함)가량 판매됐다. 어린 시절 국자를 휘휘 저어가며 ‘달고나’나 ‘국자’를 맛본 코흘리개 아이들은 30~40대가 되어도 추억의 그 맛을 잊지 못했다. 를 쓴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를 빌리면, 경험한 만큼 찾게 되는 것이다.
지난달 대학생들의 모임에 유일한 사회인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이 된 게 화제가 됐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답게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은 을 만든 이창동 감독의 작품세계와 의 각 장면에 대해 영화평론가 못지않게 예리한 분석을 하고 비평을 했다. 나도 을 비디오로 봤지만, 평소 ‘영화란 흰 천 위의 그림자들의 관념의 유희’란 희떠운 소리를 하는 처지라 그날은 대학생들의 전문가 수준의 비평을 경청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이들이 의 중요한 시대배경으로 나오는 1980년 광주가 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의문을 나타냈더니 젊은 대학생들은 “대충 알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영화에서 깔린 시대적 배경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듯 말듯 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다른 것은 몰라도 80년 광주를 모르나” 하고 깜짝 놀랐다. 내 또래와 선배들의 20대를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몰아넣은 거대한 뿌리인 광주를 모르다니. 그래서 대학생들의 태어난 해를 확인해보니 80~82년생이었다. 당연히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광주는 역사책에서 배운 과거의 역사적 사건일 뿐이다. 30대 중반 이상이 을 ‘내가 겪은 이야기’로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면, 20대는 을 ‘있을 법한 이야기’로 머리로 이해한 것이다.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촬영지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오지를 향하여
며칠 뒤 이성욱 문화팀장이 기획회의 때 이번주 를 맡아달라기에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촬영지를 가보겠다고 덜컥 약속하고 말았다. 사전준비를 하며 몇몇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니 힘 빠지는 소리가 많이 나왔다. ‘놀러가는 게 모티브를 굳이 영화에서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부터 ‘시네마도 레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기사가 될 게 뻔하다’ 등등. 가기 전부터 기사쓸 걱정으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어 눈이 내린 경칩인 3월6일 첫 장면인 ‘야유회 1999년 봄’과 마지막 장면인 ‘소풍 1979년 가을’을 찍은 곳인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진소마을로 출발했다. 주인공 영호가 달려오는 기차에 대고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던 곳, 강변에는 영호 친구들이 를 흥겹게 부르고 철교 밑으로 강물이 반짝이며 흘러가는 곳, 주인공이 첫사랑 순임과 강변을 거닐며 서로 수줍게 눈길을 마주치던 그림 같이 아름다운 그곳 말이다. 애련리란 지명부터 예사롭지 않다. 진소천변 진소마을은 현재 3가구 11명이 살고 있다. 촬영지로 알려지기 전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주민들은 마을 앞으로 철길이 나 있어 기차 다니는 소리로 시간을 가늠할 정도로 오지였다.
이곳은 대중교통으로 가긴 힘들다.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으로 들어가 충주방향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박달재터널을 지나 광장휴게소를 지나 내려가면 오른쪽에 ‘박하사탕 촬영지’란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가 작아 주의깊에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길을 모르겠으면 백운면 소재지로 찾아가 동네사람들에게 ‘애련리 가는 길’을 물으면 된다. 아니면 백운면 소재지에서 큰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지도에는 잘 나와 있지 않은 길이니 헤매지 말고 마을사람들에게 묻는 게 상책이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을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단순히 관광을 하러 진소마을을 가면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주인공 영호의 친구들이 야유회와 소풍을 간 강변인 진소천에는 지난해 입은 수해복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4월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지만 아직 포클레인 등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영호와 순임이 속삭이던 진소천에도 수해 때 뿌리뽑혀 떠내려온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다. 여기에 홍수 때 떠내려온 호박만한 바윗돌들이 가득하다. 게다가 진소마을 진소천까지 들어가는 길도 만만찮다. 일단 진입로가 지도에 나오는 국도나 지방도 같은 길이 아니다. 차로 약 5분을 들어가야 하는 길이 비포장인데다 요즘 같은 봄철이면 얼었다 풀린 땅이 곤죽이 되어 승용차 타이어와 바닥이 흙투성이가 되기 십상이다.
‘마차길’을 빼닮은 시골길 풍경
하지만 이 길은 조금만 생각을 다르게 하면 40년 전 이어령이 쓴 의 서문에 나오는 ‘마차길’과 빼닮았다. “그것은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이었다. 국도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황토흙과 자갈과 그리고 이따금 하얀 질경이 꽃들이 피어 있었다. 붉은 산모롱이를 끼고 돌아가는 그 길목은 인적도 없이 그렇게 슬픈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었다. 시골 사람들은 보통 그런 길을 ‘마차길’이라고 부른다.”
진소마을로 가는 길 양쪽에는 깊고 붉은 밭과 산들이 펼쳐진다. 구불구불한 밭두렁을 따라 봄햇살이 비치면 겨우내 언땅이 풀려 땅이 부풀어오른다. 진소마을로 들어갈 때 타이어에 엉겨붙은 짜증나는 진흙탕은 생명이 움트는 표시다.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을 부풀어오른 붉은땅에 비료를 뿌리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 옆으로 비록 취재한다지만 차 몰고 놀러가는 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비포장길을 헤치고 어렵게 찾아간 진소마을에는 강물과 교각, 철길밖에 없다. 흔한 카페나 밥집 하나 없다. 진소천에 오면 다리에 올라가 철길을 한번 걸어보고, 주변 풍광을 둘러보고, 강변을 좀 걷다 보면 할일이 없어진다. 요란한 분위기와 색다른 먹을거리를 즐겨 찾아다니는 이들에겐 밋밋하기 짝이 없다. 영화촬영지라고 잔뜩 기대하고 찾은 이들은 ‘도대체 볼 것이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입구부터 밥집과 술집이 포진한 판에 박힌 곳이 왠지 싫고 산책하며 조용히 사색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없이 좋은 곳이다. 지나온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나 부부들이 강변을 거닐며, 처럼 마치 사진첩 맨 뒷장에서부터 삶을 돌아보는 시간여행을 해봄직하다. 이곳은 물길이나 산세가 강원 영월의 동강과 비슷해 충북 동강이라고 할 정도로 물길이 아름답게 산을 감싸고 돌아간다.
강변 거닐며 그 시절의 경험 공유
기차는 후진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듯 앞으로만 달리는 기차를 가로막은 주인공 영호는 “나, 돌아갈래”를 외친다. 당랑거철, 사마귀가 수레바퀴 앞에서 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수레바퀴에 도전한다는 뜻 아닌가. 그래, 80년대 20대인 영호 또래들은 당랑거철이었다. 철옹성 같은 군부독재에 맞서 온몸을 던진 이들에게 기성세대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혀를 찼다.
이런 생각을 하다 눈을 들어보면 한가로운 산세가 주는 눈맛이 일품이다. 때 아닌 눈이 펄펄 날렸다. 산꼭대기에는 흰눈을 이고 있고, 중턱에는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뒤섞여 있다. 제천의 산세는 강원도를 그대로 빼닮았다. 아직은 이르지만 4월 중순이면 강 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이 짙은 녹색의 물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펼친다. 본격적인 봄이 되면 진소천에는 고둥(올갱이)이 지천으로 깔려 있고, 잉어·메기·송사리·피라미 등이 잡힌다. 강변에는 물이 깊다는 경고판이 서 있으니 천렵을 하려면 은 곳을 잘 골라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영화 주인공 영호처럼 철길을 걷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1시간에 4번 정도는 기차가 다니기 때문에 자칫 방심하다가는 사고가 날 수 있다.
어린 시절 ‘달고나’ 먹고 자라서 학창시절 ‘나 어떡해’를 목청껏 부르다, 20대 시절 광주학살을 고민한 사람은 을 단순히 남의 이야기로 넘겨버리기 힘들다. 가 잘 팔리고 빠름이 미덕인 사회지만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진소마을 강변에서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인간과 폭력, 사회, 나이듦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자. 달고나와 뽑기가 사람에 따라서는 설탕 덩어리 불량식품일 수 있고, 콧날이 시큰한 추억덩어리가 될 수 있다. 을 찍은 진소마을도 마찬가지다. 아무 볼 것 없는 촌동네가 되거나 호젓하고 편한 곳이 될 수 있다. 박하사탕이나 달고나도 그 사람은 경험한 만큼, 아는 만큼 찾게 되는 것이다.
추억에 잠긴 마음을 접고 볼거리를 찾아
강변과 철길, 다리를 둘러보다 배가 고프면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 근처 봉양읍 연박리 38번 도로변에 있는 묵마을(043-647-5989)로 가서 채묵밥을 먹어보자. 4천원을 내고 무채처럼 잘게 쓴 도토리묵에 김치와 절인 고추를 섞고 밥을 말아 먹는다. 도토리묵 안주에 동동주도 맛있다.
밥도 먹고 시간이 좀 남으면 597번 지방도를 이용해 충주호 주변에 있는 충북 제천 촬영지, 청풍문화재 단지 등을 돌아봐도 된다. 주로 아이들이 있으면 이 코스를 잡는데 이게 싫으면 강원도 영월군 서면 광전리에 있는 책박물관에 가보자. 제천에서 영월까지 길만 막히지 않으면 승용차로 40분이면 갈 수 있다. ‘책, 사람, 그리고 자연’을 표방하는 영월책박물(bookmuseum.co.kr·033-372-1713·4)은 신천초등학교 여촌분교 터에 99년 4월 문을 열었다. 책박물관에 전시된 개화기부터 50~60년대 교과서도 눈길을 끌지만 ‘옛날은 우습구나’란 전시회도 독특하다. 만화가를 꿈꾸던 영월사람인 고 송광용씨가 52~92년의 40년 동안 일생을 색색의 만화로 그린 만화 일기다. 이 일기에는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평범한 남자의 꿈과 현실, 희망과 좌절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창동 감독이 을 통해 주인공 영호가 20년 동안 잃어버린 꿈·사랑·야망·순수를 그렸다면, ‘옛날은 우습구나’ 전시회를 통해 우리 만화사에서 읽어버릴 뻔한 불행한 만화가의 삶과 그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책박물관이 자리잡은 폐교터 분위기가 진소마을만큼이나 조용하고 호젓하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사진 류우종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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