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엽나무의 매서운 가시. 주엽나무의 가시를 한방에서는 ‘조각자’(皁角刺)라고 부른다. 한자를 풀어보면 검고 뾰족한 가시라는 뜻이다.
나는 얼마 동안 주엽나무에 무심했던 적이 있다. 그 나무를 알게 된 스무 살 이후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 나무를 피했던 것도 같다. 2005년 경북대에 입학하며 내가 주로 머문 단과대학 교정에서 주엽나무를 처음 만났다. 나무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정확하게는 무서웠다. 가시 때문이다. 나무줄기에 바늘처럼 뾰족하게 돋아난 그 지점에 찔리기라도 하면 피가 뚝뚝 흐를 것만 같았다. 그 나무의 가시를 보고 나면 누구라도 장미나 아까시나무의 가시쯤은 약해 보인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저리 나무가 위협적일까. 방어의 이유가 궁금했지만 매서운 그 가시 때문에 겁이 많은 나는 주엽나무에 선뜻 다가갈 엄두를 못 냈다. 어디에 사는지 알면서도, 때론 눈앞에 두고서도 모른 척했다. 학교를 떠난 뒤 주엽나무를 만날 기회가 통 없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나무임을 나중에 알았다. 가끔 그 나무 생각이 났다.
그러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주엽나무를 다시 만났다. 꽤 반가웠다. 이십 대에 알던 그 나무보다 덩치는 작은데 가시의 위용만큼은 엇비슷해 보였다. 내가 나이 들어서인지, 그사이 더 특색 있는 나무를 다양하게 만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주엽나무가 전처럼 무섭지만은 않다. 날이 선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엽나무 열매. 배배 꼬인 모습이 날카로운 가시와는 상반되어 귀엽기도 하다.

주엽나무의 잎.
주엽나무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에 사는 콩과 식물이다. 이 나무는 약재로 유명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도 주엽나무는 다른 장소가 아니라 ‘약용식물원’에 몇 그루가 모여 산다. 한의학에서는 주엽나무와 주엽나무의 자매 식물인 조각자나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한데 묶어 약을 쓰는 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약재 이름으로 부른다. 이들 나무의 열매는 ‘조협’( 皁莢), 가시는 ‘조각자’( 皁角刺)라고 한다. 그 약재 이름에서 각각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가 지금의 정식 나무 이름이 되었다.
수목원 약용식물원의 주엽나무는 요즘 열매를 달고 있다. 날카로운 가시와 상반되는 귀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모습이다. 내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커다란 콩꼬투리가 배배 꼬인 모양이고 주렁주렁한데, 열매는 익을수록 거무튀튀해진다. 이렇게 익은 꼬투리는 약이 된다. 검은 콩꼬투리라는 뜻에서 한방에서의 이름이 ‘조협’이다. 몸에 고인 진액을 제거하고 기도를 열어주는 효능이 있고 변비를 개선하는 데 두루 처방하는 한약재다.
이 열매에는 사포닌 성분이 강하다. 지나치게 먹으면 약성보다는 독성으로 부작용이 따를 수 있으니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따른 복용이 필요한 약재라고 한다. 사포닌 성분은 비눗물처럼 거품이 난다. 과거 합성세제가 없던 시절 천연 세척제가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주엽나무 열매 꼬투리를 삶은 물로 머리를 감거나 고급 비단 옷감을 빨았다고 들었다. 실제로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 열매 꼬투리인 조협은 친환경 계면활성제를 연구할 때 시료로 활용된다. 천연 샴푸나 세제, 유기농 농약 첨가제 등 바이오 소재로도 기대된다는 말일 테다.
주엽나무에서 약성이 특히 농축된 부위는 가시다.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의 가시를 한방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조각자’라고 묶어 부른다. 한자를 풀어보면 검고 뾰족한 가시라는 뜻이다. 이 날카로운 가시는 종기나 염증을 가라앉히고 고름을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어 피부질환이나 항염 처방에 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애써 뾰족하게 돋은 그 보호 장치를 잘라 인간은 약을 얻는 것이다. 문득 사슴의 뿔이 떠올랐다. 나무를 베어 죽이지만 않는다면 주엽나무는 자신의 가시를 ‘조각자’라는 약재로 계속해서 내줄 것이다. 잘리면 잘릴수록 자신을 지키려고 가시를 더욱 뾰족하게 만들면서.
동아시아에서 그간 진행된 약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주엽나무는 항종양, 항염, 항알레르기, 항산화, 항균 등의 능력을 폭넓게 지녔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직 밝혀야 할 주엽나무 체내의 성분이 많으니 이 나무를 더 깊이 연구하면 여러 약재를 개발할 수 있으리라는 의견이다.
콩과 식물인 주엽나무는 척박한 토양을 개량하는 근력도 있다. 질소 순환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뿌리혹박테리아 덕분이다. 주엽나무의 뿌리에 박테리아가 침입하면 뿌리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발육해서 혹을 달게 된다. 툭 불거져 나오는 식으로 보금자리를 구한 박테리아는 나무로부터 탄수화물 같은 영양분을 얻고 이를 질소로 고정해 땅을 기름지게 한다. 결국 나무에 도움이 되는 구조다. 우리 행성의 이런 공생은 주엽나무를 포함하는 콩과 식물과 특정 토양 세균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엽나무는 병충해와 공해와 염분에도 큰 타격이 없어 도시 조경수나 방풍림으로도 우월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주엽나무와 조각자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어 기른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전통 의학에서 유용하다고 여겨졌고 그런 약리학적 효능을 현대 과학으로 증명했으며 생태적으로도 이로운 나무이니 야생에만 둘 것이 아니라 널리 재배하자면서. 중국 전역의 식재 규모는 약 10만㏊로 서울시 면적의 1.6배에 달한다는 소식을 최근에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렇게 대규모로 심는 나무는 주엽나무보다 조각자나무가 주를 이룬다.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성은 농촌 활성화를 위해 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조각자나무의 조림 사업을 광범하게 펼치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높으리라는 전망에 나무 공급이 부족할 것을 예측해서 지금부터 부지런히 키우는 것이다. 나무의 가시는 따로 잘라 약재로, 열매는 수확해서 천연 계면활성제와 의약품 원료로 팔면 고정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척박한 토양이나 빈터에서도 까다롭지 않게 잘 자라니 산림 복원과 농가 소득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평을 받는다. 최근 중국은 더 열성적으로 그 나무를 많이, 드넓게 심고 있다.
국내에서 한약재 생산은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중국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참에 우리도 일찍이 중국에서 도입해 심어 기르는 조각자나무와 자생하는 주엽나무의 재배를 장려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면 조협과 조각자만큼은 한약재의 국산화를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약용식물원의 주엽나무.
국내에서 조각자나무의 식재를 일찍 실천한 분이 있다. 경북 경주 옥산서원의 독락당(獨樂堂) 뜰에는 500살 가까이 된 조각자나무가 있다.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심은 것이다.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씨앗을 얻어 심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나무의 키는 14.5m, 둘레는 5m가 조금 안 되는데 노령이라 그런지 생육 상태는 좋지 않은 편이다.
옥산서원의 별서(別墅)이자 사랑채가 말 그대로 홀로 즐거운 독락당이다. 사람은 떠났으나 조각자나무 고목은 남아 여전히 그 마당을 지키고 있다. 아니, 수백 년째 독락을 몸소 행하는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독’(獨)이란 한자를 좋아한다. 그 글자 뒤에 ‘락’(樂)을 붙여 자신의 공간을 만든 이언적 선생. 그가 심은 나무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지정될 때만 해도 이 나무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가져온 주엽나무라고 ‘중국주엽나무’라는 이름을 썼다 한다. 조각자나무라는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안다.
500여 년 전에 만든 공간과 심은 나무를 오늘을 사는 내가 다가가 직접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 시대를 살다 간 이언적 선생의 탁월한 안목에 깊이 공감하고 적잖은 감동도 받는다. 나에게 독락은 나무 곁에 머무는 일이다. 번잡한 곳에서 벗어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오히려 즐거울 수 있는 건 내 주변에 나무가 있고 자연이 있기 때문이리라.
녹음의 기세가 한풀 수그러지는 걸 보니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한 계절이 떠나고 다음 계절이 다가오는 것을 수목원의 주엽나무 앞에서 감지한다. 싱싱하던 초록 이파리에 누렇게 물이 들기 시작했다. 뒤틀린 열매 꼬투리는 거무스름하게 익어간다. 그럼에도 가시의 사나운 기운만큼은 여전하다. 이 나무를 이제 나는 걱정한다. 날씨나 기후의 변화에 따라 표정과 몸 상태를 자꾸 살피게 된다. 정말이지 이 나무가 이제 더는 무섭지 않다.
글·사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숲을 읽는 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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