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제목 없음’ 표지 이미지. 네이버웹툰 갈무리
교육학을 전공했다. 다른 전공으로 관심을 옮기면서도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그럭저럭 이어졌다. 하지만 봉사활동과 학원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어지던 접촉면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일에 전념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학교가 이토록 순식간에 나와 상관없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것, 청소년을 만날 일이 이렇게나 드물다는 것에 놀랄 정도였다. 얼마 전 떠들썩했던 웹툰 원작의 드라마 ‘참교육’ 논쟁에 관해서도 솔직히 나는 조금 멀찍한 마음이었다. 무엇이 참교육인지 논하기 전에, 나에게 말을 얹을 권한이 있는지부터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와 청소년의 앞날을 말하기에 당장 그들의 일상 하나 아는 바가 없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천천희와 구준휘가 서로 친구가 되고, 동아리를 결성하고, 영화를 찍으면서 활력을 찾아가는 ‘아직 제목 없음’(주영현, 네이버웹툰)은 밋밋해서 눈에 띄는 작품이다. ‘아직 제목 없음’ 1화. 네이버웹툰 갈무리
‘아직 제목 없음’(주영현, 네이버웹툰)은 밋밋해서 눈에 띄는 작품이다. 장르적 재미를 위해 의도적으로 가공된 것이겠지만, 웹툰에서 학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이거나 가해자를 심판하는 법정으로 그려질 때가 많다. 풋풋한 로맨스나 일상물에선 그보다 현실적으로 묘사되긴 한다. 그래도 ‘아직 제목 없음’만큼 극적이지 않은 작품은 드물 것이다. 명암을 거의 넣지 않은 담백한 그림체가 작품의 성격을 관통하듯 보여준다.
무엇보다 밋밋한 것은 로맨스 주인공답지 않게 평범하고 멋없는 두 사람이다. ‘천천희’와 ‘구준휘’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학교에서 종일 잠만 자고, 교류하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친구가 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일 자체가 서투르다. 천희는 친절히 말을 걸어준 선생님께 제대로 대꾸도 못한 채 도망치고, 준휘는 새 학기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달아나 ‘추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큼은 기댈 구석이 된다.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지만, ‘내가 쟤보다 낫다’는 다소 실례되는 생각에 의지해 지난하고 외로운 학교에서의 시간을 견딘다.
사소한 몇 가지 계기로 조금씩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천희가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것. 준휘의 어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것. 천희가 학년 대표를 맡은 적이 있을 만큼 달리기가 빠르다는 것. 준휘가 잡학 다식하고 장난기가 많다는 것. 두 사람에겐 종일 잠만 자고 친구가 없다는 것뿐만 아니라,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까지.
친구가 생기면서 둘의 일상엔 남모를 활력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함께 동아리를 결성하고 영화를 찍으면서 아주 바뀐다. 기나긴 밤을 어찌할 줄 몰라 억지로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며 밤을 견디던 천희는 시나리오를 쓰며 부지런히 밤을 지나게 됐다. 자기소개에서 도망칠 정도로 낯을 가리던 준휘는 천희와 동아리 친구들 앞에서 명랑한 모습으로 위로와 도움을 건네게 됐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천천희와 구준휘가 서로 친구가 되고, 동아리를 결성하고, 영화를 찍으면서 활력을 찾아가는 ‘아직 제목 없음’(주영현, 네이버웹툰)은 밋밋해서 눈에 띄는 작품이다. ‘아직 제목 없음’ 64화. 네이버웹툰 갈무리
교생 실습을 하며 유독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다른 교생의 수업을 참관 중이었는데, 나와 달리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수업이었다. 내 수업보다 인기가 많은 듯해 질투도 조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교실 맨 앞 귀퉁이에 앉은 두 학생이 혼나는 모습을 봤다. 오래 장난쳐서인지 꽤 엄하게 혼났다. 그 모습을 유독 오래 기억하는 것은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 둘은 내 수업에서 가장 태도가 좋은 학생이었다. 아마 내 수업에서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게도 그들은 교사의 말을 듣지 않거나 공부에 취미가 없는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아직 제목 없음’을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린 것은 교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희는 밤새워 시나리오를 썼으니 여전히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자고, 준휘는 천희처럼 친한 친구가 아니고서야 어지간한 동급생 앞에서 여전히 말을 더듬고 얼굴을 붉힌다. 동아리 역시 정식 영화 동아리에 밀려 구석진 곳에서 남모르게 하는 중이니, 수업 시간의 그 교실 한 칸에서는 아무도 천희와 준휘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셈이었다.
세상 대부분의 오해가 그렇듯, 학교의 많은 오해도 그런 식으로 발생할 것이다. 같은 학교 안에 있어도 그렇게 많은 오해가 생기는데 하물며 학교 밖 사람들이 그곳을 안다고 말하기란 조심스럽다. ‘아직 제목 없음’은 어떤 시야에서는 절대 포착되지 않는 교실 안팎의 사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럼으로써 일깨워주는 건 학교나 청소년들의 ‘진짜 모습’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다 알지 못한다는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다만 최근 회차를 보면서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천희가 불면에 시달리게 된 계기는 의도적이고 교묘한 따돌림탓이었는데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좀 극적이기 때문이다. 극적인 만큼 정형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천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독자가 ‘사이다 서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전개의 답답함이 아니다. 이 작품만큼은 처음에 제시해준 무기력하고 평범한 일상을 연속성 있게 보고 싶었다. 싱겁고 밋밋할지라도 누군가에겐 당연할,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일상을 말이다. 강자와 약자의 영토로 나뉘고 뭔가를 보복하고 바로잡는 학교의 풍경이 전부 허구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학교는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천천희와 구준휘가 서로 친구가 되고, 동아리를 결성하고, 영화를 찍으면서 활력을 찾아가는 ‘아직 제목 없음’(주영현, 네이버웹툰)은 밋밋해서 눈에 띄는 작품이다. ‘아직 제목 없음’ 57화. 네이버웹툰 갈무리
천희와 준휘가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은, 훗날 감독이 되겠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스스로 등교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기존 영화 동아리와 맞지 않아 직접 만든 동아리는 중복이 불가하다는 교칙에 따라, 명상(한 뒤 영화 만드는) 동아리 형태로 시작된다. 교칙과는 어설프게 어긋나 있고 기삿거리를 찾는 시야에서는 전혀 포착되지 않을 방과 후의 열기가 있다. 어떤 청소년의 하루는 그런 열기로 가득 차 있고 그것으로만 지탱되기도 한다.
우리가 쉽게 ‘참교육’을 말할 수 없는 데는 아주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일 듯싶다. 잘 모르니까. 적어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알고 말해야 하니까. 아직 제목이 없는 것일 수도, 부를 이름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는 이들에 관해 나는 더 알아가고 싶다.
최윤주 만화평론가
*현실 연애엔 무관심하면서도 로맨스 만화는 가세가 기울 만큼 읽어왔다. 그 경력을 살려 다양한 관점에서 로맨스 만화를 읽어보려 한다. 6주마다 연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신약 로비 신고자 “한동훈에 자료 안 줘”…출처로 지목된 인물 [단독] 신약 로비 신고자 “한동훈에 자료 안 줘”…출처로 지목된 인물](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914/53_17893758564071_20260914503093.jpg)
[단독] 신약 로비 신고자 “한동훈에 자료 안 줘”…출처로 지목된 인물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 이 대통령 선거법 파기환송 “절차 진행 다소 이례적”

허벅지 짧으면 당뇨병 위험 높다…팔 둘레도 중요해

감사원 “윤석열 대통령실·이동관, YTN 지분 통매각에 개입”

윤건영 “이 대통령, 국민 이기려 해선 안 돼…공소 취소·연임 개헌 정리해야”

조국 “김민석, ‘이재명 탄핵’ 관념 유포…대통령에 도움 안 돼”
![‘과속’ 차기대권 삼보일배 [그림판] ‘과속’ 차기대권 삼보일배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914/53_17893806320969_20260914503320.jpg)
‘과속’ 차기대권 삼보일배 [그림판]

용혜인 낙마 다음날…기본소득당 “왜 비례만 사퇴, 지역구도 겸직 막자”

청와대,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추가 검증…지명 철회는 미지수

“한동훈, 촐싹·경망” “‘이빨 뽑겠다’ 국회서 나올 워딩 아냐”…국힘 당권파 비판














![[단독] 건물주면 성매매 영업 모를 수 없는데… 장소 빌려준 문중, 유명 종교인, 장군 [단독] 건물주면 성매매 영업 모를 수 없는데… 장소 빌려준 문중, 유명 종교인, 장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4/0822/53_17243264544351_20240822503593.jpg)